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제목 한국엔 정(情) 인도네시아엔 루꾼(Ruk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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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엔 정(情) 인도네시아엔 루꾼(Rukun)

기사입력 2014.08.06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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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자 인형극 와양 공연 (자료사진)

글: 신성철 데일리인도네시아 대표

“’인도네시아’라는 나라는 알면 알수록 헷갈린다”라고 현지에 사는 동포들이 흔히 말한다. 한국에 ‘빨리 빨리’가 있다면 중국에는 ‘만만디’가 있고, 한국에 정(情)이 있다면 인도네시아에는 ‘루꾼(rukun)’이 있다.

20여년 전 필자가 일하던 공장에서 노사분규가 일어났다. 당시 업무 경력이 그리 많지 않았던 필자는 노무 업무를 담당하고 있었다. 신속하게 노사문제를 종결시키려고 조바심을 내며 시위에 참여한 인도네시아 직원들을 설득하고 회사의 입장을 전달하였지만 점점 더 미궁에 빠져들었다.

지난 1990대 초반부터 인도네시아 자바 지역을 중심으로 다년간 인도네시아 문화인류학 분야를 연구했던 김형준 강원대 문화인류학과 교수의 강의를 듣고, 현지 문화인류학에 대한 몰이해를 자책하면서 그때 이 분야에 다소 이해가 있었다면 좀더 좋은 결과를 낼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이번 칼럼은 지난 7월 3일 코트라 자카르타 무역관이 주최한 김형준 교수의 ‘인도네시아 문화의 오해와 이해’ 강의와 필자의 직간접적인 경험을 중심으로 인도네시아 문화의 핵심인 루꾼을 정리했다.

인도네시아 친구들에게 종종 문화인류학적인 관점에서 질문을 던져보면 대답이 신통치 않다. 하물며 외국인이 다문화를 넘어서 복잡다단한 인도네시아 문화에 대해 이해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사전적인 의미가 ‘화목한, 융화하는, 일치하는’ 등의 뜻을 나타내는 ‘루꾼’을 어느 정도 이해한다면 인도네시아의 윤곽을 어렴풋하게라도 잡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 족자카르타 라뚜 복고 사원 내 식당 입구에 진열된 전통복장의 인형 (자료사진)


김형준 교수에 따르면 화합을 뜻하는 루꾼은 표면적인 화합을 의미하며 진정성은 크게 문제되지 않는다. 루꾼은 크게 4개 단어로 함축되는데, △슬라맛(selamat) △와양(wayang) △고똥로용(gotong royong) △무샤와라(musyawarah) 등이다.

아랍어가 어원인 △슬라맛은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이 예측된 방식대로 흘러가고 돌발적인 사건이 발생하지 않는 상태이며, 인도네시아 사람이 느끼는 이상적인 상태다. 이는 ‘어제의 상태가 오늘에도 그대로 지속됨’을 의미하는데, 이것을 인간관계에 적용하면 ‘더 가까워지지도 않고 더 멀어지지도 않는 관계의 지속’을 의미한다. △인형극 와양은 인도의 2대 서사시인 라마야나와 마하바라타를 통해서 선과 악을 묘사한다. 와양에서는 절대 선과 절대 악이 없으며, 악이 있어야 선이 존재한다는 상대주의적 종교관을 보여준다. △호혜성을 뜻하는 고똥로용은 서로 주고받는다는 다소 계산적인 상부상조이다. △협의와 합의라는 의미인 무샤와라는 상대방을 인정하고 서로 양보하는 방식으로 이해관계자들간 동의를 끌어내는 다자간 의사결정 방식이지만 때로는 비효율적으로 보인다.

따라서 루꾼은 실질적인 화합이나 갈등이 존재하지 않는 상태라기보다는 내면적인 상태와 관계없이 갈등이 외부적으로 표현되지 않는 상태이다. 그러므로 루꾼의 목표는 이기주의적이고 자기중심적인 태도를 극복한 이타적인 상태가 아니다. 루꾼을 유지하려면 각 개인은 감정을 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  루꾼은 자바사람들의 생활규범인 끄자웬(kejawen)에 밑바탕이 된다. 자바사람들은 ‘아니오’라고 말하지 않고 직접적인 표현을 하지 않는 것이 품위 있는 언행이라 여긴다. 따라서 내면과 외면의 불일치는 자연스러운 것이고 표리부동을 인정한다. 표리의 일치를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한국인은 이런 문화에 맞닥뜨렸을 때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다. 

무샤와라는 인도네시아 사람들이 회의하는 모습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다. 회의가 시작되면 참석자들이 가벼운 농담과 간식을 즐기면서 본론에 들어가는데 꽤 시간이 걸린다. 회의 참석자들이 돌아가면서 발언하고 모든 사람이 발언이 끝났다고 간주되어야 마무리에 들어간다. 때때로 무샤와라는 상상하지 못할 엉뚱한 결론을 낼 때도 있다. 1999년 총선에서 메가와띠 수까르노뿌뜨리가 총재로 있는 투쟁민주당(PDIP)이 최다 득표를 해 제1당이 되어 메가와띠 총재가 대통령이 될 것으로 예상됐지만, 당시 헌법 제정과 정∙부통령을 선출하고 국가의 중요 정책을 결정하는 국민협의회(MPR)는 투표일을 연기하면서까지 장시간에 걸친 회의 끝에 예상을 뒤엎고 압두라흐만 와힛 국민각성당(PKB) 총재를 대통령으로 선출하는 이변을 냈다.


인도네시아공화국은 건국이래 지금까지 국가통합(NKRI)을 최대 과제로 삼아왔고, ‘다양성 속의 통일’을 상징하는 국가 이데올로기인 빤짜실라(Pancasila)를 국가정책의 기본 방침으로 지키고 있다. 특히 수하르또 대통령의 집권기인 신질서시대에는 강력한 중앙집권제를 펴나가면서 국가통합을 위해 자바사람의 생활양식으로 대변되는 루꾼이 강조되고 자바사람들을 다른 섬으로 활발하게 이주시킴으로써 자바문화가 인도네시아 전체의 문화로 자리잡게 됐다.

우리의 ‘빨리 빨리’와 자바어로 ‘알론 알론 아살 끌라꼰(Alon alon asal kelakon), 제대로 된다면 늦어도 괜찮다’라는 생활문화는 크게 다르다. 루꾼은 한국의 사랑이나 친근함을 나타내는 감정인 정(情)과 다소 배치된다. 이곳 한인들이 ‘루꾼’과 ‘한박자 천천히’를 이해하고 인도네시아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다면 갈등을 줄이고 화합을 통해 좀더 성공적인 사업과 생활을 할 수 있을 것으로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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