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제목 더운밥엔 찬 구득이 그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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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운밥엔 찬 구득이 그만

기사입력 2012.05.18 0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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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득(Gudeg)

사떼(sate)와 미(mi) 그리고 나시고렝(nasi goreng)이 인도네시아 음식을 대표한다고 쓴 적이 있다. 사떼는 인도네시아에서 가장 흔한 가축인 닭(ayam)과 염소(kambing)를 필두로 해서 각종 육류와 어패류(魚貝類)의 살코기를 어른 검지손가락 끝마디 정도의 크기로 잘라 너댓토막 씩을 30센티 남짓한 대나무 꼬챙이에 꾄 후 양념을 듬뿍 발라서 무쇠 석쇠 위에서 구워낸 것이다.

미는 면(麵)인데 다양한 형태가 있다. 미의 재료도 또한 다양한데 밀가루는 비싸서 흔하지 않고, 쌀가루나 싱꽁(singkong) 또는 사구(sagu)분말이 많고 대개의 경우 몇 가지 재료가 혼합된 것이다. 멀건 닭고기 국물에 말아 내오는 것이 서민용 미(麵)지만, 미고렝(mi goreng)이라 하여 각종 야채와 육류를 썰어 넣고 야자기름에 볶아서 식탁에 올리는 것도 흔하다.

나시고렝은 볶음밥이다. 미고렝처럼 맛깔스럽게 야채와 잘게 썬 닭이나 염소고기를 밥과 함께 야자기름으로 볶아낸 것이다. 웬만한 식당에서는 나시고렝을 주문하면, 한 두 토막의 닭튀김이 따라 나온다. 이들 음식의 간을 맞추는 것은 소금이나 간장이 아니고, 삼벌(sambal)이라 하여 매운 고추와 마늘․양파․땅콩․새우등을 갈아 만든 양념고추장이 등장한다. 

다 알고 있는 것처럼, 인도네시아는 세계 최대의 도서국가이다. 도서(島嶼) 수가 17,000여 개나 되고 300여 종족으로 구성된 2억4,000만 명의 인구가 10,000여 개의 크고 작은 섬에 흩어져서 독립적으로  살고 있다. 『인도네시아 사람들과 그들의 문화』(Kebudayaan dan Manusia di Indonesia)를 저술한 꾼쨔라닝랏(Koentjaraningrat)교수는 인도네시아 문화인류학(文化人類學)에 관한 많은 저술활동을 한 세계적인 학자이다. 그 분은 생전에 위와 같은 개론서(槪論書)에 이어서 인도네시아의 중심도서인 『쟈바 문화(Kebudayaan Jawa)』를 심도 있게 파헤치고 또 변방의 『고립(孤立)종족사회(Masyarakat Terasing di Indonesia)』에 대해서도 또 다른 역서(力書)를 남겼다. 인도네시아 종족문화의 다양함을 나타내는 대표적인 저서들이다.

그러니 종족문화를 대변하는 음식문화를 하나로 정리해서 딱 부러지게 “이것이다.”라고 묶어낸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사떼와 미와 나시고렝 그리고 삼발이 ‘쟈바(Jawa)를 중심으로 한 인도네시아 음식을 대표한다’고 바꿔 써야 할 것 같다. 쟈바만 해도 그렇다. 쟈바족․순다(Sunda)족․마두라(Madura)족이 대표 종족이라고는 하지만, 쟈바는 수많은 종족과 그들의 문화가 뒤섞인 다종족과 다문화의 용광로(鎔鑛爐)가 분명하다는 결론에 이르고 보면 인도네시아 문화에 대한 어떤 작은 글도 자신 있게 쓰기가 망설여진다.

쟈바의 음식문화를 설명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하나가 구득(gudeg)이다. 지역에 따라서는 ‘구덕’이라고도 칭하는 구득을 우리의 김장김치로 비유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요즘이야 언제 어디서나 먹을 수 있는 것이 김치지만, 필자가 한창 클 때만해도 김치는 분명히 겨울용이었다. 상하(常夏)의 나라 인도네시아는 그날그날 그 날 먹을 음식을 만든다. 끼니 때 마다 조리를 한다고 보면 된다. 날씨 탓에 음식 보관이 어려울 뿐 아니라, 밥을 제외하면 조리할 음식이 뻔하고 조리기구도 간편하며 조리방법도 간단하기 때문이다.

도심을 조금만 벗어나도 연료는 아직도 숯이나 마른 나뭇가지를 땐다. 석유는 흔하지만, 석유곤로는 신혼부부가 마련하는 혼수품에 속한다. 그러므로 반찬으로 만들어서 오래두고 먹는 것이 없다. 그 예외적인 것이 바로 구득이다. 새벽밥을 해서 접시에 더운밥을 담아 내고, 서너 수저의 구득을 밥 위에 얹어 식탁에 앉으면 따끈한 차(茶)가 한 잔 따라 나온다. 수저가 여러 차례 닿은 구득은 다시 데워서 서늘한 곳에 보관한다. 내일도 먹고 모레도 먹을 것이다. 이곳의 가난한 사람들은 ‘더운밥에는 찬 구득이 그만’이라고 말한다.

구득의 주재료는 낭까(nangka)라는 과일이다. 적도를 중심으로 넓게 분포되어 있는 낭까나무는 저지대로부터 해발 표고 1,000m 근방까지 비가 많이 내리는 지역에는 어디에서나 쉽게 발견된다. 산지(山地)에 자생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대저택의 정원용으로도 손색이 없다. 다 자라면 키가 25m에 이르는 이 나무는 최고급 건축자재로 쓰이는데 속살은 황색이거나 검정색이며 300년 이상을 견딘다고 한다. 이 낭까 나무의 열매인 낭까는 열대지역에서 발견되는 식용과일 중 가장 크다.

중부 쟈바의 죡쟈카르타(Yogyakarta)거리에는 낭까 노점(露店)이 많다.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 많은 유학생들 때문이다. 우연하게 들린 한 노점에서 33㎝의 직경에 길이가 55㎝이고 무게가 10㎏을 넘는 놈을 확인하였는데, 평생을 낭까 노점상으로 지냈다는 점주(店主)는 더 큰 것이 얼마든지 있다고 했다. 한 번은 가쟈마다대학교(UGM) 구내에 주차한 승용차 끼쟝(Kijang) 위로 낭까가 떨어졌는데, 눈에 확연하게 드러날 만큼 차체가 움푹 패였다. 인도네시아는 많은 기담(奇談)과 괴담(怪談)이 있다. 그 중 하나가 ‘날이 어두워진 후 낭까 나무 밑에 앉아 있으면 정신이 나간다(미친다)’는 것이다. 더위를 피해서 밤중에 혼자서 낭까 나무 아래에서 쉬고 있다가 저절로 떨어지는 육중한 낭까에 머리를 맞아 변을 당할지 모르니 조심해야 한다는 경구(警句)쯤으로 생각된다. 

낭까는 두리안(durian)의 대용(代用)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맛이 비슷한 구석이 있고, 두 과일의 수확기가 우기가 시작되는 10월 중순께부터 다음해 1월 초까지로 같기 때문이다. 두리안은 열대과일의 본산지인 인도네시아에서도 소출(所出)이 많지 않고 값도 비싸서 서민들은 쉽게 사먹을 수가 없다. 간혹 길가에 앉아서 두리안을 까먹고 있는 현지인 아낙네들은 대개 입덧 중이거나 몸을 덥게 해야 하는 예비 임산부(姙産婦)들이라고 했다. 집안에 두리안 나무를 몇 그루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대개 동네부자들이다.

두리안 나무는 강수량 등 기후에 예민하게 반응하며 쉽게 고사(枯死)한다. 그러나 낭까는 그렇지 않다. 나무 자체도 우람하고 억세 보이며, 가지도 굵고 잎사귀도 두껍고 성인 손바닥만큼이나 넓다. 코끼리나 물소를 닮은 나무이다. 두리안과 낭까 과일은 모양이 전혀 닮지 않았다. 그러나 굳이 외형상의 유사점을 찾아본다면 열대지역의 야성(野性)을 지닌 과일이라는 점이다. 한 쪽은 곱게만 키운 무남독녀(無男獨女) 외동딸이거나 삼대독자(三代獨子) 같다면, 다른 한 쪽은 가난한 집 여러 형제의 장남(長男)처럼 어떤 난관(難關)도 능히 헤쳐나갈 수 있는 시골 농가의 머슴 같은 녀석이다. 낭까는 그만큼 서민적인 과일인데, 독특한 과일향(구린내)과 몸을 덥게 하는 효능이 두리안과 비슷하다고 한다. 

시르삭(sirsak)이라는 과일에 대한 설명을 곁들일 필요가 있다. 이 과일은 눈처럼 하얀 과육을 파내서 조각얼음과 설탕을 넣고 믹서(mixer)로 잠깐 돌리면, 유럽 관광객들이 선호하는 마실만한 음료가 된다. 낭까나 두리안과 닮은 구석이 별로 없는데, 예로부터 이곳에서 시르삭을 ‘네덜란드 낭까’(nangka belanda)라고 불렀다. 그러고 보니, 낭까와 시르삭은 크기는 비교가 되지 않지만 외형(外形)이나 외피(外皮)가 비슷하게 생겼다. 반(反)외세적 정서가 가장 강한 수마트라 북단(北端)의 아쩨(Aceh)에서는 이 시르삭을 네덜란드 두리안(durian belanda)라고 한다.

‘네덜란드 낭까’나 ‘네덜란드 두리안’은 모두 오랜 식민통치시대부터 힘(무력)으로 당할 수 없는 네덜란드에 대한 항거(抗拒)의 의미로 자리잡은 보통명사들이다. 시르삭이 낭까와 같지 않고, 더구나 두리안과 견줄 수 없다. 그저 모양만 좀 닮은 것이다. “네덜란드는 낭까나 두리안이 아니고 시르삭이다.”라며 네덜란드를 경멸하는 정서를 담고 있다는 말이다. 아쩨에서는 아직도 떼 블란다(teh belanda)라는 단어가 통용되고 있다고 한다. ‘네덜란드 차(茶)’라는 뜻인데, 처음에는 네덜란드사람들이 음용(飮用) 하던 소다수를 지칭하였으나, 나중에는 ‘맹물’을 속칭(俗稱)하여 ‘떼 블란다’라 하였다.  

낭까는 암수 꽃이 한 나무에 피고, 싹이 튼 후 5년이 지나면 열매를 맺기 시작한다. 낭까(열매)는 대개 낭까 나무의 몸통에 붙어 자라지만, 나무 자체가 커지면서부터 큰 가지 사이에도 매달린다. 한창 물오른 낭까나무를 유심히 관찰하면, 육중한 낭까(열매)가 동화책에 나오는 뿔 도깨비들이 요술부린 나무에 크고 작은 초록색 보물주머니가 잔뜩 매달린 것 같은 착각이 든다. 이 과일은 연중 수확이 가능하지만, 쟈바 지역에서는 10월 중순께부터 이듬해 1월 초순까지가 제철이다. 낭까는 처음 대하는 사람이라면 혐오감을 가질 만큼 흉물스럽게 생긴 과일이다.

이 녀석은 진녹색으로 출발하여 연녹색으로 커진 후 점차로 연한 황갈색으로 익어 간다. 낭까는 찔려도 괜찮은 정도의 작은 가시로 뒤덮인 두꺼운 외피(外皮)를 하고 있는데, 언뜻 보기에 심한 곰보딱지를 연상케 한다. 이 과일은 직경이 3-4㎝나 되는 질긴 꼭지에 매달리기 때문에 다 익은 후 저절로 떨어지기 전에는 웬만한 외부 충격에는 꿈쩍도 하지 않는다. 낭까 꼭지는 낭까열매의 심지(hati)로 연결되고 심지를 중심으로 낭까 과육(daging)이 촘촘하게 매달린다. 비유가 어렵지만, 옥수수를 연상해 보자. 옥수수 대공(심지)에 옥수수 알갱이가 잔뜩 매달리듯이 낭까 심지(3-5㎝)를 둘러싸고 10㎝ 전후 길이의 융털형 돌기 모양의 과육(果肉)주머니가 틈새 없이 빼곡하게 매달려서 원통(圓筒)을 이룬다. 옥수수의 경우처럼, 꼭지가 달린 쪽은 지름이 좀 더 크고 그 반대쪽은 약간 좁아진다.

과일의 제왕(帝王)인 두리안의 특징은 진하고 독특한 과일향(구린내)이다. 두리안 대용으로 통하는 낭까는 두리안 유형의 향을 약간 가지고 있다. 보다 독자적인 낭까의 특징은 고무(getah)향(香)이다. 아직 어린 낭까 일수록 심지를 통해서 눈(雪)처럼 하얀 고무액즙을 많이 배출하고 그 만큼 고무향도 강하다. 반대로 낭까가 익을수록 고무즙 배출량이 줄어들고 고무향도 감소한다. 어린 낭까가 많이 배출하는 고무즙은 매우 끈끈하다. 마른 손에 묻은 고무즙은 여간해서 떨어지지 않는다. 식용유를 발라야 제거할 수 있다. 그래서 이곳 사람들은 낭까의 고무 수액을 긴 장대 끝에 잔뜩 발라서 높은 나무 위에 집 짓고 사는 새를 잡아 관상용으로 내다 파는데 이용한다. 낭까 고무 수액이 날개 죽지에 묻으면 웬만큼 큰 새도 날아가지 못한다고 한다.

어린 낭까는 과육뿐만 아니라 심지도 식용으로 쓰인다. 낭까가 어느 정도 익으면서부터는 심지는 쇠어서 먹을 수 없고, 반대로 과육의 당도(糖度)는 증가한다. 이때쯤 낭까의 과육을 심지로부터 떼어내면 심지 쪽 부분에서 고무액즙이 하얗게 일어난다. 고무액즙은 냄새도 역하지 않고 맛도 괜찮다. 낭까가 다 익으면, 고무액은 심지 끝 부분에서만 조금 나타날 뿐이다. 

낭까의 묘미(妙味)는 고무향을 취향(取香)하는 것이다. 그래서 서부 쟈바(Jawa)와 순다(Sunda)해협을 중심으로 수마트라(Sumatra) 남부까지 분포되어 있는 순다족 사람들은 덜 익은 낭까를 좋아한다. 이들에게 물으면, 다 익은 낭까를 무슨 맛으로 먹느냐고 한다는 것이다. 커피가 귀하던 시절에 다방(茶房)에 가면, 한 잔 커피에 여러 스푼의 설탕을 타서 마셨다. 그리고는 “커피를 설탕 맛으로 먹느냐?”는 주변의 빈정거림을 들었다. 순다사람들도 단맛을 좋아하는 쟈바족 사람들에게 ‘낭까를 단 맛에 먹느냐?“고 빈정거린다고 한다. 그만큼 낭까의 고무향은 이를 즐기는 이들에게는 우리의 잘 익은 김치냄새와 같은 것이다.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나랴’라는 우리의 속담과 가장 가까운 것이 인도네시아에서는 ’낭까를 먹지도 않았는데 고무액즙이 묻으랴‘(Tidak makan nangkanya, kena getahnya.)라는 것이다. ’낭까는 혼자 먹었는데, 고무액즙은 여러 사람한테 묻었다‘(Seorang makan buah nangka, semua kena getahnya)는 속담도 있다. 한 사람이 자신의 잇속을 채우려고 재주를 부리다가 일을 그르쳐서 많은 사람들이 피해를 떠맡게 된 경우에 쓰이는 속담이다. 그만큼 낭까는 인도네시아인들의 생활 속에 자리잡고 있다.

짙은 황색인 낭까 과육은 그런 대로 우리들의 입에도 맞는다. 더구나 잘 익은 낭까는 매우 달다. 그러나 낭까 과육은 사과나 배 혹은 복숭아처럼 우리 주변의 과일을 한 입 베어 씹는 느낌과 전혀 다름을 알 수 있다. 감을 깎아 말려 굳어지기 이전의 곶감처럼 다소 질긴 질감이 느껴진다. 일종의 육질감(肉質感)이다. 낭까는 길가 노점상에서는 무게로 달아서도 팔고, 얼마치 달라고 하면 몇 개를 떼어 주기도 한다. 헌 고무신이나 빈 병을 가져다 주면, 철거덕거리는 가위 뒤통수로 넓적한 끌을 때려서 엿을 조금씩 떼어 주던 50년대의 엿장수가 생각난다.

낭까는 흔한 만큼 값도 싸다. 빠빠야 다음 순서쯤 된다. 낭까 과육 안에는 갈색 계통의 씨가 한 개씩 들어 있다. 브똔(beton)이라고 하는데, 어른의 엄지손가락의 끝마디 만한 크기다. 맛도 좋아서 땅콩과 밤의 중간 정도 되고, 재래시장에 가면 됫박으로 파는 서민 대중들의 간식용으로 흔히 볼 수 있다. 브똔은 은행알 비슷한 다소 딱딱한 외피와 얇은 갈색의 내피를 가지고 있다. 이곳 사람들은 집집마다 브똔을 모아 말렸다가 찌거나 기름에 튀겨서 먹는데, 많이 먹으면 방귀가 자주 나온다며 웃음보를 터트린다.

구득은 겉껍질을 벗겨낸 어린 낭까의 속살이 주재료이다. 구득의 본산지인 죡쟈카르타를 중심으로 중동부 쟈바에서는 구득용(用) 어린 낭까(nangka muda)를 뜨웰(tewel)이라고 부른다. 이곳의 재래시장에 가서 외국인이 뜨웰을 찾으면 구득에 대해서 훤하게 알고 있는 사람으로 대접받는다. 우선 신선한 쟈티(jati) 나뭇닢 몇 장을 넣고 적당한 크기로 썬 뜨웰을 한참동안 끓인다. 쟈티 나무닢은 구득이 먹음직스러운 검붉은 색깔로 변하게 채색하는 역할을 한다. 구득을 먹다가 나무닢이 섞여 나오는 경우가 더러 있는데, 바로 이것 때문이다.

뜨웰이 흐늘흐늘하게 삶아지면 물을 쏟아낸 후 달걀과 닭고기를 넣고 야자 속살(santan)을 듬뿍 긁어 넣은 후 다시 불을 지핀다. 달걀 대신 여러 종류의 새알을 넣기도 하는데, 오리알을 선호하는 사람들도 많다. 여유가 있는 집에서는 닭고기 대신 쇠고기를 쓰기도 한다. 다양한 종류의 양념이 구득 조리에 동원된다. 흰색과 빨강색 마늘, 생강, 후추, 뜨라시(trasi), 설탕(gula jawa)과 소금 같은 기초적인 양념 이외에 끄뚬바르(ketumbar)․끄미리(kemiri)․살람닢(daun salam) 등이 향료(香料)가 첨가된다. 이 중에서 끄뚬바르는 과거 네덜란드 식민통치시대부터 유럽인들의 식탁을 풍요롭게 했던 향료의 하나이다. 구득은 약한 불로 오래 동안 조리한다. 그동안 잘 익은 떼웰과 육고기는 양념류와 향료들이 천연 식용유인 야자기름에 녹아 조화를 이루며 먹음직스러운 구득으로 완성된다.

쟈바 역사와 문화의 중심지는 죡쟈카르타(Yogyakarta)이다. 쟈바를 대표하는 음식의 하나가 구득이고 그 중심지 또한 죡쟈카르타이다. 이곳의 구득은 죡쟈구득(gudeg jokja)라 하여 전국적인 특허음식으로 통한다. 이곳에서는 매년 구득페스티발(Pesta Gudeg Jokja)이 열린다. ‘선농단’에서 임금님이 만백성들이 설렁탕을 즐겼던 것처럼, 이곳에서는 술탄과 백성들이 함께 구득을 나누는 행사를 한다. 2003년 8월의 경우에는 지름이 2.2m에 높이가 1.25m에 이르는 초대형 항아리에 맛있는 구득을 가득 담아 전시하여 술탄 하멩꾸부워노(Sri Sultan Hamengkubuwono X)로부터 상을 받았다.(Kedaulatan Rakyat, 25 Agustus 2003)

구득은 비싼 편이다. 닭고기나 쇠고기와 달걀 또는 오리알이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주 간단하게 만든 구득도 많다. 종이에 싸주는 밥(nasi bungkus)에 한두 수저씩 끼얹어주는 것도 구득의 한 종류이다. 죡쟈카르타의 아디수찝또공항 입구에 있는 찌뜨로 구득식당(Rumah Makan Gudeg Bu Tjitro)은 이곳 사람들이 우선 추천하는 구득 식당이다. 또 다른 이들은 튀김 닭 집으로 유명한 수하르티(Rumah Makan Suharti)를 추천하기도 한다. 사람들의 입맛은 모두 가지각색이기 때문이다. 수마트라 사람들은 구득죡쟈는 너무 달아서 매운 삼벌을 듬뿍 넣어야 겨우 먹을 수 있다고 말한다. 더운밥에 찬 구득이라는 말에 펄쩍 뛰는 사람도 있다. 이들은 찬밥에 뜨거운 구득이 일품이라고 극구 주장하는 사람들이다.

글: 양승윤 한국외대 교수(동남아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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