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제목 [김은숙의 그대 이야기] 평생의 은인 아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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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숙의 그대 이야기] 평생의 은인 아제요!

기사입력 2014.09.26 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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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은숙 작가가 쓴 수필집. '여왕'과 '사랑은 이혼이다'



<김은숙의 그대 이야기>를 매주 금요일 데일리인도네시아에 연재합니다. 김은숙 씨는 족자카르타에서 사업을 하는 남편을 뒷바라지하고 사남매를 키우면서 사나따다르마대학교 영문과를 졸업하고 수필집 두 권을 낸 열혈 주부 작가입니다. 현재 족자카르타 한글학교 교장으로 봉사하고 있습니다. [편집자주]


그대 이야기의 그대는

                     김은숙

그대는
그리움 입니다
그대는
사랑입니다
그대는
고향입니다
(하지만) 때로는
그대는
날카로운 송곳으로
가슴을 찌르는
고통 이었습니다


그대는
죽음과도 바꾸고
싶었던 절절한
순결 이었습니다
그대는
한시라도 잊고
살 수 없는
삶의 걸음걸음
이었습니다

그대가 있어 살았고
그대를 기억하며
캄캄한
앞을 보았습니다
그대는 내게
삶이고
생명이고
믿음 이었습니다

그런 그대를
찾으러 나섭니다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두려움을 억누르며
그대를 한번
가슴에 그리고자
홀연 글로 쓰고
지우기도 합니다

나의 오늘 글에
그대이거든
부디 날 찾아
바람에라도
연통한번 하시어
내 그대와 더불어
밥한 그릇 청하며
내가 살아온
기막힌 날들을
그대와 풀고 싶습니다
그대이거든
나를 기억하여
하늘 끝에
미소로 전해 오소소


첫 번째 그대 이야기

                               평생의 은인 아제요!


그대를 생각하면 정말 아득한 세월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끝이 보이지 않는 황토색 찻길을 걷다가 이제 죽음인가 하며 절망할 때 만나게 된 분이 그대라는 '아제' 이었습니다.
    
1970년대 부모가 평탄치 못한 삶을 살았기에 저희 형제 삼남매의 인생도 평탄치 못했습니다. 철도 안든 어린나이 10살 이었을 겁니다. 아버지의 구타와 죽을 때 까지 못 고친 첩 질에 못 이겨 어머니가 먼저 가방을 싸서 집을 나가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삶도 어머니의 망막했던 그때의 가슴처럼 이 친척 집에서 저 친척 집으로 옮겨 다니다 그래도 정착이라고 하게 된 막내 친할머니 집에서 여동생과 살게 되었습니다. 막둥이는 그래도 2대 독자라고 큰 친할머니네 서 조금은 얻어먹는 듯 해 다소 안심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때 시골 생활이 다 거기서 거기였듯이 굶주린 세월이었기에 참 많이 굶었던 것 같습니다. 하물며 객식구까지 와서 음식을 축내는데 반겨할 형제들이 없었을 겁니다. 모든 것을 참을 수 있었습니다. “굶주림” 그것을 진달래 따먹고 감꽃 주워 먹으며 시냇물로 배 채우면서도 동생들이 곁에 있어 행복했었습니다. 그렇지만 하루가 멀다 하고 폭력이 난무하는 사촌 형제들 집에서 동생과 더 있을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들도 그럴 수 있었겠다고 지금은 생각해 보지만 그래도 그때는 그 폭행들이 참기 힘든 징글맞게 잔인한 형제들이었습니다. 배곯으며 마늘을 구워 먹어도 막내 친 할머니와 우리는 좋았습니다. 하지만 그 자석들은 할머니와 달리 우리를 저들의 머슴 부리듯 했습니다. 머슴 부리듯 하면 어떻습니까? 마음만 편하다면 천년을 그렇게 동생들 곁에서 살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하나는 고등학생 그 동생은 여자로 중학생 막내는 남자로 중학교 1학년 이었는지 초등학교 6학년 이었는지 그랬습니다. 소꼴을 잘못 베어 왔다고 뺨 맞기는 기본이었습니다. 그런 삶에서도 버티기를 충분히 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날은 차마 나를 용서할 수 없는 일이 벌어 졌습니다. 고등학생 오빠가 작정을 하고 여동생을 때렸습니다. 입에서 피가 나고 그 선홍색 피를 본 순간 아이가 죽을 것 같았습니다. 그 모습을 참고 지켜보아야 하는 제가 도저히 용서가 안 되었습니다. 아이가 맞아 죽을 것 같았습니다. 아니면 저의 가슴이 찢어져 죽을 것 같았습니다. 나에게 가해진 폭력은 하나도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힘이 있다면 그들 삼남매를 모두 나의 힘닿는데 까지 두들겨 패주었을 겁니다. 그러나 비겁한 나는 그러지 못하였습니다. 기억하는 것은 그들 삼남매는 그 자리에 있었고 고양이들 앞에 쥐를 구경하듯 그들은 나와 동생의 고통을 즐겼습니다. 

그 밤에 결심 했습니다. 아버지에게 가서 엄마 없어도 되니 아버지와 우리 삼남매 모여서 함께 살자고 부탁하기로 마음먹었고 한 살 어린 여동생의 손을 꼭 잡고 그 다음날 학교를 가면서 길을 나섰습니다. 멀기도 멀고 아득하기도  아득한 정말 지옥이 그처럼 멀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그 길을 걷고 또 걸었습니다. 초등학교 3학년의 두 여자 아이가 타박타박 황토색 신작로를 끊임없이 걸었는데도 경상도 영일군 봉계리 에서 부산은 정말 닿을 수 없는 곳이었습니다. 그렇게 지쳐 가는 그 길에 동생이 배도 고프다 했고 힘들다고도 했습니다. 저도 힘들었고 배도 고팠지만 내색할 수 없었습니다. 한 살이라는 나이가 주는 무게가 가슴에 쇳덩이를 얹은 것보다도 더 힘들어 숨이 턱 막혔습니다. 배고픔 보다 더 무서운 고통이 엄습해 오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가다가 아빠도 못 만나고 두 어린 여자 아이가 길에서 죽어 버린 채 발견될까봐 두려웠습니다. 그 두려움의 공포에 발목이 잡혀 울지도 못하고 가슴만 동동 발만 사부작사부작 움직이고 있을 때 '그대' 아제를 만났습니다. 아제는 아마도 하늘에서 우리에게 보낸 천사일거라고 지금도 생각합니다. 아제의 모습은 기억이 안 나지만 온화함과 따뜻함이 느껴지는 사람이었습니다.

“너희 두 사람 어디 가니?”
“아버지를 찾으러 가요.”
“왜?”
“사실은 이러저러해서 친척 언니 오빠들이 너무 때려서 막내는 큰 할머니 집에 있으니 괜찮을 것 같아 여동생만 데리고 막내 친할머니 네를 나왔어요.”
“기다리고 있어라 아제가 돈 줌 가져다줄게.”
아제가 무서운 인상이었더라도 우리는 기다렸을 겁니다. 이미 저는 지쳐 있었거든요. 하지만 아제는 왠지 믿음이 가서 그냥 행복한 마음으로 기다렸습니다. 아제의 집은 황토색 신작로에서 멀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리고 계단식 산 논을 몇 층 올라갔다가 내려와 아제는 제 작은 두 손에 지폐를 쥐어 주셨습니다. 먹을 것도 주셨던 것 같습니다.
“이거 가지고 가서 아빠를 꼭 찾으렴.”
그 아주 오랜 옛날에 2천원인지 3천원인지는 잘 기억이 안 나지만 지폐였습니다. 그 옛날에도 지폐는 참 귀한 돈 이었습니다. 5원 10원으로 아이스크림을 사먹을 때었으니까요.

이제와 돌이켜 보건데 우리가 그때 아제를 만나지 않았으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아마도 저와 제 동생은 이 세상에 없는 사람일수도 있겠죠? 은연중에 아제에게 보답하려고 열심히 살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사람 구실을 하고 살고 있고 저도 다른 이에게 때로는 손을 내밀어 아제처럼 도와주려고 노력하며 살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아제가 계신 곳에 가기엔 정말 멀고먼 과거의 저편에 계시기에 찾아뵙기가 멀기만 합니다. 삶은 현실이라 이렇게 아제를 그리워하며 날마다 살아 있음에 감사하며 살아가고만 있을 뿐 직접 아제를 찾아가겠다고 할 엄두를 못 내고 살고 있습니다.

저도 여동생도 결혼을 했고 아이들도 있습니다. 가끔 하늘을 보며 아제를 그려봅니다. 그리고 아제를 만나 큰 절을 올리는 생각을 해봅니다. 이제 아제는 늙어 저를 알아보지도 아니 어쩌면 이 세상에 안 계실수도 있다는 생각에 살아서는 못 뵐 수 도 있다는 염려 한 자락을 붙들고 살지만 아제는 저희에게 살아서도 죽어서도 잊지 못할 평생의 은인인 생명의 은인입니다. 요즘은 사람의 선한 마음을 이용해 악덕한 짖을 하는 사람들 때문에 선을 행하기가 두렵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당신 같은 위대한 분이 계셨기에 아직 선과 사랑이 살아 있다고 봅니다. 그 사랑을 그 선을 제가 작게나마 실천 하겠습니다. 잊지 않고 한순간 한순간 한걸음 한걸음 삶을 향해 내딛을 때마나  아제 그대를 생각하며 살겠습니다. 그리고 언젠가는 그렇게 따뜻한 아제가 엄마의 인생에 있었다고 우리 아이들 에게 말해주겠습니다. 그대를 만날 때까지! 이 삶이 다할 때 까지! 아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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