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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깝고도 먼 나라

기사입력 2011.12.20 1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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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이웃국가인 일본과 외교분쟁에 휘말리거나 그들에 대한 민족감정이 자극될 때면 ‘가깝고도 먼 나라’ 라며 경원시하는 경우가 있다. 그런데 우리가 현재 거주하고 있는 인도네시아도 이와 비슷한 애증관계로 얽혀있는 이웃나라가 있으니 말라카해협을 사이에 두고 30분 거리의 지척에서 서로 마주보고 있으며, 깔리만딴섬에서는 우리의 155마일 휴전선처럼 국경을 맞대고 있는 말레이시아가 바로 그 나라다.

2차대전의 종식과 더불어 동남아의 피식민지 국가들이 대부분 독립하자 이 지역의 신생국들은 주도권을 선취하기 위한 신패권주의를 발동시키기 시작했다. 특히 동남아시아 지역에선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말레이시아, 네덜란드로부터 오랜 기간의 식민통치에서 벗어난 인도네시아, 그리고 미국의 보호령에서 해제된 필리핀이 식민지시대 유산인 국경문제나 관할지역 문제로 수시로 충돌하고 있었다.

이들 3국의 원주민들은 말레이족이라는 공통점을 내포하고 있었으며 이를 근간으로 ‘말레이 연맹’을 결성하자는 주장이 대두되었다. 1962년 필리핀의 마카파갈 대통령은 말레이시아, 필리핀, 인도네시아간의 비정치적인 집단체인 마필린도(MAPHILINDO)를 주창하여 이 구상을 실현시키기 위해 정상외교를 가동시켰다.

그러나 마침 영국이 조정자가 되어 등장한 ‘말레이시아 연방안’이 수까르노를 자극하게 되자 이 구상안은 견제와 경쟁이라는 소용돌이에 말려 더 이상 진전을 보지 못하고 좌초되고 말았다. 수까르노가 2회에 걸쳐 정상회담 차 마닐라를 방문할 당시에도 수까르노는 마카파갈 대통령이 내준 국가영빈관 투숙을 거부하고 국회의장인 호세 로렐(Jose Laurel)의 별장에서 기거할 정도로 양자간의 관계는 지극히 감정적이었다.

한편 영국이 지난 100년간 자신들의 보호령이었던 말레이시아 반도와 영국령 보르네오인 사바, 사라와크를 통합한 ‘말레이시아 연방안’을 추진하자 수까르노는 이를 신제국주의의 위협이라며 강력히 반발하고 있었으니 소위 ‘말레이시아 대결정책(Konfrontasi Malaysia)’이 시작된 것이다.

영국의 지원을 받아 신무기로 무장된 말레이시아와 정면으로 무력대결을 펼치기로 결정을 내린 데에는 바로 직전에 성과를 거둔 이리안 자야(Irian Jaya) 무력침공에 고무되어 있었고, 세력확장에 혈안이던 인도네시아공산당(PKI)이 그들의 이해관계를 극대화하기 위해 이에 편승한 요인도 크게 작용하고 있었다.

실제로 국경지역인 서부 깔리만딴 뽄띠아낙(Pontianak)에 전시사령부가 설치되어 말레이시아령으로 공수부대를 낙하시켜 전쟁에 돌입하였지만 그 결과는 참담하기만 하였다. 영국과 그들의 동맹국인 호주, 뉴질랜드군을 직접 상대하거나 영국의 지원 하에 있는 말레이시아군과 대적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판단을 내린 아 야니(A.Yani) 장군의 육군수뇌부는 마침내 오직 과잉선전에 의존하여 세계의 이목을 끄는 데에만 열중하는 수까르노 대통령을 제쳐놓고 극비리에 화평의 길을 모색하고 있었다. 직전에 수행된 이리안 자야 군사침공작전으로 인해 정부예산은 이미 고갈된 상태였고 매일 백오십만 불이 소요되는 어마어마한 전비를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을 자각한 육군 수뇌부는 조속히 전쟁을 종식시켜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하고 있었다.

현직 대통령을 배제하고 군부의 주도로 극비리에 진행되던 정전협상은 1965년 10월 1일 터진 9.30쿠데타를 계기로 정국의 주도권을 잡게 된 수하르또 장군은 말레이시아의 라흐만(Abdul Rahman) 수상과의 교감을 통해 1966년 8월 ‘자카르타 협정(Jakarta Accord)’ 을 전격적으로 성사시킴으로써 마무리 되었다. 이 비밀협상의 주역들이 바로 수하르또 32년 정권의 2인자 역할을 수행하였던 알리 무르또뽀(Ali Moertopo) 대령과 베니 무르다니(Benny Moerdani) 중령이었다.

특히 베니 무르다니 중령은 말레이시아 대결정책이 종식된 직후 개설된 쿠알라룸푸르 주재 연락사무소장과 곧 이어 승격된 주말레이시아 대사관 서부지역 관할 총영사로 임명되어 특수전의 영웅에서 직업외교관으로 변신하는 계기가 되어 그로부터 3년 후인 1970년에는 주한 총영사로 부임하며 한국과 운명적인 인연을 맺게 된다.

지난달 11월에는 격년제로 열리는 동남아국가연합 10개국 체육대회가 남부수마뜨라 주도 빨렘방과 자카르타에서 분산되어 개최되었다. 인도네시아는 금메달 182개라는 사상 최고의 성과를 올려 종합우승을 차지하였지만 정녕 국민들이 가장 염원했던 승전보는 폐막 하루 전날 치러진 말레이시아와의 축구 결승전 경기였다.

1991년 이후 20년만의 우승을 노리며 대국으로서의 자존심 회복의 발판으로 삼고자 했던 이 경기가 연장전을 포함하여 120분의 사투 끝에 승부차기로 이어지자 말레이시아에서는 관전자 한 명이 심장마비로 사망하였고, 경기가 열린 자카르타 스나얀 경기장내에서는 입장하지 못한 관객들이 부서진 출입구를 통해 서로 밀치고 들어가는 과정에 2명이 압사하는 사고를 낼 만큼 이 경기에 임하는 양국 국민의 관심은 특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그런데 국민들의 관심만큼이나 경기장을 만석으로 메운 10만 명의 관중들은 평소답지 않게 이날만은 훌륭한 관중매너를 선보였으며 그라운드에서는 사투를 벌이는 선수들의 기량도 페어플레이 정신과 조화되어 축구의 진수를 보여주었다. 결국 승부차기로 말레이시아에게 금메달이 돌아갔지만 인도네시아 국민들은 이를 애석해 하거나 누구를 비난하기보다는 금메달 못지 않는 투혼을 보인 자국선수들과 코치진을 향해 격려와 찬사를 아끼지 않을 정도로 성숙된 모습을 보여 주었다.

말레이시아에서 취업하는 백만 명 이상의 인도네시아 근로자 문제, 국경해역에서 발생하는 해양분쟁 등으로 수시로 부딪히는 양국의 이해상충으로 인해 때로는 성토대상이 되고, 때로는 상부상조하는 이웃나라로서의 애증관계가 시험대에 오른 순간이었다.

말레이시아연방에서 분리된 싱가포르의 국부 이콴유의 할아버지는 중부자와 스마랑 출신의 할머니를 만나 스마랑에서 혼례를 올렸으며, 나지브 현 말레이시아 수상은 남부술라웨시 주종족인 부기스(Bugis)족이며, 마하띠르 수상 재직 시 부수상이었던 안와르 이브라힘은 인도네시아에 넓은 인맥을 구축하고 있는 대표적인 친 인도네시아파 인사이다.

최근 수년간 언론매체는 말레이시아와의 국경분쟁이 발생할 때마다 이를 크게 부각시키고 있다. 도서국가인 인도네시아는 해양주권 문제가 예전부터 국가 외교정책의 큰 틀을 이루어왔으며, 빠자자란 대학의 저명한 해양법학자인 목따르 꾸스마앗마자(Mochtar Kusumaatmadja) 교수가 1980년대 10년 내내 인도네시아 외교수장을 지냈을 정도로 이 문제는 지금도 중요한 외교현안이 되고 있다.

2011년 10월 31일부터 11월 18일까지 인도네시아는 2,500명의 해병대병력이 포함된 총 4천명의 해군병력과 더불어 23척의 함선, 11대의 항공기, 93대의 상륙정을 동원하여 동부 깔리만딴주 상아따(Sangatta) 해역에서 대규모 군사훈련을 실시하였다. 국제사법재판소에까지 제소되었던 북서 술라웨시 해역인 암발랏(Ambalat) 섬과 수마뜨라 리아우 해역에 위치한 나투나 해역(Natuna Sea)에서 분쟁이 발생할 때마다 양국은 무력을 불사하는 강경책을 고수해왔다.

양 분쟁지역의 공통점은 석유와 천연가스가 다량 매장되어 있다는 점이다. 언론통제로 인해 실상이 전달되지 않는 경우도 있지만 무력충돌이 있을 때마다 국민들에게 낭보를 전달치 못하는 경우가 있다 한다. 최근 들어 인도네시아가 공군력과 해군력을 서둘러 증강하는 이유가 언뜻 수긍이 가며, 우리 한국도 이 기회를 이용하여 T-52 고등훈련기, 잠수함 등 방위산업 수주전에서 좋은 결실을 맺고 있는 그 배경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글 : 김문환 칼럼니스트

<상기 글은 재인도네시아 한인회에서 발행하는 2011년 12월호 '한인뉴스'에 게재된 내용을 필자의 동의를 받아 전재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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