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제목 詩鏡 - 호모 루아* / 나희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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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鏡 - 호모 루아* / 나희덕

기사입력 2014.06.05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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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경詩鏡 - 시가 있는 목요일

안녕하세요. 박정자입니다.

상처를 치료하는 입김은 ‘호-호’, 언 손을 녹이는 입김은 ‘하-하’입니다. 같은 입김이지만 온도가 다르기 때문이지요. 또 입김이 구체적인 기호를 형성하여 영향력을 행사할 때는 사람을 죽일 수도 있는 가공할 무기가 된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우리의 입김이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아서, 사람의 체온만큼만 따뜻해서, 아픔을 위로하고 추운 마음을 어루만지는 스스럼없는 노래로 흘렀으면 좋겠습니다.   






   호모 루아* / 나희덕 

   호모 파베르이기 전에
   호모 루아, 입김을 가진 인간 

   라스코 동굴이 폐쇄된 것은
   사람들이 내뿜은 입김 때문이었다고 해요
   부드러운 입김 속에
   얼마나 많은 미생물과 세균과 독소가 들어 있는지
   거대한 석벽도 버텨낼 수 없었지요 

   오래전 모산동굴에서 밤을 지낸 적이 있어요
   우리는 허공에 하얀 입김을 피워올리며
   밤새 노래를 불렀지요
   노래의 투명성을 믿던 시절이었어요
   노래의 온기가
   곰팡이를 피우리라고는 생각 못했어요
   몸이 투명한 동굴옆새우들이
   우리가 흘린 쌀뜨물에 죽었을지 모르겠어요 

   입김을 가진 자로서 입김으로 할 수 있는 일들
   허공에 대한 예의 같은 것 

   얼어붙은 손을 녹일 수도
   유리창의 성에를 흘러내리게 할 수도
   후욱, 촛불을 끌 수도 있지만
   목숨 하나 끄는 것도 입김으로 가능해요
   참을 수 없는 악취
   몇 마디 말로
   영혼을 만신창이로 만들 수도 있지요 

   분노가 고인 침으로
   쥐 80마리를 죽일 수 있다니,
   신의 입김으로 지어진 존재답게 힘이 세군요
   그러니 날숨을 조심하세요
   입김이 닿는 순간 부패는 시작되니까요 


   * Homo Ruah. 'Ruah'는 히브리말로 '숨결', '입김'을 뜻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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