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밥 (W.H 데이비스의 시 본보기를 읽고)
강인수
도마 위에서 김밥을 썰어보면
숨겨진 진실이 드러난다.
누구는 초록, 누구는 노랑,
누구는 분홍으로 태어나
밥 속에 몸을 묻었다.
아, 그 질서!
단정하게 자리 잡은 오이는
윤기나는 햄에게 “넌 너무 짜지 않아?” 하고 묻지 않고,
햄은 달걀을 보며
“넌 왜 그렇게 흐물거려?” 하지 않는다.
모두가 자신만의 색으로
한 칸씩 공간을 차지하며
흰 밥알의 품 안에서
묵묵히 존재할 뿐.
나는 깨달았다.
인생도 김밥처럼 말려야 한다는 것을.
흐트러지면 흘러내리고,
너무 꽉 말면 속이 터지는.
적당히, 그러나 단단히,
다른 사람의 맛을 해치지 않도록.
나도
초록 오이의 싱그러움과
노란 달걀의 온기,
분홍 햄의 부드러움을 닮아
세상의 밥알들처럼 둥글게 어우러지리.
이왕이면 깨알도 살짝 묻혀
조금 더 특별한 존재가 되어보리
*시읽기
김밥을 먹을 때마다 여러 생각을 하다보니 김밥은 제 소재로 많이 찾아옵니다. 장영희 교수님의 영미시집을 보다가 W.H.데이비스의 시를 읽고 써 본 시 입니다. 겨울의 시작, 他者를 생각하게 되는 계절입니다. 12월을 마무리하면서 다른 사람의 맛을 헤치지 않을 생각! 김밥 한 줄 드시면서 꼼꼼하게 말린 재료들을 살펴보면 어떠실지.. 오늘 점심은 김밥과 따뜻한 오뎅 한그릇 같은 시 한편 대접합니다.
*강인수
시인. 한양여대에서 문예창작을 전공하였고, 2022년 계간<문장>에 시 ‘부재 중’이 신인상으로 당선되었다. 당선작의 제목에서 오랜 기간 자신을 돌아보고자 하는 마음이 전해진다. 1999년 자카르타로 이주했으며 현재는 한국문협 인니지부 재무국장과 우리시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위로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