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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밥 속에 숨겨진 이야기

기사입력 2013.08.10 1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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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신성철 데일리인도네시아 대표(dailyindonesia.co.kr)

이슬람 여성들이 머리에 쓰는 ‘질밥(Jilbab 또는 히잡)’을 통해 최근 인도네시아 사회와 정치 변화를 짚어보았다. 이 글은 ‘나의 이슬람’(원제 줄리아의 지하드, 저자 줄리아 수르야꾸스마, 옮긴이 구정은/푸른숲)’과 ‘이슬람 문화’(최영길/알림)를 참고했다.

80년대 말 질밥 쓴 여성은 드물었다
지난 3월 9일, 자카르타 붕까르노 종합경기장에서 열린 K-pop 공연장을 찾은 2만여 명의 인도네시아 팬들 사이에 질밥을 쓴 소녀들이 많이 눈에 띄었다. 한창 멋을 부릴 나이에 있는 여성들이 머리카락을 가리는 질밥을 쓴 것을 보며 순간적으로 여러 가지 생각이 스쳤다. 질밥은 단순히 종교의 의미를 넘어선다.   

필자가 80년 말 인도네시아에 첫 발을 디뎠을 때만해도 질밥을 쓴 여성은 흔하지 않았다. 한국계 제조공장에서는 작업장의 안전을 위해 질밥을 쓰는 직원의 채용을 꺼렸으며, 드물게 질밥을 쓰고 온 여직원에게 질밥 착용을 통제하면, 이 여직원과 관계된 이슬람 지도자가 회사를 방문해 항의하는 정도였다. 당시에는 질밥 문화가 없었거나 유행이 아니었다.

이슬람 계율에 따르면 몸에 딱 달라붙은 옷은 여성의 가슴을 비롯하여 허리, 엉덩이, 허벅지를 돌출시켜 유혹의 원인이 됨으로 외출할 때 두루마기와 비슷한 의상인 차도르(Chador)를 입는 것이 꾸란의 계율이다. 차도르는 주로 이란 등 중동지방에서 여성 무슬림들이 입는다. 머릿수건과 달리 온몸을 다 가리는 망토 형태다. 20세기 초반까지는 꽃무늬 등 화려한 천으로 만들었는데 지금은 검은색이 일반적이다.

무함마드가 성숙한 여성은 그녀의 얼굴과 손을 제외하고는 노출시키는 것이 아니라는 전통을 남겼기 때문이다. 여성이 자신의 몸을 노출시킬 수 있는 남성은 아버지, 남편, 시아버지, 자식, 남자형제, 조카, 성욕을 소멸한 하인이나 내시, 성에 대한 부끄러움을 모르는 남아로 제한하고 있다. 이러한 이유로 여성의 미를 자랑하는 미인선발대회가 이슬람사회에서 아무런 가치와 의미를 갖지 못한다.

노출된 부분이 없어서 남성의 눈을 유혹하거나 코를 자극하지는 않지만 차도르 속에 화려한 의상과 아랍의 진한 향수는 아랍 남성의 마음을 매혹시킨다. 차도르 생활에 익숙한 여성은 치근대는 남자가 없어서 편하고 외출시 치장에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되며 낡은 옷이라 할지라도 차도르가 가려주기 때문에 편리함을 느낀다.

▲ 지난 3월 자카르타 붕까르노 주경기장에소 열린 뮤직뱅크


수하르토 시대의 이슬람
신질서 시대인 1989년 어느날 필자의 부하직원이 며칠 동안 결근한 후 질밥을 쓰고 출근해, 이유를 물으니 말없이 미소를 지었다. 다른 동료들을 통해, 그 여직원이 실연을 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녀는 질밥을 씀으로써 무언가로부터 보호를 받는다고 느끼면서 마음을 정리하는 것 같아 보였다.

개방적인 이슬람국가에서 많이 쓰는 질밥은 수하르토 시대인 신질서 시기에는 드물게 볼 수 있었다. 신질서 시대에는 중앙집권 강화와 종교집단이 정치세력화 하는 것을 막기 위해 이슬람을 의도적으로 억눌렀다. 또한 수하르토 대통령은 이슬람 세력의 지원을 얻고자 1990년 당시 과학기술부 장관인 하비비를 총재로 인도네시아지식인무슬림연합(ICMI)을 결성한다.

이 조직은 1991년 말 인도네시아 27개 주에 지방조직을 갖춘 대조직으로 확장했는데 정부고관, 퇴역군인, 학자 등을 영입하고 정부의 이슬람 정책에 불만을 품고 있던 원로 이슬람 지도자들을 끌어들여 이슬람 세력을 통제했다.

개혁시대, 질밥의 등장
1998년 수하르토 퇴진 후, ‘개혁(Reforamsi)’시대가 열리면서 사회변혁이 급진적으로 진행됐다. 인도네시아 ‘개혁’은 국가의 통제와 폭력, 사회의 억압으로 지탱했던 수하르토 신질서 체제가 만든 사슬을 푸는 작업이었다. 신질서 체제를 해체하는 핵심은 중앙집권화된 권력을 풀어 여러 지역 단위에 자치를 허용하는 일이었다. 2005년 말부터 잇달아 실시한 지방자치 선거들은 수십년 동안 이 나라가 겪었던 변화 가운데 가장 큰 사건이었다.

당시 수하르토 세력하에 있었던 많은 엘리트들이 ‘개혁세력’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정계에 등장했다. 그들은 수하르토 시절 정치공작을 펴던 이들과는 다르다고 강조하면서, 지역 여론을 주도하는 이슬람집단 같은 보수파의 환심을 사려고 보수 이슬람 입맛에 맞는 사회적 의제를 내걸기도 했다. 이슬람 세력이 정치 공백을 대체하면서 이슬람 정당은 물론 이슬람수호전선(FPI)과 인도네시아 무자헤딘 등 과격하고 강경한 이슬람 단체들이 세력을 떨치게 된다.

또한 이슬람 정당들이 국회에서 교섭권을 가질 만큼 의석 수를 확보한다. 그래서 관습법이나 샤리아 등에 포함된 보수적인 도덕 규범을 일부 지자체가 조례로 만들었다. 이런 현상은 아쩨에 두드러지는데 이 생활규범들은 여성을 눈에 띄게 차별한다. 특히 반뜬주 땅그랑, 서부자바주 찌안주르, 서부수마트라주 빠당, 남부술라웨시주 등 종교적 사회적으로 다양성이 강한 지역에서 이슬람 규범이 강제됐다.

1945년 독립 후 인도네시아 헌법은 샤리아를 비롯한 종교규범을 배제해왔지만 최근 도입한 몇몇 사회 규범의 뿌리가 이슬람 보수주의에 있음은 분명하다. 2002년 극단적인 이슬람주의자 아부바까르 바아시르 비롯한 이슬람 강경파는 국민협의회(MPR)에서 모든 무슬림이 샤리아를 따르도록 강제하는 ‘자카르타 헌장’을 헌법에 집어넣으려다 실패했다. 국가 차원의 샤리아 운동이 실패하자, 지역을 기반으로 삼아 곳곳에서 따로 움직이며 꽤 성과를 거둔 이슬람 보수주의 운동이 서로 연계하고 있다. 

사회학자이며 개혁적인 이슬람 신자인 줄리야 수르야꾸스마는 이렇게 말한다. “머리에 뭔가를 덮어쓴다고 해서 정신적으로 신과 더 가까워진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정신적인 힘은 내면에서 나오지, 이슬람 옷가게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무엇보다도 나는 종교적 형식주의에 관심이 없다. 요즘 들어 그걸 쓰게 하느냐 마느냐가 정치적인 쟁점이 되고 있지만, 정치가 됐든 패션이 됐든 종교의 문제는 우리 정신을 위해서 꼭 필요한 게 아님은 분명하다”

줄리아는 일체감과 획일화가 강요된 수하르토 정권이 붕괴된 후, 여성은 전통의상인 끄바야(kebaya)에서 부사나 무슬림(Busana Muslim)으로, 남성은 사파리 복장에서 바주 꼬꼬(Baju Koko) 로 다시 획일화됐다고 지적했다.

이슬람 문화의 상업화
“왜 질밥을 쓰는가?”라는 질문에 자카르타에 근무하는 한 직장 여성은 “헤어스타일에 신경 쓰지 않아도 되고, 얼굴 선을 바꿀 수 있어 예쁘게 보인다”고 답했다. 한 언론사 근무하는 모 여기자는 “밤 늦게 퇴근하는 경우가 많은데, 대중교통을 탈 경우 질밥을 쓰면 집적거리는 남자들이 없어 편하다”라고 말했다.

2010년 전후로 개인소득 증가하고 중산층이 확대되면서 소비성향이 높아지고 문화적 요구가 강해짐에 따라 이슬람 문화의 상업화가 급격히 진행되고 있다. 이슬람 패션산업이 확대되고 최근에는 이슬람 여성들만 출입할 수 있는 미용실인 살론 무슬리마(Salon Muslimah)도 등장했다. 다른 한편에서는 인도네시아가 이슬람패션의 중심이 되고 있다는 긍정적인 평가가 있고, 정부도 이를 수출산업의 하나로 육성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라마단에 회사, 동창회, 친지 모임 등을 내걸고 식당에서 부까뿌아사(Iftar) 회식이 한 달 동안 계속되는 등 부까뿌아사 문화가 확산되는 반면, 순수한 종교적인 의미는 퇴색되어 가고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질밥 패션의 뒤에는 이슬람을 인도네시아 전통문화의 하나로 받아들이고, 이를 상업적으로 활용하려는 상인들과 이를 확산시키는 미디어가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제는 질밥을 바라보는 시선을 바꿔야 할 시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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