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제목 [조연숙] 흑백요리사, 정체성을 요리하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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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연숙] 흑백요리사, 정체성을 요리하는 사람들

기사입력 2026.02.05 1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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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백요리사2 최종결승 현장 [유튜브 캡쳐]

 

<흑백요리사> 시청 후기   

 

넷플릭스 요리 경연 프로그램 〈흑백요리사〉를 보며 가장 오래 남은 감정은 ‘요리가 정체성의 언어가 될 수 있다’는 깨달음이었다. 이 프로그램은 단순한 요리 경연이 아니었다. 승패를 가르는 형식을 빌렸지만, 실제로는 사람들이 자신이 누구인지, 어디에서 왔고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음식으로 설명하는 과정에 가까웠다.


출연자들의 이력은 그 자체로 이동의 기록이었다. 한국 화교로 태어나 사회의 가장자리를 오래 걸어온 후덕죽, 미국에서 자라 한국을 다시 배워야 했던 안성재와 에드워드 리, 미국과 일본에서 각각 요리를 익히고 돌아온 손정원·정호영·최강록. 이들은 모두 ‘경계’ 위에서 살아온 사람들이다. 그래서 그들이 만드는 요리는 단순한 레시피가 아니라, 삶의 궤적이 담긴 결과물처럼 보였다.


이들이 한국 식재료로 양식·일식·중식을 만드는 과정은 단순한 퓨전이 아니다. 외국의 조리법은 수단이 되고, 한식은 완성된 틀이 아니라 계속 열려 있는 언어가 된다. 요리는 더 이상 국적을 고정하는 장치가 아니라, 정체성을 확장하는 도구가 된다. 재외동포가 자신이 어디에 속해 있는지 끊임없이 질문하듯, 이들의 요리 또한 “나는 어떤 맛을 가진 사람인가”를 묻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에드워드 리는 이 질문을 가장 솔직하게 드러낸 인물이었다. 그는 자신을 ‘비빔인간’이라 부른다. 어느 한쪽에도 완전히 속하지 못한 채, 늘 섞이며 살아온 사람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그의 요리는 늘 질문형이다. 무엇을 더할 것인가보다 무엇을 남길 것인가, 어느 편에 설 것인가보다 어떻게 이어갈 것인가를 고민한다. 그의 요리는 정체성이란 고정된 것이 아니라, 계속 수정되는 초안이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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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덕죽 셰프가 반죽하는 모습 [유튜브 캡처]

 

후덕죽의 존재는 또 다른 방향에서 깊은 울림을 남겼다. 그는 한국 화교로서 차별과 가난을 견디며 밑바닥에서 출발했다. 그러나 불평 대신 시간을 선택했다. 기본기를 쌓고, 경험을 축적하고, 결국 한국 최고급 주방의 중심에 섰다. 고급 식재료를 다루는 솜씨보다 인상 깊었던 것은, 단체전에서 묵묵히 마늘을 다지고 참외를 손질하던 그의 태도였다. 주방에서 중요하지 않은 일은 없다는 그의 자세는, 요리가 기술이기 전에 태도라는 사실을 다시 떠올리게 했다.


윤주모는 ‘시간이 만든 맛’을 보여줬다. 오래 끓이고, 기다리고, 조미료 없이도 깊은 맛을 만들어내는 과정은 요리가 결국 축적의 예술임을 증명했다. 임성근은 간장·된장·고추장 같은 기본 재료로 변주를 만들며, 전통의 힘이 어디에서 나오는지를 보여줬다. 요리괴물은 향신료를 다루는 감각에서 한국 요리의 또 다른 가능성을 드러냈다. 이 모든 장면은 한 가지 사실을 말해준다. 창의성은 번뜩임이 아니라, 반복에서 태어난다는 것.


이 흐름의 끝에 서 있던 인물이 최강록이었다. 그는 자신을 “조림을 잘하는 척하며 살아온 사람”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 ‘척’을 하기까지 쌓아온 시간은 결코 가볍지 않다. 결승에서 그가 선택한 것은 화려한 기술이 아니라, 자신이 좋아하는 재료로 만든 담백한 한 그릇이었다. 그리고 그는 말했다. 자신은 특별한 요리사가 아니라, 주방에서 묵묵히 일해온 수많은 사람 중 한 명일 뿐이라고.


그 말은 이 프로그램의 핵심을 정확히 짚었다. 그는 자신의 성취를 재능이나 행운으로 포장하지 않았다. 대신 함께 일해온 요리사들의 시간과 노동을 같은 자리에 놓았다. 그래서 그 우승은 개인의 성공이라기보다, 주방이라는 공간을 지탱해온 공동의 노동에 대한 인사처럼 느껴졌다.


선재 스님의 요리는 또 다른 방식으로 이 메시지를 확장했다. 그는 요리를 덜어내는 방식으로 접근했다. 조미를 최소화하고, 재료가 스스로 말하게 한다. 그 절제는 요리를 수행의 영역으로 끌어올린다. 먹는다는 행위가 단순한 소비가 아니라, 삶을 대하는 태도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다만 인도네시아에 거주하는 한국 동포로서 한 가지 아쉬움도 남는다. 이번 시즌에서는 동남아시아 음식의 존재감이 거의 드러나지 않았다. 그러나 현실에서 인도네시아 음식은 이미 한국인의 식탁 깊숙이 들어와 있다. 삼발의 매운맛, 레몬그라스와 갈랑갈(인도네시아 이름: 릉꾸아스)의 향, 코코넛밀크의 질감은 한식과 충분히 대화할 수 있는 요소들이다. 다음 시즌에는 동남아의 조리법을 자신만의 언어로 풀어내는 셰프들도 만나볼 수 있기를 기대한다.


〈흑백요리사〉는 결국 이렇게 말하고 있는 듯하다. 정체성은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계속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사람도, 음식도, 문화도 그렇게 자란다고. 그리고 그 과정은 언제나 조용한 반복과 성실한 노동 위에서 이루어진다고.


우리는 모두 각자의 주방에서 삶을 요리하고 있다. 오늘도 저마다의 방식으로 불을 올리고, 간을 보고, 자신만의 맛을 만들어가면서. 이 프로그램이 오래 남는 이유는, 그 평범한 과정의 가치를 정직하게 보여주었기 때문일 것이다. [데일리인도네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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