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제목 묘연한 인니의 다원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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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연한 인니의 다원주의

기사입력 2012.02.17 1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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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원주의를 표방한 구스두르(Gus Dur)라는 애칭의 고(故) 압두라만 와힛 전 대통령.

지난 1월 23일엔 우리 한인사회도 우리의 전통명절인 구정을 임렉(Imlek)이라는 이름으로 공휴일로 보냈다. 그런데 인도네시아 정부가 구정을 공휴일로 정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은 것으로 기억되고 있다.

더구나 회교도가 다수인 이곳에서 중국, 한국, 베트남 등 일부 민족만이 구가하는 구정이 법정 공휴일로 지켜지는 데 대해 다소 의아해 하는 교민들도 있을 것이다. 실제로 구정이 인도네시아 땅에서 법정공휴일로 지정된 것은 얼마 되지 않는다. 그 이유는 역사적인 배경 탓이다.

현대사의 가장 큰 굴곡인 1965년 ‘9.30쿠데타’가 실패로 돌아간 직후, 쿠데타 주모자들이 심문 당하는 과정에 모택동과 주은래가 직접 사주한 중국공산당이 그 배후에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자 양국 주재 공관은 상대국가의 시위대에 의해 서로 보복적으로 방화, 파괴 당하는 목표물이 되었으며, 결국 수하르또 군부는 1967년 중국과 국교를 단절하기에 이른다.

이에 대한 후속조치로 대통령령에 의해 1968년부터 공공장소에서는 중국어를 사용할 수 없게 되었고, 중국어 출판물의 유통, 간행이 금지됨은 물론, 중국인의 전통춤인 바롱사이(사자춤)와 같은 중국문화 공연도 일체 금지 되었다. 이 기간 동안 한인사회도 간접적인 영향을 받게 되었으니, 고국에서 보내온 서적이나 편지는 일일이 세관과 우체국의 검열대에 올려져 우리 손에 들어 오기까지는 장기간이 소요되었는데, 그 이유는 간행물 속에는 한자가 섞여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기지개를 켜고 잠에서 깨어난 중국이 고도의 경제성장을 이룩하기 시작하여 중국과의 교류 없이는 경제적인 고립을 자초할 위기에 처한 인도네시아는 군부의 반대를 무릅쓰고 결국 1990년 8월 8일자로 중국과 국교를 회복하기에 이른다.

여성이 국가 지도자가 되는 것을 터부시하는 회교국의 관례상, 총선에서 제1당의 당수가 된 메가와띠가 대통령이 되는 것을 결사적으로 저지하기 위한 방안으로, 범 회교권(Poros Tengah)으로부터 추대를 받아 대통령에 당선된 구스두르는 ‘다민족사회(Pluralism)의 융합’이라는 정치철학에 입각하여 민족화합을 최우선 정책으로 삼고 이에 걸림돌이 되는 장애물들을 순차적으로 제거해 나가기 시작한다.

구스두르는 화교들에게 족쇄를 채우기 위해 30년 전에 제정된 대통령령 제14호를 과감히 폐지하여 2000년부터 구정을 ‘선택적 공휴일’로 시행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2년만의 단명으로 끝난 구스두르의 뒤를 이어받은 메가와띠 정부는 전임자의 정책을 계승하여 2003년부터는 구정을 아예 법정공휴일로 지정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제4대 대통령을 지낸 구스두르는 32년이라는 수하르또의 철권정치 기간 동안 단절되었던  민주화의 흐름에 물꼬를 튼 선도자로 평가되고 있다. 지난 12월 31일 구스두르의 3주기를 맞이하여 항상 다수(Majoritas)에 눌려있는 소수(Minoritas) 편에 서서 국정을 이끌었던 구스두르를 본받으라는 시민단체의 목소리는 커져가고 있으며 현재의 정치, 사회상황을 우려하는 국민들의 심려는 깊어만 가고 있다.

아흐마디야(Ahmadiyah)를 사이비종교라 하여 그들이 종교행사를 벌이는 모나스 광장을 습격하여 다수의 사상자를 불러 온 예나, 인도네시아에서는 소수 이슬람종파를 이루고 있는 시아파까지도 이단이라 하여 다수종파인 수니파에 의해 공격을 받는 상황에까지 이르며, 보고르 지역 따만 야스민(Taman Yasmin) 주택가에 위치한 개신교 교회(GKI) 건립 도중에 다수의 압력에 밀려 건축허가를 취소한 지방정부의 조치에 대해 대법원이 ‘교회건축은 합법’이라는 판결을 내렸음에도 불구하고 관할 행정당국은 절충안으로 장소 이전만을 권고하고 있는 실정이다.

다민족사회의 화합을 신념으로 삼고 개혁정국을 이끌었던 구스두르 전 대통령의 미망인인 신따 누리야(Sinta Nuriyah) 부인은 이를 보다못해 지난 1월 중순 휠체어에 의지한 채 ‘야스민 교회 사태’를 다루는 국회청문회에 직접 참석하여 남편의 신념이었던 ‘종교의 자유’를 지켜내지 못하고 다수의 횡포에 굴복하고 있는 현 정권을 비판하며, “현 정권은 어려운 문제에 봉착하기만 하면 자라처럼 목을 움츠리기만 하는데, 그렇게 유약한 정권이라면 교체되어야 한다.”는 직설적인 포문을 쏟아 내었다.

지난해 10월 개각에서 화교계인 마리 엘까 빵에스뚜 무역부장관이 관광창조경제부장관으로 자리를 옮긴 것은 중국산 민항기 도입을 비롯하여 지나치게 중국에 편향적인 정책을 펴온 데 대한 징벌적 조치라고 해석된다면, 결국 고위층에까지도 인종차별(Rasisme)적 요소가 개입되어 있음을 엿볼 수 있다.

국내 언론매체는 인도네시아가 앓고 있는 사회적인 병리현상을 Suku(종족), Agama(종교), Ras(인종), Antar Golongan(계층간 갈등)의 복합적 분출작용으로 요약한다. 실제로 매일 접하는 신문이나 방송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사회현상들은 어김없이 이 네 가지 요소들의 두문자 합성어인 ‘SARA’와 연관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헌법(UUD 1945) 제28조에 ‘종교선택에 대한 자유, 종교생활에 대한 자유’가 보장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신따 부인이 개탄한 대로 이교도에 대한 폭력과 물리력 행사가 자행되는 경우가 빈번하며, 헌법 제281조에는 ‘차별적인 조치를 받지 않고 차별행위에 대한 보호를 받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외지인(Pendatang)에 대한 토착민(Pribumi)의 텃세와 횡포가 자행되어 상행위에 지장을 받는 경우를 우리는 자주 경험하게 된다.

이제 우리는 ‘SARA’에 휘말리지 않고, 그 포로가 되지 않을 방책에 대해 고심하며 최대 외국인 커뮤니티의 위상에 걸맞는 품위를 견지하려고 노력하는 자세를 갖춰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글 : 김문환 / 칼럼니스트 

<상기 글은 재인도네시아 한인회에서 발행하는 2012년 2월호 '한인뉴스'에 게재된 내용을 필자의 동의를 받아 전재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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