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범종 소리
최동호
어린 시절 새벽마다 콩나물시루에서 물 내리는 소리를 들었다
이웃집에 셋방살이하던 아주머니가 외아들 공부시키려 콩나물
키우던 물방울 소리가 얇은 벽 너머에서 기도처럼 들려 왔다
새벽마다 어린 우리들 잠 깨울까 봐 조심스럽게 연탄불 가는
소리도 들렸다. 불을 꺼뜨리지 않고 단잠을 자게 지켜 주시던,
일어나기 싫어 모르는 척 하고 듣고 있던 어머니의 소리였다.
콩나물 장수 홀어머니 아들이 어떻게 되었는지 나는 모른다.
어머니 가시고 콩나물 물 내리는 새벽 소리가 지나가면
불덩어리에서 연탄재 떼어내던 그 정성스러운 소리가 들려 온다.
새벽잠 자주 깨는 요즘 그 나지막한 소리들이 옛 기억에서
살아나와, 산사의 새벽 범종 소리가 미약한 생명들을 보설피듯,
스산한 가슴속에 들어와 맴돌며 조용히 마음을 쓸어주고 간다.
*시읽기
최동호 시인의 이 시는 정지용 문학상 수상작이다. 세상의 모든 어머니들은 미약한 생명인 자식들을 정성스럽게 키우고 보듬어 주었다. 우리들의 어머니의 소리는 무엇일까? 나는 곰곰이 생각해 본다. 새벽 잠 자주 깨는 요즘. 눈 감고 있어도 어린시절이 생각난다. 기침하던 겨울밤. 약 수저에 물과함께 새끼손가락으로 가루약을 저어주던 어머니 , 새벽 첫 차를 타고
과일시장에서 과일광주리를 이고 사오시던 모습이 어제처럼 떠올라 조용한 마음 뭉클하게 만든다.
*최동호
시인. 1948년 경기도 수원시에서 태어난 최동호 시인은 고려대 국문과를 졸업했고 <황사바람> <아침책상> <공놀이하는 달마> <황금 가랑잎> 등 다수의 시집을 발표했다.
*강인수
시인. 한양여대에서 문예창작을 전공하였고, 2022년 계간<문장>에 시 ‘부재 중’이 신인상으로 당선되었다. 당선작의 제목에서 오랜 기간 자신을 돌아보고자 하는 마음이 전해진다. 1999년 자카르타로 이주했으며 현재는 한국문협 인니지부 재무국장과 우리시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