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본지는 <수카르노의 부인들> 제하의 칼럼을 연재합니다. 이 칼럼을 기고한 김문환 칼럼니스트는 ‘인도네시아 한인 100년사 대표집필자와 재인도네시아 한인뉴스 논설위원 등을 장기간 역임하였으며 저서로 ’적도에 뿌리내린 한국인의 혼‘ 등이 있다. 서방 언론으로부터 ‘미치광이, 공산주의자’로 험담 거리가 되어 있던 20년 독재자의 사생활 뒤엔 과연 어떤 진실이 숨겨져 있었을까? 지금부터 데일리인도네시아를 통해 그 전모를 파헤쳐 본다.
1. 시띠 우따리(Siti Oetari), 정략결혼
1901년 자바의 동쪽 끝 항구 도시인 수라바야 태생인 수카르노(Sukarno)는 13세가 되던 1914년 초등학교 교장인 부친의 친구이며, 개화기 선각자이던 쬬끄로아미노또(Tjokroaminoto)의 사숙(私塾)에 입교한다. 당시 쬬끄로아미노또(이하 쬬끄로)는 자바 지역에서 ‘예언자’, ‘절대군주’, ‘왕관 없는 자바의 왕’이라는 다양한 칭송을 받을 정도로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던 종교지도자였다.
이 시기 쬬끄로의 사숙 제자 중에 빼어난 세 사람이 있었으니 후일 철저한 민족주의자의 여정을 걸어가는 수카르노, 소련 공산당원이 되어 모스크바 유학에서 돌아와 1948년 9월 ‘마디운 공산당 봉기사건’을 일으켰다 처형당한 무쏘(Musso), 그리고 오늘날까지도 그 추종자들에 의해 추앙받고 있는 이슬람국가 이상주의자 까르또수위르요(Kartosoewirjo)가 그들이었다.
쬬끄로는 16세 된 자신의 딸 시띠 우따리를 여성의 마음을 능숙하게 사로잡을 줄 알며, 탁월한 연설능력을 과시하는 수카르노에게 넘겨주고 만다. 수카르노 나이 20세, 정략결혼이었다. 신혼의 단꿈에 젖어있어야 했던 수카르노는 그의 장인이 발행인이었던 ‘힌디아 대표’라는 언론 매체에 열심히 기고활동을 하며 민족정신을 고취시킨다.
1913년 네덜란드의 저명한 사회주의 정치학자인 헹크 스네이트플리트(Hank Sneevliet)가 피식민지국인 인도네시아에 입국한 다음 해에 인도네시아사회민주협회(ISDV)를 수라바야에서 창설하였으니 이 작은 단체는 소련 이외의 지역에서 결성된 최초의 공산주의 집단이었다. 단체가 결성될 당시 회원 수는 100명이었으며 이 중 현지인은 3명에 불과했고 나머지는 모두 네덜란드인이었다.
1917년 발발한 러시아의 10월 혁명(볼셰비키)에 영향을 받은 단체 내의 과격파들이 네덜란드 해군과 육군 병사들을 선동하여 1919년 말 ‘반제국주의’ 피켓을 들고 소요사태를 일으킨다. 이 폭동을 진압한 네덜란드 총독부는 스네이트플리트를 포함한 네덜란드인 간부들을 본국으로 추방하였거나 일부 요원들은 쬬끄로가 이끄는 이슬람연합(Sarekat Islam)이라는 단체에 침투하여 스마랑 출신의 철도종사원인 스마운(Smaun)과 상류층 출신의 다르소노(Darsono)를 포섭하여 1919년 경에는 총 400명의 회원을 확보하게 된다.
이와 같이 개화기의 격랑을 헤쳐나가는 수카르노의 연령 세대도 국가의 정체성, 혼인 등의 가정사를 앞에 놓고 고뇌에 빠지기 시작한다. 한편 1913년부터 1919년까지 네덜란드 유학 시절 헹크 스네이플리트를 만난 인연으로 스탈린의 비밀지령을 받았던 무쏘도 자카르타로 돌아와 봉기를 일으켰으나 실패로 끝나자 네덜란드 당국에 체포되어 수감생활을 마치고 모스크바로 돌아가고 말았다. -계속- [김문환/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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