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조연숙 데일리인도네시아 편집장
"돌탑이 무너지고 배가 뒤집혔다…. 화산 폭발과 지진 때문이 아닐까?" “거대한 뱀이 움직이니 산이 흔들렸다… 지진으로 거대한 진동이 확산하는 모양이나 화산 분출로 용암이 흐르는 모양을 묘사한 것이 아닐까” 인도네시아의 대표적인 전설 중 하나인 라라 종그랑(Lara Jonggrang) 이야기와 상꾸리앙(Sangkuriang) 이야기는 현실에서 화산 폭발과 지진을 설명하는 것이 아닐까?
인도네시아인들이 자연재해, 특히 지진과 화산 활동이 잦은 이유를 힌두교적 세계관과 접목해 이야기를 만들어냈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권혁래 용인대학교 교수는 인도네시아의 신화와 전설에는 자연환경의 요소가 깊이 반영됐고 힌두교의 영향을 받았다고 설명한다.
라라 종그랑 이야기와 머라피 화산 폭발
라라 종그랑 전설은 고대 자바의 반둥 왕자가 라라 종그랑 공주에게 청혼했으나, 공주는 왕자의 청혼을 피하고자 하룻밤 만에 천 개의 사원을 만들라고 요구한다. 이에 왕자는 999개의 탑을 완성하고 마지막 한 개를 남겨놓았으나, 공주가 속임수를 써서 새벽이 온 것처럼 해서 더 이상 탑을 쌓을 수 없게 했다. 왕자는 분노하여 공주를 돌로 변하게 했고, 그녀가 마지막 천 번째 사원이 되었다고 전해진다. 라라 종그랑은 쁘람바난사원(Candi Prambanan)에 있는 「두르가」상의 또 다른 이름이다.
이 이야기는 전설적인 요소를 담고 있지만, 실제로 쁘람바난 사원과 머라삐 화산(Merapi Volcano)의 역사적 배경을 고려하면, 왕자의 분노는 지진 또는 화산 폭발로 추정해볼 수 있다. 서기 856년에 중부 자바에서 큰 지진이 발생했고, 이어 1006년에 머라피 화산 대폭발이 일어났다. 역사적 기록과 고고학적 발견에 따르면 당시 지진과 화산 폭발 영향으로 이 지역의 종교 건축물들이 큰 피해를 보았다.
상꾸리앙 전설과 땅구반뻐라후 화산
또 다른 인도네시아 전설로는 상꾸리앙 이야기가 있다. 이 이야기는 청년 상꾸리앙과 그의 어머니 다양숨비 사이에서 벌어진 복잡한 관계를 다룬다. 상꾸리앙은 다양숨비가 자신의 어머니임을 알아보지 못한 채 결혼을 제안했으나, 어머니는 결혼을 거절하기 위해 그에게 하루 만에 거대한 배를 만들어 달라는 조건을 건다. 상꾸리앙이 밤새 배를 거의 완성하자 다양숨비는 새벽이 온 것처럼 속여서 배의 완성을 막았다. 이에 상꾸리앙은 화가 나서 배를 뒤집었고, 이 배가 오늘날의 땅구반 뻐라후 분화구가 되었다고 전해진다. 이 이야기는 분화구의 지형적 특징을 설명하기 위한 전설로 보이며, 실제로 땅구반 뻐라후 분화구는 뒤집힌 배처럼 생겼다.
용과 뱀, 지진과 용암
뚜안따빠(Tuantapa) 전설도 흥미롭다. 이 이야기에서는 용과 인간의 싸움이 주요 내용인데, 이에 따라 강력한 지형 변화가 일어났다고 한다. 용암이 움직이는 모습이 거대한 용이 움직이는 모습처럼 보인건 아닐까? 인도네시아는 지진대와 화산대에 자리 잡고 있어 자연재해가 빈번하게 발생하는 지역이다. 이러한 자연 현상을 인간의 이해 범위 내에서 설명하기 위해 전설과 같은 형태로 이야기가 만들어졌을 가능성이 있다.
마닌자우 호수(Lake Maninjau) 전설도 화산폭발과 연관되어 있다. 수마트라 섬에 위치한 이 거대한 칼데라 호수는 화산 활동으로 인해 형성된 지형이다. 한 쌍의 젊은 연인이 용에게 저주를 받아 호수가 생겼다는 전설이 있지만, 실제로는 오래된 화산 폭발의 결과로 물이 고여 형성된 것이다.
맺는말
머라삐 화산의 분화나 땅구반 뻐라후 화산의 형성, 마닌자우 호수의 탄생은 모두 지진, 화산 활동과 같은 지각 활동과 관련이 있어 보인다. 옛 인도네시아인들은 이러한 자연재해의 원인을 이해하고 여기에 스토리를 더해 신화와 전설을 만들어냈을 것이다. 비록 그 이야기들이 과장되거나 비현실적으로 들릴 수도 있지만, 그 속에는 자연재해 앞에서 속수무책인 인간의 모습이 보인다. 과거의 전설과 이야기에서 오늘날의 자연 현상을 어떻게 이해하고 대응할 것인가에 대한 교훈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