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파선의 나침반 -*프레이저아일랜드에서
강인수
호주에서 일본으로 가던 배가
허비베이에서 사이클론을 만나 방향을 잃었다지
목적지로 향하던 나침반이 멈췄을 때
살점이 뜯겨나간 철골
마헤노* 배는 모래 위에 누워버렸다
나는 항해하던 배의 나침반이 되는 상상을 했지
바람은 단지 공기가 아니라
길을 바꾸는 힘이 될 수도 있다는 걸
알았다
세찬 바람에 뒤척이며, 맞서며
소용돌이의 한가운데
바다 속에서 몸을 잃는 것
파도가 선미를 밀고
서로 부딪치며 누군가는 소리치며
어두움을 끌어내리려 애쓰는
심장이던 배의 키가 부러지게 되는
나는 내가 부서지는 소리를 들었지
물방울로 흩어지는 몸을 보았지
더 이상 내가 아니었을 때
모래 위 마헤노가 속삭였지
“그래도 가던 길로 향하자”
모든 소리가 파도에 잠겨버린 듯
난파선이 나침반을 꼭 쥐고
모래에 박혔는데도
아직 바늘은 목적지를 가리키고 있었지
*프레이저 아일랜드: 호주 동부 해안을 따라 뻗은 세계에서 제일 큰 모래섬
*마헤노:1935년 호주에서 일본으로 향하던 배가 폭풍으로 난파된 배이름
*시읽기
호주 브리즈번과 허번 사이에 있는 프레이저 아일랜드에 갔었습니다
긴 모래섬을 따라가다 보면 모래에 박힌 낡은 배 한 척을 만나게 됩니다.
그 배가 바로 마헤노라는 난파선인데 낡고 녹슬어서 가고자 했던 길을 못가고
멈춰버린 세월 속에 갇혔더군요. 배가 방향을 잃었으나 목적지는 잊지 않고 있는 듯
보였습니다. 비록 나침반이 모래에 묻혔을지라도....
*강인수
시인. 한양여대에서 문예창작을 전공하였고, 2022년 계간<문장>에 시 ‘부재 중’이 신인상으로 당선되었다. 당선작의 제목에서 오랜 기간 자신을 돌아보고자 하는 마음이 전해진다. 1999년 자카르타로 이주했으며 현재는 한국문협 인니지부 재무국장과 우리시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데일리인도네시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