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라마단 시작일은 이달 28일로 예정되어 있습니다. 이슬람에게 성스러운 달인 라마단을 앞두고 양승윤 한국외대 명예교수의 '인도네시아 라마단 풍경'을 3회에 걸쳐 연재합니다.(편집자주)
쟈캇을 해야 뿌아사가 완성된다
글: 양승윤 한국외대 명예교수
뿌아사 기간에는 추가 예배 따라위와 부까 뿌아사에 정갈한 음식을 제공하는 딱질과 쿠란을 봉독하는 따다루스 이외에 가장 중요한 행사로 쟈캇(zakat)이 행하여진다. 대개 희사(喜捨)로 번역되는 이슬람 사회의 쟈캇은 매우 중요한 뜻을 담고 있다. 이를 행함으로써 한 달 간의 뿌아사를 완결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뿌아사를 행한 각고의 노력이 물거품이 된다는 강한 메시지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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쟈캇은 금식월이 끝나고 무슬림들의 가장 큰 축제인 이둘피트리(Idul Fitri) 하루 전날 행하여진다. 이둘피트리가 말레이시아에서는 아이돌 휘트리(Aidol Firti)로 불리고, 인도네시아에서는 르바란(Lebaran)이라 불린다.
쟈캇은 기본적으로 내가 가진 재산의 일부분은 ‘알라의 소유’라는 관점에서부터 시작된다. 그래서 내 재산의 2.5%를 생활이 어려운 가족이나 친족 또는 가난한 이웃이나 고아에게 직접 전달하거나 혹은 이슬람 사원을 통해서 기부하게 된다.
쟈캇을 해야 할 가장 우선적인 대상은 가족이다. 그 다음 순서가 이웃과 고아이다. 내 가족이 굶고 있거나 어려운 처지에 있는데, 이웃을 먼저 찾아 쟈캇하는 것은 이슬람의 바른 가르침에 반하는 하람(haram)이 될 수도 있다. 마지막 순서가 타인이다.
이때가 되면, 사원마다 쟈캇관리위원회(komite zakat amil)를 설치하여 대상자를 찾아 주거나 쟈캇을 대행해 준다. 이들이 누구에게 쟈캇을 하는 것이 좋은가에 대해서 가장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인도네시아에서 쟈캇은 대개 쌀 2.5킬로그램이다. 가쟈마다대학교 정치학자인 목타르(Mohtar Mas’oed) 교수는 가족이 8명이기 때문에 20킬로그램의 쌀을 준비한다고 했다. 무엇보다 쌀은 모든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기본적인 생활필수품이고, 보관과 운반이 용이하며, 도시와 시골을 막론하고 어디서나 쉽게 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죡쟈카르타 같은 소도시에도 대형 쇼핑몰이 여러 개가 있고 슈퍼마켓도 꽤 많다. 어쩌다 이곳을 방문해 보면, 많은 종류의 다양한 상표를 붙인 쌀이 전시 판매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농업 국가이면서도 늘 쌀이 부족하여 외국산 쌀을 수입하여 충당하고 있는데, 값은 국내산보다 약간 비싸다. 수입 쌀 중에는 태국산이 가장 많고, 베트남산 그리고 값이 꽤 비싼 호주산 쌀도 보인다. 한국 슈퍼에는 당연하게 한국 쌀도 있다.
문제는 어떤 쌀로 쟈캇을 하느냐 하는 것이다. 이곳에서는 이에 대한 답이 간단명료하다. 최소한 내가 먹는 쌀이거나 그보다 나은 쌀이다. 인도네시아 무슬림 사회에서는 쟈캇을 꼭 해야 한다. 쟈캇을 해야 뿌아사가 완성되기 때문이다. 쌀 2.5킬로그램을 쟈캇하되, 내가 먹는 것과 동급이거나 그보다 좋은 쌀이어야 한다는 조건까지 붙어 있다.
인도네시아 최대 종교 축일 르바란
쟈캇을 하고 난 다음날은 이슬람 사회의 최대 명절인 이둘 휘트리이자 인도네시아 최대 종교 축일인 르바란이다. 이때가 임박하면 나라 전체가 술렁거린다.
우선 귀성 전쟁이 시작된다. 세계 최대의 도서 국가인 이 나라의 교통망은 국내 항공망을 제외하고는 우리나라 60년대 수준이다. 또한 나라가 워낙 크고 넓다 보니까, 목적지까지 가는 데 보통 며칠씩 걸린다. 직행버스를 타도 아예 버스를 세워 놓고 잠을 자며 이삼일씩 가는 경우가 허다하다. 선박과 버스와 기차를 번갈아 타고 귀향하는 동안에 예외 없이 다양한 사건과 사고가 터진다. 대개는 너무 많은 승객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다. 인도네시아에서 이러한 르바란을 가족과 함께 보내기 위한 귀향을 무딕 르바란(Mudik Lebaran)이라고 한다.
국가가 정한 공식 휴일은 이틀이다. 그러나 무딕 르바란은 일주일 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르바란 휴가도 짧게는 1주일이고 길게는 한 달도 가는데, 2주일 정도는 보통이다.
뿌아사를 행하여야 할 기간 중에 귀향길에 오르면, 금식을 하지 않아도 된다. 여행길이 그만큼 고생스럽기 때문이다. 그러나 뿌아사를 행하여야 하는 전통적인 지엄한 의무로부터 해제되는 것은 아니다. 르바란 명절을 쇤 후에 뿌아사 하지 않은 날 수만큼 혼자서 뿌아사를 해야 한다. 이를 ‘뿌아사 하지 않은 빚을 갚는다’고 한다. 귀향하느라고 고생을 했지만, 알라에 진 빚은 반드시 갚아야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오랜만에 귀향해서 가족과 함께 며칠을 지내면서, 혼자 뿌아사를 하기는 쉽지 않다. 이런 경우의 뿌아사를 대신할 수 있는 휘드야(fidyah)라는 다소 부담스러운 해결 방법이 있다. 일주일 7이 동안 뿌아사를 행하지 못하였을 경우, 쟈캇 의무의 7배에 해당하는 쌀이나 돈 또는 물건을 어려운 가족에게, 이웃이나 고아에게, 또는 이슬람 사원을 경유하여 꼭 필요한 사람에게 추가로 쟈캇을 행하면 된다.
르바란 명절을 맞는 인도네시아는 나라 전체가 바쁘다. 이 나라 대표 일간지인 「콤파스」도 연일 르바란 특집을 내보낸다. 대통령이 부통령과 대부분의 각료를 대동하고 부까 뿌아사를 위해서 국회의장 공관을 방문하고 있다. 이 부까 뿌아사에는 대부분의 의회와 정당 지도자들도 참석한다. 이 자리에서 대통령은 인도네시아의 국가 발전은 일부 다른 나라처럼 급작스럽게 이루어지지 않지만, 안정과 평화스러움 속에서 진행되고 있다고 말한다.
우리네 추석처럼 북적북적한 르바란 풍경
무딕 르바란에 관한 신문과 방송의 보도기사가 넘치고 있다. 국영 철도회사는 원활한 무딕 르바란 수송을 위해서 만반의 계획을 수립했다고 발표했고, 경찰청은 무딕 르바란 여행에 사고가 가장 많이 나는 교통수단인 오토바이 이용을 삼가해 줄 것을 당부한다.
해마다 르바란 때가 되면, 물가가 많이 오른다. 우리나라의 추석 명절 때와 다르지 않다. 설탕 값도 오르고, 쇠고기 값도 오른다. 죡쟈카르타의 브링하르죠(Beringharjo)는 역사에도 자주 등장하는 유서 깊은 전통 시장인데, 우리로 하자면 성남의 모란시장 정도 된다. 이곳도 부까 뿌아사를 준비하기 위한 일용 식품을 사기 위해서 북적거린다. 인도네시아중앙은행에서는 쟈카르타의 빠사르 바루 (Pasar baru) 같은 시장통에서 10만 루피아나 5만 루피아 같은 고액권을 1만 루피아 이하의 낮은 단위의 루피아로 바꿔 주는 서비스를 시작하는데, 많은 사람들이 이를 이용하기 위해서 장사진을 이룬다.
르바란 때면 빠짐없이 등장하는 중요한 선물의 하나가 아이들에게 몇 천 루피아씩 새 돈을 나누어 주는 것이다. 그래서 르바란이 가까워지면 은행마다 신권 교환 요청으로 작은 소동이 벌어진다고 한다. 신권을 제때 바꾸지 못한 사람들은 무딕 르바란에 오르면서 기차 정거장이나 버스터미널에서 10%의 웃돈을 얹어주고 바꿔야 한다. 11만 루피아를 내고 1만 루피아짜리 신권 10만 루피아로 교환하는 광경을 흔히 볼 수 있다.
쟈캇은 없는 자에게 소리 없이 베푸는 것
이슬람력 라마단 달은 금식월(禁食月)로 표현해야 옳을까 아니면 단식월(斷食月)로 표현해야 할까. 개개인의 의지에 따라 음식물을 섭취하는 것이 아니라면 단식이 맞고, 의사의 처방에 따라 금식하는 것처럼 이슬람의 전통 관습이나 알라의 명에 따른 것이라면 금식이 더 적절한 표현일 것이다. 금식이 옳은 표현인가 아니면 단식인가를 70명의 수강생들에게 물어보았다. ‘금식’이라는 대답이 압도적으로 많이 나왔다.
뿌아사 기간 중의 인사도 ‘슬라맛 버르뿌아사(Selamat berpuasa)’이거나 혹은 ‘슬라맛 머누나이깐 이바다 뿌아사(Selamat Menunaikan Ibadah Puasa)’이다. 전자는 ‘(힘 든) 금식 잘 하세요’ 정도로 번역이 가능하지만, 후자는 ‘금식월의 의무를 다하시기 바랍니다’라는 다소 묵직하고, 의무를 다하는지 그렇지 않은지의 여부를 확인하는 듯한 뉘앙스를 풍긴다.
실제로 이슬람에서는 내가 종교적 의무를 다해야 함은 물론이지만, 이를 게을리하는 이웃을 일깨워야 하는 의무도 있다. 그러므로 자의적으로 행하는 단식이라기보다는 의무를 다하기 위해서 행하는 금식으로 보는 쪽이 옳을 것 같다.
금식에 대한 의견은 쟈캇 의무에서 보다 선명하게 나타난다. 쟈캇을 해야 뿌아사 한 달 동안의 금식 의무가 완성된다는 사실이다. 그래서일까, 돈 많은 지방의 유지나 국민 기업을 자칭하는 회사에서 가난한 사람들을 불러 모아 쟈캇을 하고 있다. 2만 루피아(2,000원)을 얻으려고 사람들이 너무 많이 모이는 바람에 수십 명이 압사하자 정부 당국은 군경을 쟈캇 현장에 파견하고 있다. 인도네시아 최대의 담배 제조회사 구당가람도 해마다 쟈캇 행사를 하는데, 아이들에게는 1만 루피아를, 어른들에게는 2만 루피아를, 노인들에게는 3만 루피아씩 나누어 주고 있다.
쟈캇은 없는 자에게 소리 없이 베푸는 것이다. 쿠란은 쟈캇을 하는 손을 다른 한 손이 알지 못하게 하라고 가르치고 있다. 그래서일까, 가난한 서민들을 쟈캇의 이름으로 줄을 세우는 것은 아무래도 민망하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