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B 스파에서(인도네시아)
강인수
먼 곳까지 와서
때를 밀어달라며 몸뚱이를 맡긴다.
낯선 물결이 살 속 깊이 스며들 때,
다섯 뼘 평상 위에서 조용히 껍질을 벗는다.
둥글둥글 구르는 몸,
세신사의 손길 아래 삶은 달걀처럼
매끈히 까인다.
앞으로— 뒤로—
서툰 한국어가 허공을 맴돌고,
내 몸은 망설임 없이 데굴데굴.
익을 대로 익어 벗겨지는 게
껍데기뿐일까?
한때 나였던 것들이
잘게 부서진 지우개 찌꺼기처럼
사방으로 흩어진다.
염을 당하는 시체처럼
차갑게 닦이고 나서
천장을 바라본다.
때처럼 묵은 기억도
둥실 떠올라
맑은 물에 확— 쓸려간다.
그러나 살아 있다는 건
비눗물에 미끄러질까 봐
떨어지지 않으려
몸에 힘을 주는 것.
잠시, 매끈한 달걀처럼 반짝이며
때밀이 침대 위에서데
굴데굴 굴러다니다가
밖으로 나선다.
바깥의 옷을 입는 순간,
눈치 없이 뻔뻔한 흙비
세상에 내려온다.
시읽기
때를 벗기는 일은 몸을 가다듬는 행위입니다. 세상의 때를 벗기며
마음의 때를 생각해보았습니다. 이국의 목욕탕에 드러누운 맨몸의
내가 닦여지는 일은 낯선 땅에서 살아있음을 느끼는 일이었습니다.
한때는 나였던 것들이 부서지며 삶과기억을 정화하는 중에 현실에 대한 깨달음을
얻어내는 과정까지 그리고 다시 거친 세상으로 가는 현실을 시로 적어보았습니다.
강인수
시인. 한양여대에서 문예창작을 전공하였고, 2022년 계간<문장>에 시 ‘부재 중’이 신인상으로 당선되었다. 당선작의 제목에서 오랜 기간 자신을 돌아보고자 하는 마음이 전해진다. 1999년 자카르타로 이주했으며 현재는 한국문협 인니지부 재무국장과 우리시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