시경詩鏡 - 시가 있는 목요일
안녕하세요. 박정자입니다.
아버지의 마음으로 만들어진 글자 ‘한글’, 오늘은 568돌을 맞는 <한글날>입니다. 자음과 모음이 어우러지면 만물이 생동감으로 채워지는 한글의 신비, 그것은 한글이 사랑의 글자이기 때문이겠지요. 현대예술과 실용디자인도 그 아름다움을 인정할 만큼...
한국인에게는 정말 특별한 날! 한글날 아침, 우리만의 정서가 그리워 골라봤습니다. 정지용 시인의 ‘향수’를 원문 그대로 올립니다.
향수 / 정지용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얼굴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그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
뷔인 밭에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
엷은 조름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
짚벼개를 돋아 고이시는 곳,
―그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
흘겡서 자란 내 마음
파아란 하늘 빛이 그립어
함부로 쏜 화살을 찾으려
풀섶 이슬에 함추름 휘적시든 곳
―그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
전설 바다에 춤추는 밤물결 같은
검은 귀밑머리 날리는 어린 누이와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사철 발벗은 안해가
따가운 햇살을 등에 지고 이삭 줍던 곳,
―그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
하늘에는 석근 별
알 수도 없는 모래성으로 발을 옮기고,
서리 까마귀 우지짖고 지나가는 초라한 지붕,
흐릿한 불빛에 돌아앉어 도란도란거리는 곳,
―그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