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리안, 오! 두리안
글: 강인수
차를 타고 자카르타의 허름한 시장통을 지나간다. 시장 길가에 진열된 아침 야채들은 신선하다. *와룽(작은 가게) 옆 큰 나무 아래 좌판에는 작은 방망이 크기의 두리안이 쌓여 있고, 웃통을 벗고 머리에 흰 띠를 두른 남자가 그것을 쪼개려는 듯 칼을 들고 있다. 그의 팔뚝과 손에는 굵은 힘줄이 돋아 있다. 몇몇 사람들이 가격을 흥정하는 모습이다. 인도네시아인들은 끈질기게 흥정하지 않는다. 가격을 좀 깍으려다 안되면 “ya~ sudah! 야~ 수다!(그래요~ 됐어요!)”라고 말하며 제시한 가격에 물건을 산다.
나는 두리안을 쪼개는 과정을 살피기 위해 잠시 내렸다. 껍질이 단단해 과육을 빼내는 것은 쉽지 않다. 값을 치르며 상인에게 두리안의 살만 따로 포장해 달라고 부탁했다. 단내가 진동하며 묘하고 역한 가스 냄새가 내 자리를 맴돈다. 큰 칼은 단번에 껍질을 관통하고, 드러난 노란 과육은 매끈하게 윤기가 흐른다. 그는 칼끝으로 내게 두리안 살점을 내어준다. 한 입 먹어보니 잘 익었다. 가격은 비싸지도, 싸지도 않았다. 흥정하려다 옆에 모인 현지인들 보기에 눈치가 보여 그냥 부르는 값에 포장하라고 했다. 그는 이마에 흐르는 수건으로 닦으며 여러 명이 주문한 두리안을 손질한다. 포장된 비닐 주머니를 들고 차에 오르면서 입 안에 침이 고인다.
현지 아가씨들 사이에서는 두리안을 사 주는 남자에게 시집가도 좋다는 말이 있다. 두리안은 귀하고 값비싼 과일이다. 그 맛은 오묘하고 강렬 하기 때문에 열대 과일 중에서 왕으로 불리는 이유가 그것이다. 극한의 고통스러운 냄새를 이겨내고 나면 혀에 달라붙는 단맛의 중독성이 있다. 또한, 몸을 뜨겁게 하는 성분이 있어 민간요법으로 임신이 힘든 여성에게 귀한 자녀의 선물이 찾아온다는 속설이 있다. 믿어야 할지 모르겠지만 이곳에 발령받은 불임을 겪는 주재원들 사이에서도 두리안을 먹고 아기를 얻는 사례를 종종 보았다. 음식은 몸에 변화를 주는 힘이 있다.
멀리 인도네시아로 떠난 딸을 보러 어머니는 긴 비행길을 마다하지 않고 적도를 넘어 지구 아래편으로 오시곤 했다. 어머니는 관절염과 손발 시림을 앓고 계셔서 겨울이 되면 차가운 손발을 비비는 일이 잦았다. 나는 어머니께 뜨거운 보약으로 두리안을 드시게 했는데, 보통의 노인들은 그 향을 못 견디지만, 어머니는 달고 맛나다며 즐기셨다. 떠나시던 날 두리안 몇 덩이를 사달라고 하시더니, 비행기 화물칸에 잘 포장해 가방에 넣으셨다. 나는 두리안이 인천공항에서 무사히 통과할지 궁금해하며 어머니가 떠나시던 밤 달무리를 보며 기도했다. “제발 잘 가거라, 두리안!” 다음 날 인천에 도착한 어머니께서 전화를 주셨다. “글쎄! 다 뺏겼다! 아까워라. 생물 들고 오면 안 된단다…” 나는 그럴 줄 알았다며 안타까움을 표현했다. 다음에 오시면 더 잘 익은 두리안을 대접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이후 어머니는 코로나로 인해 몇 해를 못 오시고 이제는 연세가 많아 긴 비행을 못 하신다. 두리안을 먹고 싶어 하시면 백화점에서 사드실 수 있다고 말씀드려도 현지에서의 맛은 따라갈 수 없다며 아쉬워하신다.
두리의 어원은 뾰족한 가시라는 뜻이다. 겉모습은 울퉁불퉁하고 강한 가시로 덮여 있다. 껍질 속에 있는 과육을 빼내려면 칼로 쪼개어야 하는 수고가 따른다. 묘하고 구수한 향이 난다. 살을 얻는 고난의 과정을 견디고 향에 빠진다면 그 맛에 중독될지도 모른다.
인도네시아에서 겪었던 삶은 여러 날의 고난과 함께했다. 지진, 홍수, 쓰나미를 겪었던 현지인들과 같은 고통이었고, 가슴 아픈 슬픔이었다. 열대의 땅은 시련마저 뜨겁게 한다. 오래전 남편이 아체의 쓰나미 현장에서 구호물을 전달했을 때 바다에 떠 있는 희생자들을 보고 눈물을 흘렸다는 말이 기억에 남는다. 자연재해가 날 때마다 두려움이 몰려온다. 고국에 가서 친구들을 만나면 우리나라의 이름다운 자연과 복 받은 환경에 관해 이야기한다. 인도네시아에서 오랜 시간 살면서 이제는 껍질 두꺼운 두리안처럼 마음도 단단해졌다. 힘겹게 헤쳐 나가야 했던 일들이 이 땅의 사람들과 동화되어 이해의 삶을 살아간다. 비가 오고 나면 무지개가 뜨듯, 우리 가족도 달콤하면서도 씁쓸한 두리안을 먹고 있는지 모르겠다.
낮에 시장에서 사 온 두리안을 꺼냈다. 혼자 먹기에는 많아 집에 일하는 도우미에게 한 덩이를 건네니 환하게 웃으며 접시를 들고 온다. 비싸게 느껴지는 가격이지만, 그녀에게 저녁 후 행복한 후식이 되었을 것이다. 남편이 퇴근 후 집안에 풍기는 냄새에 부엌에 문제가 있는 거 아니냐며 두리안 냄새를 오해했다. 두리안을 샀다고 하니 “오! 두리안”이라고 외친다. 식사 후 한 접시 내놓으니, 그는 씨를 남기고 맛있게 먹어 치운다. 두리안을 수확해 우리 손에 닿기까지는 험한 여정이 필요하다고 들었다. 나무에 올라가 하나씩 따기도 힘들고, 떨어지는 과일에 맞아 다치는 사고도 잇따른다. 가시가 손가락만큼 큰 두리안이 머리에 떨어진다면 소름이 돋을 일이다.
이제 우기에서 건기로 넘어가는 계절이 오고 있다. 세상의 절기는 언제나 순서에 맞춰 반복된다. 젖은 땅이 바짝 말라가는 건기가 오면 당분간 토종 두리안을 쉽게 접할 수 없을 것이다. 올해 12월이나 되어야 다시 쏟아져 나올 두리안을 생각하며, 나는 제철의 맛을 즐기고 있다. 속담에 고진감래라는 말이 있다. 쓴 것이 다하면 단 것이 온다고 한다. 돌아보면 돌같이 크고 단단한 문제들이 삶을 누른 적이 많았지만, 고비를 잘 견디면 좋은 것들이 돌아오는 경험이 있다. 지금은 천국의 맛을 즐기며, 쓰고 단맛 나는 인생에도 감사하고 있다. 단단한 겉모습을 깨고 속이 익어가는 중이다. 치즈처럼 노란 과일 속의 살을 닮기 위해, 나는 마음의 밭을 정성스럽게 가꾸고 있다. 그 안에서 풍미가 가득한 열매가 자라나기를 바라며, 매일같이 애쓰고 노력하고 있다. 내 마음속의 정원에는 다양한 감정과 생각들이 씨앗처럼 뿌리를 내리고, 그들이 자라나 아름다운 꽃과 향기로 만개하기를 소망한다. 깊고 깊은 그 맛! 왕 중의 왕 두리안을 먹으며 고난 뒤에 오는 행복한 인생의 소중함을 다시금 느낀다. 두리안! 오! 두리안! 왕 중의 왕이여!
*강인수
시인. 한양여대에서 문예창작을 전공하였고, 2022년 계간<문장>에 시 ‘부재 중’이 신인상으로 당선되었다. 당선작의 제목에서 오랜 기간 자신을 돌아보고자 하는 마음이 전해진다. 1999년 자카르타로 이주했으며 현재는 한국문협 인니지부 재무국장과 우리시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