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대선 결산... 인도네시아 향배는
글: 신성철 데일리인도네시아 발행인 / 한인뉴스 논설위원
인도네시아 대선에서 결선투표가 진행될 것이라는 정치전문가들의 예측을 뒤엎고, 지난 2월 14일 치러진 선거에서 프라보워 수비안토(72) 후보의 승리가 확실시 되고 있다. 대선 직전에 실시한 여러 여론조사 기관들의 당선 가능성 조사 결과, 프라보워 후보가 50% 전후의 지지율을 보였으나 신속표본개표(quick count) 결과에서 과반을 기록함에 따라 프라보워의 당선이 기정사실화 됐다.
현 국방장관인 프라보워 후보는 신속표본결과 57% 이상의 득표율로 오는 6월로 예정된 결선투표를 거치지 않고 당선될 것으로 보인다. 신속표본개표는 과거의 경험으로 볼 때 비교적 정확한 결과를 보여온 만큼 오차범위가 크기 않다. 한편 이번 대선에서 경합을 벌였던 아니스 바스웨단(54) 전 자카르타 주지사와 간자르 쁘라노워(55) 전 중부자바 주지사의 득표율은 각각 25%와 17%로 프라보워 후보에 크게 뒤졌다. 인도네시아 선거의 공식 결과는 투표일로부터 한 달 후 발표될 예정이다.
프라보워 후보의 주요 당선 요인들을 살펴보면, 경쟁 후보들과 비교해 큰 차이를 보인다. 프라보워는 거의 5년 전부터 대선을 준비해 왔다. 2019년 대선에서 조코위 대통령에게 패한 직후 2019년 7월에 프라보워는 자카르타 도시철도(MRT)에서 정적인 조코위 대통령과 극적인 만남을 연출했다. 그해 10월 프라보워는 조코위 2기 정부에 국방장관으로 입각하면서 조코위와 손을 잡았다. 어제의 적이 오늘의 동지가 된 셈이다. 수하르토의 전 사위인 프라보워는 국방장관으로 활동하면서 전국적인 인지도와 지명도를 높였다.
프라보워의 당선에는 조코위 대통령의 전폭적인 지지가 큰 역할을 했다. 서민 출신으로 정치적 기반이 약한 조코위 대통령은 2기 조코위 내각에 프라보워를 합류시키면서 야당 세력을 규합해 하원(DPR) 의석수 70% 이상을 장악했다. 이로써 입법부와 행정부를 장악해 고용촉진법(일명 옴니버스법)과 신수도 이전 관련 법률 등 주요 국정 과제를 신속하게 처리했다.
조코위 대통령은 임기 중 도로와 철도, 댐 건설 등 사회간접자본을 확충해 가시적인 성과를 보여주었다. 또 국민건강보험(BPJS) 확대와 저소득층에 현금과 기초식품을 지원하는 등 시의적절한 포퓰리즘과 집권 프리미엄을 활용해 임기 중 70%가 넘는 지지도를 보였다. 이렇게 높은 지지를 기반으로 한 조코위 대통령이 대선 직전에 프라보워 후보를 직간접적으로 지원한 게 당선에 크게 작용했다. 또 조코위 대통령을 지지하는 시민단체인 프로조(Projo)가 적극적으로 프라보워를 지지하면서 당선에 힘을 보탰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에 실시된 이번 선거운동은 기존의 거리에서 펼쳐진 방식과는 다르게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전개됐다. 프라보워 후보는 특히 짧은 비디오 영상을 제작·공유할 수 있는 틱톡(TikTok)을 통해 코믹한 춤인 조겟(joget)을 앞세워 젊은 유권자들에게 친근하게 다가감으로써 기존의 강한 군인 이미지에서 부드러운 이웃 아저씨로 변신했다. 이는 특히 25%가량을 차지하는 Z세대들의 표심을 자극한 것으로 보인다.
한편 미국 유학파로 최연소 인도네시아 대학의 총장을 역임한 아니스 후보는 이슬람 지식인으로부터 지지를 받으면서 소셜미디어를 통해 정치개혁을 기치로 내걸고 선거운동을 펼쳤다. 특이 사항은 아니스의 지지자 가운데 젊은 층이 트위터 등 소셜미디어를 통해 K-Pop 팬덤(Fandom) 문화를 활용했고 한국어로 소통하는 독특한 선거운동의 측면도 보여줬다. 메가와티 수카르노푸트리 총재가 이끄는 투쟁민주당(PDIP)의 지지를 받은 간자르 후보도 인스타그램 등 쇼셜미디어를 활용하고, 서민들의 생활 현장을 방문하는 블루스깐(blusuakan) 등 전통적인 선거운동 방식을 활용했으나 크게 호응을 얻지는 못했다.
이번 대선은 조코위와 프라보워 정치 세력이 협력함에 따라 기존의 대선과는 다르게 민족주의와 이슬람 정당의 경쟁 또는 온건 이슬람과 강성 이슬람이 경쟁하는 구도가 다소 약화된 모습을 보였다. 또 중국계 인도네시아인들도 3명 후보 모두에게 지지하는 양상을 보여 양극화가 완화되는 다소 긍정적인 현상이 나타나기도 했다.
하지만 비평가들은 이번 대선에서 정당 정치가 더욱 약화되고 인물 정치가 강화되는 모습이 나타났고 지적했다. 또한 조코위 가문이라는 신흥 정치가문이 탄생함으로써 필리핀의 가문정치와 정치왕조 행태가 강화되는 모습에 대해 우려를 나타냈다. 특히 조코위 대통령의 장남이 부통령 후보로 출마하게 되자 비판의 목소리도 커졌다. 조코위는 개헌 시도는 하지 않았지만, 선거법을 바꾸면서까지 자신의 장남인 기브란을 부통령 후보로 만들어 큰 논란을 낳았다.
국내외 투자자들은 프라보워가 조코위의 국정 운영을 이어갈 것인지에 촉각을 세우고 있다. 인도네시아는 전통적으로 독립적이며 중립적인 외교를 펼쳐왔으나, 조코위 2기 정부는 중국과 경제협력을 강화하면서 중국과 밀착하는 모습을 보였다. 프라보워 정부가 출범한다면, 미중 경쟁 구도에서 어떠한 균형점을 찾아갈지 귀추가 주목된다.
전문가들은 프라보워가 집권한다면 행정수도 이전 사업인 누산타라(IKN) 메가프로젝트를 이어가겠지만, 조코위 대통령 재임기와 다른 경제정책을 쓸 것으로 보고 있다. 프라보워 후보는 2024년까지 세 차례나 인도네시아 대통령선거에 출마하면서, 신자유주의(Neo-liberalism) 경제체제를 좋아하지 않으며 큰 정부를 선호한다는 정책 메시지를 일관되게 유지해 왔다. 이에 따라, 경제학자들은 프라보워 집권기에 국영기업의 역할이 더 커질 것으로 전망했다.
인도네시아 농민단체(HKTI) 회장을 역임한 프라보워는 당장 식량 자급자족을 위해 전력할 것으로 보인다. 대선 직후인 지난 2월 21일 조코위 대통령은 민주당 대표 아구스 하리무르띠(45)를 농지공간기획부 장관으로 임명했다. 수실로 밤방 유도요노 전 대통령의 장남인 아구스 신임 장관은 이번 대선에서 프라보워 후보를 지지했다. 일부 전문가들은 아구스 장관의 등용을 조코위 대통령의 장남이자 프라보워의 러닝메이트인 기브란 라카브밍 라카(36)를 견제하기 위한 포석으로 보고 있다.
한국과 인도네시아의 관계는 어떻게 전개될까? 2030년까지 세계 10대 산업국으로 진입하겠다는 내용을 골자로 '메이킹 인도네시아 4.0'을 진행하고 있는 인도네시아는 '제4차 산업혁명'을 실현하겠다는 국가차원의 산업 로드맵을 진행하고 있다. 인도네시아 정부는 ‘Industry 4.0’의 개념을 도입해 경쟁력을 강화해 5대 제조업(식음료, 섬유, 자동차, 전자, 화학)을 주력 산업으로 육성한다는 계획이다. 이와 관련, 인도네시아는 제조업 강국인 한국을 최적의 파트너로 꼽고 있는 만큼 향후 다양한 제조업 부문에서 양국 간 협력이 강화될 것으로 낙관한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