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제목 강인수의 문학산책 #27 겉장이 나달나달했다/전동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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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인수의 문학산책 #27 겉장이 나달나달했다/전동균

기사입력 2024.04.25 1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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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장이 나달나달했다

 

                                        전동균 

 

말기 췌장암 선고를 받고도 괜찬타, 내사 마, 살 만큼 살았데이, 돌아앉아 안경 한 번 쓰윽 닦으시고는 디스 담배 피워 물던 아버지, 병원에 입원하신 뒤 항암 치료도 거부하고 모르핀만, 모르핀만 맞으셨는데 간성 혼수*에 빠질 때는 링거 줄을 뽑아 던지며 살려달라고, 서울 큰 병원에 옮겨달라고 울부짖으셨는데, 한 달 반 만에 참나무 둥치 같은 몸이 새뼈마냥 삭아 내렸는데, 어느 날 모처럼 죽 한 그릇 다 비우시더니, 남몰래 영안실에 내려갔다 오시더니 손짓으로 날 불러, 젖은 침대 시트 밑에서 더듬더듬 무얼 하나 꺼내 주시는 거였다 장례비가 든 적금통장이었다.

 

*간성(肝性) 혼수 : 간이 해독 작용을 못해 암환자들이 겪는 발작, 혼수상태.

 

                                                                         랜덤시선 35 전동균 시집 『거룩한 허기』 2008년 

 

겉장 300.jpg
사진: 강인수

 

 

*시읽기 

전동균 선생님의 시 겉장이 나달나달했다를 읽으며 '시란 무엇인가'를 생각하는 시간이었습니다. 대단한 미사여구 없이 진솔하게 화자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아버지와 나의 끈끈한 생의 끝 이야기! 겉장이 나달나달한 것은 적금통장이었지만 그 속에 담긴 의미를 되새겨봅니다. 

몇 번을 들여다보았을 통장 속에 생에 대한 미련도 있었을 것이고 너무 초라한 장례비와 함께 남겨진 자에게 주는 미안함도 있었을 것입니다.

요즘은 부모님이 주신 재산으로 서로 자식 간에 소송을 걸고 다툼이 많은 집들을 봅니다. 이 시를 읽으면서 가슴에 정말 많이 눈물이 흘러내리더군요!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전동균  

전동균은 1962년 경북 경주에서 태어났다. 중앙대 문예창작과 및 동대학원을 졸업했다. 1986년 『소설문학』 신인상 시부문에 당선되어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저서로는 시집 『오래 비어 있는 길』 『함허동천에서 서성이다』 『거룩한 허기』 『우리처럼 낯선』 등이 있다. 백석문학상과 윤동주서시문학상을 받았다. 동의대학교 한국어문학과 교수. 

 

*강인수 

시인. 한양여대에서 문예창작을 전공하였고, 2022년 계간<문장>에 시 ‘부재 중’이 신인상으로 당선되었다. 당선작의 제목에서 오랜 기간 자신을 돌아보고자 하는 마음이 전해진다. 1999년 자카르타로 이주했으며 현재는 한국문협 인니지부 재무국장과 우리시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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