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의 시대, 한식당의 과제와 기회
조연숙 데일리인도네시아 편집장
최근 한국 언론들은 프랑스와 독일 등 유럽에서 중국계 현지인이 운영하는 한식당의 문제와 그에 따른 대응 방안을 집중 보도했다. KBS는 11월 23일에 프랑스와 독일 등 해외에서 중국인들이 운영하는 한식당이 늘고 있다고 보도하고, 그 문제점으로 정체불명의 한식과 한식의 이미지 왜곡, 공격적인 소셜미디어(SNS) 마케팅으로 인해 정통 한식당보다 상위에서 검색되는 점, 거대 중국 자본이 한식당 사업에 뛰어들면서 한국인이 운영하는 중소 규모 한식당이 타격을 받는 점 등을 지적했다. 이어 해법으로 일본이나 태국처럼 자국 식당 인증제를 도입하자고 제안했다. 그렇다면 인도네시아 상황은 어떨까?
인도네시아에서도 자카르타, 족자카르타, 수라바야 등 주요 도시뿐만 아니라 서부자바주의 가룻 지역과 같은 중소도시에서도 한국인이 아닌 현지인이 하는 한식당이 눈에 띄게 증가하고 있다. 비교적 큰 자본으로 접근하는 현지인은 한식당 사업에서 중요한 행위자가 되고 있다.
자카르타 한식당은 지난 수년 간 양적으로 질적으로 폭발적인 성장세를 보였다. 인도네시아는 세계적으로 K푸드 열풍이 거센 지역이고, 자카르타는 그 중심에 있다. 주인도네시아 한국대사관 관계자는 한국 언론과 인터뷰에서 자카르타 전역의 한식당 수는 150여 개, 이 중 수디르만 상업중심지구(SCBD) 주변에 50여 개가 분포되어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현지인들이 운영하는 한식당은 통계를 잡기 어려울 만큼 많으며, 형태와 규모도 다양하다.
자카르타 SCBD 지역에 산재한 크고 작은 한식당들은 음식의 맛과 질이 일정 수준 이상이고, 규모가 큰 식당은 간단하게 식사할 수 있는 홀과 다양한 크기의 프라이빗 룸을 구비하고 있다. SCBD에 인접한 세노빠띠 지역에는 일식당과 이태리 식당 등 외국계 식당이 많았는데, 최근에는 일부 외국계 식당이 대형 고급 한식당으로 대체되고 있다. 부유층이 밀집한 자카르타 북부의 빤따이 인다 까북(PIK) 지역도 한국인만이 아니라 현지인이 운영하는 새로운 컨셉의 한식당이 집중된 지역 중 하나이다. 고급 전통 한식당부터 퓨전 스타일의 패스트푸드형 한식당, 분식 메뉴를 특화한 곳, 술집까지 다양한 형태의 한식당이 등장하고 있다.
자카르타의 한식당은 단순히 음식을 제공하는 공간을 넘어 한국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경험의 장"으로 변모하고 있다. 예컨대, 롯데몰 지하에 조성된 ‘골목길상회’는 1970~1980년대 한국 골목 문화를 재현해 큰 인기를 끌며, 고객들에게 단순한 외식 이상의 감동을 준다. 인도네시아에서 한식에 대한 관심을 촉발한 요인 중 하나는 K-드라마와 K-팝으로 대표되는 한류 콘텐츠의 인기였다.
한편 자카르타에서 이동하다가 보면 한국음식을 파는 한식당인데 의미를 알 수 없는 이름의 상호와 한국어 철자법이 틀린 광고판 그리고 일반적으로 한국인이 사용하지 않는 인테리어 등 뭔가 낯선 느낌의 한식당을 종종 마주친다. 이들 식당의 차림표에는 서울의 명동 거리에서 본듯한 메뉴가 적혀 있지만 실제로 식탁에 차려진 음식 중에는 한식이라 부르기 어려운 음식들도 있다.
현지인이 운영하는 한식당: 기회와 도전
인도네시아에는 과거부터 현지인이 투자해서 만든 한식당이 있었지만 최근에는 외식업을 하는 현지 사업가들이 한식당 사업에 뛰어들고 있다. 자카르타를 포함한 인도네시아 외식업계에서 화교(또는 화인) 자본의 존재는 독보적이다. 이들이 자본력과 현지화 능력을 바탕으로 한식당 사업에 뛰어들며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 첫번째는 화교는 대규모 자본과 현지 식당 운영 노하우를 더해 한식당을 대형화와 기업화 하고 있고, 최종적으로 대형 프랜차이즈로 발전시키며 시장을 확대하고 있다. 두번째는 현지 소비자의 입맛에 맞춘 창의적인 퓨전 메뉴를 통해 고객층을 확장하고 있다. 세번째는 유튜브와 소셜미디어를 활용한 감각적인 브랜딩으로 현지 소비자들에게 더욱 매력적으로 다가간다.
그렇다면 현지인이 소유하거나 운영하는 한식당은 어떤 문제가 있을까? 한식의 지나친 현지화는 정통 한식의 정체성을 희석시키고 이미지를 왜곡할 수 있다. 또 음식 품질과 서비스 표준을 유지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자본력과 운영 능력을 갖춘 화교 한식당은 한국인 소규모 사업자들에게 위협이 될 수 있다. 또한 막대한 비용을 들여서 틱톡, 인스타, 유튜브 등을 활용한 공격적인 마케팅을 해서 ‘핫플’ 이미지를 만들어 현지인 고객을 끌어당기는 반면 한국인 사업자들은 상대적으로 소셜미디어를 이용한 마케팅에 약한 모습이다.
한식당 사업에 현지인 참여를 긍정적으로 이끌려면
현지인이 운영하는 한식당에 대한 우려가 크지만, 그동안 자카르타에서 생겨났다가 없어진 많은 한식당을 보면 시장(소비자)의 변별 능력을 신뢰할 수밖에 없다. 소비자들은 맛없고 서비스가 나쁜 한식당은 스스로 거른다. 다만 한식당이라는 장르가 결정된 만큼 한식의 정체성과 품질을 일정 수준 유지할 수 있도록 방향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
한국인과 한국식품이 한식당 사업에서 배제되지 않고 협력할 수 있다면 더 좋을 것이다. 한국인 조리사와 매니저가 참여해 정통성을 강화하고, 한식 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현지인 운영자들과 협력 구조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 자카르타 한식당 운영자에 따르면, 실제로 현지인 자본과 한국인 운영자가 협력하는 한식당들도 여럿이다.
한국 정부와 민간 단체가 협력해 정통 한식당과 퓨전 한식당을 구분하고, 정체성을 유지하는 곳에 인증을 부여하는 방안도 고려해볼만 하다. 일본과 태국 그리고 이탈리아는 이미 자국 음식의 정체성을 보호하기 위해 인증제를 도입했다. 각국은 자국산 식품을 사용해 자국의 요리법으로 음식을 만드는 식당을 심사해서 인증 마크를 부여한다. 한식 역시 국제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인증제를 도입해서, 소비자들이 일정 기준의 한식을 제공하는 식당과 그렇지 않은 식당을 구분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한국 정부와 민간 단체가 협력해 해외 한식당 지원과 홍보를 체계적으로 강화해야 한다. 이를 위해 정통 한식 레시피와 조리법을 알리는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거나, 한식 셰프 양성을 지원하는 방안도 필요하다. 한식당의 가장 든든한 소비자이자 지지자로서 인도네시아 한인들의 역할도 중요하다.
자카르타에서 현지인이 운영하는 한식당은 한식의 글로벌화를 위한 중요한 발판이 될 수 있다. 레스토랑 사업을 하는 화교들이 현지 비즈니스 모델에 한식을 얹어서 새로운 사업 모델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실제로 자카르타에 현지인에게 인기 있는 일부 프랜차이즈 일식당은 전통적인 일식당의 모습이 아니고 해외에서 변형된 일식당의 모습을 하고 있다. 현재 우리가 한국이나 인도네시아에서 보는 베트남 음식점은 베트남 전쟁 때 미국으로 이주한 베트남인들이 미국 레스토랑 컨셉을 결합시켜서 만든 사업모델이다. 한식당은 단순히 외식 공간이 아닌, 한국과 인도네시아 문화를 연결하는 플랫폼이다. 한식당은 하나의 식당으로서 현지인들이 맛있는 한식을 먹고 즐기는 공간이 되어야 한다. 좋은 사람들과 한국 문화를 경험하고 함께 맛있는 한식을 먹는 쾌적한 공간으로서 사업성을 갖춘 한식당 모델이 한국인과 현지인의 협력 속에서 나오길 기대해 본다. [데일리인도네시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