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제목 [신성철] “아군도 적군도 없는 인도네시아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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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철] “아군도 적군도 없는 인도네시아 정치”

기사입력 2024.08.27 1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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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군도 적군도 없는 인도네시아 정치” 

글: 신성철 데일리인도네시아 발행인 / 한인뉴스 논설위원 


인도네시아인 대부분은 공식 석상에서 발표를 하거나 심지어 사석에서 자기 의견을 밝힌 후에도 맺음말로 “만일 여러분의 마음을 언짢게 했다면 용서를 빕니다. 경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Mohon maaf jika ada kata kata yang kurang berkenan dan terima kasih atas perhatiannya)라고 말한다. 인도네시아사람의 이 말 속에는 이 곳 사람들만의 사회·문화는 물론 정치적인 큰 의미를 내포한다. 지난 2월 인도네시아 대선을 위한 TV토론회에서 각 후보들은 격렬한 논쟁을 벌인 후에도 형식적이긴 하지만 인사말과 제스처로 서로에게 예의를 다했다. 인도네시아인들은 경쟁관계에 있는 상대방과 다시 협력할 수 있다는 여지를 항상 남겨둔다.

 

지난 대통령 선거운동 기간 중 3명의 대선 후보 모두 강조한 것 가운데 하나가 ‘루꾼’(rukun, 화합)이다. 루꾼은 인도네시아 정치와 경제, 사회·문화의 저변에 깔려 있는 최고의 덕목 가운데 하나이다. 이런 이유로 이곳 사람들은 가급적 직설법을 피하고 에둘러 얘기한다. 갈등을 외부적으로 표출하지 않기 위해서이다. 따라서 내면과 외면이 일치 않는 것에 대해서 부정적으로 평가하지 않는다. 루꾼은 우리가 생각하는 표리부동과는 다른 개념이기 때문이다. 

 

우리 시각에서 인도네시아 정치와 외교를 바라볼 때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많다. 심지어 부조리해 보이기도 한다. 외교에 있어서, 인도네시아는 이스라엘을 제외하고 전 세계 모든 국가와 친구처럼 지낸다. 인도네시아는 비동맹 중립외교라는 기본 원칙을 바탕으로 다자주의와 평화주의를 추구하며, 지역 및 국제사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강대국 중국과 일본, 러시아를 이웃에 둔 한국과 동남아시아에 위치한 군도국가 인도네시아와는 매우 다르다. 

 

인도네시아 정치를 이해하기 위해서 영국의 역사학자 월터스(O. W. Wolters)의 만달라(Mandala) 이론으로 설명하려고 한다. 월터스는 고대 동남아시아의 국가시스템을 만달라체제라고 규정했다. 월터스는 인도의 힌두교와 불교에서 동심원 또는 방사형을 의미하는 산스크리트어 만달라에서 용어를 차용했다. 만달라는 영토를 중심으로 중국과 같이 지배자를 정점으로 하는 피라미드 형태의 국가체제가 아닌 지배자를 정점으로 동심원 형태이다. 즉 만달라 체제는 지배자를 중심 지역으로 주변을 네트워크로 연결하는 느슨한 지배구조이다. 마치 호수에 돌을 던지면 잔물결이 퍼져나가는 것처럼 처음에는 선명하지만 물결은 점차 약해지는 현상을 말한다. 중심은 있고 경계나 울타리가 희미한 것과 같다. 중심으로 사람들이 모여들고 세금과 노역을 바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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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리위자야 제국 시대의 국제 환경 [에픽 월드 히스토리 캡처]

 

고대 인도네시아를 비롯한 동남아에선 영토라는 개념이 미약하고 세습되는 절대 왕권도 없었다. 다만 만달라 내에서 강한 중심세력이 등장하면 동심원 구조가 이동하는 권력 형태를 보였다. 강력한 세력이 나타나면 정복전쟁이 아닌 새로운 세력으로 중심이 이동한다. 고대 7~11세기까지 인도네시아 군도의 수마트라섬 빨렘방을 중심으로 수마트라섬 말레이반도와 자바섬에 이르는 광범위한 지역에 위세를 떨쳤던 스리위자야(Sriwijaya) 제국에서 자바의 마자빠힛(Majahpahit,13~16세기)제국을 중심으로 권력이 이동한 역사적 사실은 만달라체제를 설명해주는 좋은 예이다.

 

지난 2월 대선을 앞두고 조코위 대통령의 ‘정치왕조 구축’이 도마 위에 올랐다. 3선 도전이 불가능한 조코위 대통령의 장남인 기브란 솔로 시장의 부통령 출마가 공식화되면서 정치권에서는 조코위 대통령이 퇴임 후 정치적 영향력을 유지하려 한다는 비판이 나왔다. 정치왕조 논란은 비단 조코위 대통령의 문제만은 아닌 것 같다. 인도네시아 수카르노 초대 대통령의 장녀 메가와티 수카르노푸트리 전 대통령 가문과 수하르토와 수실로 밤방 유도요노 전 대통령 가문도 빼놓을 수 없다.

 

프라보워 수비안토 대통령 당선인도 가문정치로 세력화하고 있다. 최근 프라보워 당선인은 조카 토마스 지완도노를 재무부 차관으로 임명하며 정치세력의 기초를 다지고 있다. 유도요노 대통령 집권 10년 동안 정치권력이 유도요노 가문을 중심으로 동심원 구조로 세력이 형성됐다면 조코위 대통령의 집권 10년은 메가와티 전 대통령이자 투쟁민주당(PDIP) 총재를 중심으로 세력이 형성되었다. 앞으로 인도네시아 정계는 프라보워 가문을 중심으로 하는 만달라세력이 형성될 것으로 보인다. 

 

인도네시아 정치는 정당정치가 아닌 인물정치로 권력을 형성하고 있다. 정당정치는 정당이라는 조직을 중심으로 정치가 이루어지는 시스템이다. 정당은 특정한 이념이나 정책을 공유하는 사람들의 집합체로, 선거를 통해 정권을 장악하고 정책을 추진한다. 반면 인물정치는 개인의 인기를 바탕으로 정치가 이루어지는 시스템이다. 개인의 카리스마와 인지도 등을 활용하여 지지를 얻고 정권을 장악하는 게 특징이다. 정당정치와 인물정치는 각각 장단점을 가지고 있으며, 어떤 정치 시스템이 더 좋은지는 사회적, 문화적, 역사적 배경에 따라 다르다고 볼 수 있다. 일반적으로 정당정치는 정책의 안정성과 다양성을 보장하지만, 관료주의와 당리당략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반면, 인물정치는 빠른 의사 결정과 혁신을 가능하게 하지만, 불안정성과 독단적인 의사 결정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프라보워가 이끄는 새 정부가 오는 10월 출범한다. 인도네시아 정계의 만달라 정치세력은 어떻게 작동할 지 초미의 관심사이다. 올해 11월 주지사와 시·군 자치단체장을 뽑는 지방선거가 실시된다. 지난 대선에서 프라보워가 당선되는 데 지대한 역할을 조코위 대통령의 막내아들 까에상 인도네시아연대당(PSI) 대표가 주지사 출마 의사를 밝혔고, 사위 보비 나수띠온 역시 주지사로 출마할 예정이다. 프라보워 차기 대통령이 어느 정도 조코위 가문을 지지해줄 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또 차기 부통령 기브란과 행정 권력을 어떻게 분배할 지 관전포인트다. 하나 더 있다. 한정된 예산에서 누산타라 신수도 이전 메가 프로젝트와 청소년 무상급식은 어떻게 진행될 지 궁금하다. [데일인도네시아] 

 

▲참고문헌: 양승윤 한국외대 명예교수 <스리비자야 왕국과 앙코르 왕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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