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팽이
강인수
달팽이가 간다.
굼실굼실 간다.
한참을 기어 왔는데
돌아보면 헛걸음도 많다.
배춧잎에 올라
허기를 채운다 싶었는데
씁쓸한 냄새 배어 있다.
더듬이를 흔들며
왔던 길을 배 밀며 내려간다.
세상이라는 잎사귀를 한 번쯤 밟아야
자기 집이 어디쯤인지 알게 되는 것.
헛걸음 끝에야
비로소 길을 아는 것.
참, 우리 인생 같구나.
시읽기
요즘 20대 시절 써 놓았던 시를 살펴보고 있습니다. 달팽이라는 시를 써 놓았더군요.. 몇 줄 고쳐서 다시 퇴고해봅니다. 젊은 날에 나는 무엇이 버겁고 고통스러웠을까, 추억을 소환해 봅니다. 生을 관찰하고, 비판하고 아파했을 젊음은 그 시기에만 누릴 수 있던 특권이 아니었을까 생각이 듭니다. 막다른 골목에 와서도 구멍은 뚫려있었으니 한참을 기어 온 것이 아닐까요? 달팽이의 가는 길이 꼭 우리 같아서 헛걸음 친 날들을 문밖에 걸어두고 잠들 때가 늘 있었으니까요.
강인수
시인. 한양여대에서 문예창작을 전공하였고, 2022년 계간<문장>에 시 ‘부재 중’이 신인상으로 당선되었다. 당선작의 제목에서 오랜 기간 자신을 돌아보고자 하는 마음이 전해진다. 1999년 자카르타로 이주했으며 현재는 한국문협 인니지부 재무국장과 우리시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