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글,사진 : 강인수
우리 아파트 주차장에는 나를 따르는 길고양이 한 마리가 산다. 그 영민한 동물은 어찌 된 일인지 내 발소리를 듣고는 멀리서도 뛰어와 내 발치에 앉아 야옹야옹 시끄럽게 애정을 갈구한다. 줄 것이 없어 미안한 마음에 황급히 집으로 달려가 한 줌 사료를 들고 나오면, 녀석은 여전히 그 자리에 앉아 나를 기다리고 있다.
비가 조금씩 흩뿌리기 시작하는 어느 날도, 고양이는 나무의 작은 구멍 아래 숨어 있다가 우산을 들고 걷는 내 발등 위로 다가와 반가움을 표시했다. 내가 반가운 것인지, 잊지 않고 들고 온 간식이 반가운 것인지 모르겠지만, 배불리 먹은 뒤 눈인사를 한 번 하고는 총총히 사라진다. 오늘은 외면하리라 마음먹었더라도, 열렬히 간구하는 눈빛을 마주하면 사람의 마음이란 약해지기 마련이다.
요즘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명예와 체면이란 참 별것 아니다. 고대광실에서 배부르게 살다가 초가삼간으로 옮길 수도 있고, 반지하에서 빛을 보지 못하다가도 어느 날 꼭대기 층에서 원 없이 볕을 쬘 수도 있는 것이 인생이다. 현실이 녹록지 않더라도 끊임없이 바라며 나아가면 결국 그 방향으로 가게 된다. 영원할 것 같은 평안도 재난을 만나면 한순간에 날아갈 수 있는 것 또한 그러하다.
살면서 공포에 가까운 사건이 터지면, 차라리 솔직하게 나의 형편을 털어놓고 도움을 청하는 것이 어떨까? 상대방의 사정을 고려해야겠지만, 명예와 체면 때문에 속앓이만 하기보다는 한 번쯤 용기를 내 보는 것도 방법이다. 어디선가 슈퍼맨처럼 도움을 줄 사람이 나타날 수도 있지 않은가.
반갑게 나를 따르던 고양이는 요즘 목에 방울을 달았다. 누군가 정기적으로 보살피는 모양이다. 고양이처럼 딱한 사정을 잘 표현하면 누군가의 긍휼한 마음을 받을 수도 있으리라.
요즘 뉴스를 보면 많은 이들이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안타까운 소식이 들려온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모두 불완전한 존재라는 사실을 다시금 깨닫게 된다. 그래도 살아야 한다.
어제 이 시인의 시를 읽으면서, 많은 사람들이 이런 마음을 가지고 살아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래도라는 섬이 있다
김승희강인수
시인. 한양여대에서 문예창작을 전공하였고, 2022년 계간<문장>에 시 ‘부재 중’이 신인상으로 당선되었다. 당선작의 제목에서 오랜 기간 자신을 돌아보고자 하는 마음이 전해진다. 1999년 자카르타로 이주했으며 현재는 한국문협 인니지부 재무국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데일리인도네시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