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비르역 달빛
강인수
감비르기차역*앞 간이 식당
여행자의 배낭에 사뿐히 내려앉은 달빛
나시고렝* 위에 앉은
달걀노른자처럼 얌전히 퍼지는 달빛
피곤해도 피곤해 보이지 않는
곱다란 소녀의 히잡에도
몰래 시치미 떼고 파고들지
귀향 선물 사느라 하루를
다 써버린 어느 노동자
그 주머니를 뒤적이는 달빛
대합실 창문 틈새를 기웃거리며
사람들 앞에 엎어지는 달빛
달려가는 기차 꼬리를 잡았다가
슬쩍 놓아버리고 괜히 울적했지
지금은 배웅해야 할 시간
삶은 보내기도 맞이하기도 하는
길게 돌아가는 물결
마지막 기차를 보내고
가로수에 매달려 텅 빈
거리를 쓰다듬던 달빛
마침내 선로 위를 덮으며
흩어졌다가 다시, 어디론가 흐른다
*감비르역: 자카르타의 주요 기차역 중 하나
*나시고렝: 인도네시아의 볶음밥
시읽기
이제 곧 무딕(귀향)의 시간이 다가옵니다. 도시에서 시골로 이동하는 현지인들의 대이동의 시간을 맞이할 텐데요. 기차역, 버스터미널, 도로에서 설레는 마음 안고 떠나는 귀향자들의 얼굴이 눈에 선합니다. 우리에게 돌아갈 고향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요.
강인수
시인. 한양여대에서 문예창작을 전공하였고, 2022년 계간<문장>에 시 ‘부재 중’이 신인상으로 당선되었다. 당선작의 제목에서 오랜 기간 자신을 돌아보고자 하는 마음이 전해진다. 1999년 자카르타로 이주했으며 현재는 한국문협 인니지부 재무국장과 우리시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데일리인도네시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