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도네시아, 미래 경제협력의 기회와 도전
글: 신성철 데일리인도네시아 대표 / 한인뉴스 논설위원
한국-인도네시아 수교 50년을 맞는 올해 1월부터 ‘포괄적 경제동반자 협정’(CEPA, Comprehensive Economic Partnership Agreement)이 발효되면서 양국 경제협력이 50년을 넘어 100년을 향한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앞서 인도네시아는 지난 2020년 11월 고용창출법(일명 옴니버스법)을 제정해 경직된 노동시장의 개혁을 통해 투자환경을 개선하는 등 외국인투자자에게 문호를 활짝 열었다.
한국-인도네시아(한-인니) CEPA는 양국 시장을 개방한다는 의미에서 '자유무역협정'인 FTA와 비슷한 협정이다. 하지만 CEPA는 상품과 서비스 교역, 투자 등 무역 확대에 무게를 둔 FTA에 비해 정부 간 경제 협력은 물론 인적·문화적 교류를 포괄한다는 점에서 더 큰 의미를 갖는 경제협정이다. CEPA는 주로 선진국과의 경제협력을 원하는 개발도상국이 선호하는 방식인만큼 양국이 상생할 수 있는 협정이다.
코로나19 팬데믹을 기점으로 글로벌 경제가 둔화하며 침체 위기에 빠진 상황에서도 인도네시아가 제조업 강국으로 떠오르고 있는다는 전망이 나온다. 2억 8천만 명의 인구 대국인 인도네시아가 저렴한 노동력과 풍부한 천연자원, 거대한 내수 시장을 앞세워 제조업에서 중국의 일부분을 맡게 될 대체지로 부상하고 있다. 최근 인도네시아는 해외 투자가 금융보다는 제조업 분야 투자 비중이 높고 투자 여건도 괜찮다는 평가를 받는다.
인도네시아 투자부에 따르면 2022년 인도네시아 내 외국인직접투자(FDI)는 약 430억 달러로 사상 최대 규모이며, 전년 대비 44% 증가했다. 이 기간 제조업 분야 투자가 크게 증가했으며, 특히 자동차 배터리의 주요 원자재인 니켈을 활용한 다운스트림(downstream, 하방산업) 산업의 투자가 크게 증가했다. 최근 인도네시아 정부는 원자재 수출 대신에 다운스트림 산업을 개발하는 데 집중한다는 전략을 수립하여 시행하고 있다. 다운스트림 산업은 천연자원을 가공·판매해 부가가치를 올리는 산업 부문을 뜻한다.
인도네시아에 대한 한국의 투자도 큰 폭으로 늘고 있다. 2018년 6억8천만 달러에 그쳤던 한국의 인도네시아 투자는 2021년 18억 달러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지난해 9월 28일 자카르타에서 코트라(KOTRA) 주관으로 열린 '한-인니 미래 신산업 비즈니스 플라자'에 따르면 한국의 인도네시아 투자가 특별한 것은 전기차나 배터리, 화이트바이오(White Bio) 등 신산업이나 제철소, 석유화학 단지 등 대규모 장치산업에 투자하고 있다. 이날 행사에서는 인도네시아와 한국 간 미래 신산업 협력 방안을 살펴보는 세미나와 함께 전기차, 에너지, 의료기기, 디지털 콘텐츠 분야 등에서 국내 혁신 기술기업 48개 사의 쇼케이스도 함께 진행됐다. 또 한국전력공사와 협업해 인도네시아 에너지부와 인도네시아 전력 공사를 대상으로 국내 탄소 중립 분야 혁신 기술 기업들의 기업설명(IR)회도 열렸다.
한국과 인도네시아가 경제협력에서 윈윈(win-win)하려면 인도네시아 정부가 추진하는 '메이킹 인도네시아 4.0'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 인도네시아는 제4차 산업혁명(4th Industrial Revolution) 실현을 위한 로드맵 '메이킹 인도네시아 4.0’(Making Indonesia 4.0)을 진행하면서, 한국 등 제조업 선진국을 통한 기술 협력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특히, 제조업 분야에 스마트 팩토리 기술을 접목하기 위한 노력을 강화하고 있다.
메이킹 인도네시아 4.0은 지난 2018년 4월 조코위 정부가 처음 공개했다. 제4차 산업혁명은 전통적인 제조업 강국인 독일, 일본, 미국은 물론 중국과 인도, 등 신흥국들도 글로벌 생산기지로 자리잡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인도네시아는 ‘메이킹 인도네시아 4.0’ 정책에 기반한 제조업 경쟁력 강화로 현재 세계 16위 경제 규모를 2030년까지 10위로 끌어올리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인도네시아 정부는 핵심 전략 방안으로 첫째, 제조업 수출 경쟁력 강화를 꼽았다. 순수출의 국내총생산(GDP) 기여도를 2030년까지 10% 이상으로 끌어올릴 계획이다. 특히 순수출 중 제조업의 기여도를 2016년 30%에서 2030년에는 65% 이상으로 높이겠다는 게 목표다. 둘째, 로보틱스(Robotics), 3D 프린팅, 사물인터넷, 인공지능 등 인더스트리 4.0 기술을 접목해 단위비용당 노동생산성을 2030년까지 2016년의 2배로 높인다는 것이다. 다른 나라의 인더스트리 4.0 육성과 달리 로보틱스·바이오 등 미래산업보다는 전통 제조업을 집중 육성한다는 점이 가장 큰 특징이다.
인도네시아는 인구대국으로 경제활동 가능한 젊은 인력이 풍부한 생산기지이자 소비시장이며, 자원이 풍부한 장점을 갖고 있다. 하지만 ‘메이킹 인도네시아 4.0’을 성공적으로 추진하기 위한 인프라 부족 등 기반이 부족하다는 것은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또 전방과 후방산업 연계 가치사슬이 취약하고 정부 재원 및 혁신 주도 역량 부족, 숙련 노동력 부족 등 해결해야 할 과제도 적지 않다.
이러한 선결 과제를 해결하기 위한 다양한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주요 선결 과제로는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소재와 부품의 국내 대체를 위한 산업생태계를 육성 △5대 육성산업(식음료, 섬유, 자동차, 전자, 화학) 발전을 위한 산업단지를 운영하고 산업단지 간 연결성 강화 △고용의 70%를 차지하는 중소기업의 혁신역량을 강화 △ 빨라빠링(Palapa Ring)을 통해 대규모 통신망 인프라 구축 △Go-jek, Tokopedia, Traveloka 등 자국 유니콘 스타트업들의 성공을 발판삼아 제조업에도 ‘IT 혁신’ △한국 등 첨단 기술을 보유한 선도 제조업체 유치를 위한 인센티브 강화 등을 추진하고 있다.
최근 ‘메이킹 인도네시아 4.0’의 5대 육성산업에 대한 한국 기업의 대규모 투자가 늘어나는 등 인도네시아 정부 정책에 적극 협력하고 있다. 현대자동차, 포스코, LG에너지솔루션, 롯데케미칼 등 대규모 투자를 했거나 진행 중에 있다.
지난 3월 15일부터 닷새 동안 원팀 코리아를 이끌고 인도네시아 출장을 마친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사업수주를 통한 1회성 수익창출이 아니라 인도네시아 자체의 인적 역량 구축을 적극 지원함으로써 인도네시아의 장기적 발전에 기여하는 것이 한국과 인도네시아가 손잡고 미래를 함께 열어가는 길이다”라고 밝혔다. 국토교통부를 중심으로 인도네시아에 방문한 원팀코리아는 민관 '원팀' 고위급 외교와 한-인니 뉴시티(New City) 협력포럼 개최, 외국 정부인사 최초 신수도 개발현장 방문 등 적극적인 인프라 협력 활동을 진행했다. 이번 방문을 통해 원팀코리아는 인도네시아 공공사업주택부 장관, 신수도청 장관, 교통부 장관, 자카르타 주지사, 아세안 사무총장, 투자부 고위 관계자 등과 만나 건설, 스마트시티, 모빌리티, IT, 문화 등 전 산업 분야에 걸친 협력방안을 논의했다.
바수끼 하디물요노(Basuki Hadimuljono) 공공사업주택부 장관과의 면담에서는 주택, 도로, 수자원 등 주요 기반 인프라에 대한 우리 기업의 우수한 기술력 및 노하우를 기반으로 △아세안 대상 기술직업 교육기관 설립 △공적개발원조(ODA) 지원 △스마트 빌딩 건설을 위한 전문가 파견 등 인프라 협력을 논의했다. 밤방 수산또노(Bambang Susantono) 신수도청 장관과는 약 40조원 규모의 신수도 건설 사업에 참여 의지가 있는 스마트 시티·스마트 건설·모빌리티 등 우리 기업들을 한 곳 한 곳 직접 소개하며 관심을 당부했다. 부디 까르야 수마디(Budi Karya Sumadi) 교통부 장관과는 △자카르타 MRT(중전철) △자카르타 LRT(경전철) 등 인도네시아 도시철도 사업에 우리 기업의 참여를 당부했고, 양국 간 인적·물적 교류 활성화를 위해 양국 지방 공항을 포함한 노선 다변화 및 운항 횟수 증대를 논의했다.
한-인니 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CEPA)이 발효돼 무역 확대는 물론 중소기업 육성과 기술이전, 인력 양성, 디지털 전환 등에서 미래 협력이 확대될 전망이다. 노동력과 천연자원이 풍부한 인도네시아와 기술력을 갖춘 한국이 파트너가 돼 장점만 결합하면 양국 모두 윈윈(win-win) 할 수 있다. 평균 연령 29세이며 세계 제 4위 인구대국인 인도네시아는 생산시장이자, 중산층이 확대되고 있는 거대한 소비시장으로 부상하고 있다. 최근 인도네시아에서는 한국 제조업의 기술력이 인정받고, 한류로 좋은 이미지를 형성하고 있으며, 한국 정부의 지원으로 인도네시아에서 우리나라의 국격이 또 한번 상승했다. CEPA를 통해 양국 관계가 현재의 황금기를 넘어 공동번영을 향한 미래 동반자로의 관계로 새롭게 도약해 나갈 것이며, 한국-인도네시아 50년의 우정을 넘어 100년지기 미래 동반자로 거듭나기를 기대한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