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일로 내일을 꿈꾸다” 전시회를 보며 “인도네시아 한인 기록소”를 떠올리다
글: 조연숙 데일리인도네시아 편집장
“내 일로 내일을 꿈꾸다” 전시는 한 시대를 치열하게 살았던 사람들의 삶을 잘 드러낸다. 각자의 위치에서 다양한 직업에 종사했던 사람들이 기증한 여러 서류와 사진 그리고 물품 등을 통해 1960~1980년대 사람들의 모습을 다시 볼 수 있다. 지폐와 영화포스터 수집품 중에는 내가 기억하는 것도 있고, 기억하지 못하는 것도 있다. `한국전쟁 후 자신과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그리고 시대의 흐름에 따라 한 활동들이 대한민국의 역사가 됐고, 후대와 국가의 미래를 위한 토대가 되었음을 전시회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인도네시아에 사는 한인들에게도 그런 공간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개인 기증품 전시 “내 일로 내일을 꿈꾸다”
먼저 전시회를 살펴보자. 서울 세종대로에 위치한 대한민국역사박물관 3층 상설기증관 입구에 들어서면, “1부 익히고 가르치며 시대를 열다”라는 주제로 개인들이 공부하던 책과 명찰, 상장, 각종 인증서 등과 함께 교련복과 훈련 때 쓰던 총도 있다. 문맹퇴치 교육을 받던 어른이 쓰던 영어노트는 너무 예뻐서 오히려 마음이 아렸다. “2부 여러분을 원하는 곳으로 이동시켜 드립니다” 코너는 1960~1970년대 주요 대중교통 수단이었던 철도와 택시와 관련된 사진, 제복, 승차권 등이 전시됐다. “3부 야무진 손 끝으로 옷을 지어드립니다” 코너는 같은 시기 양장점, 봉제공장, 의류판매점 등 의류업에서 활동한 종사자들이 기증한 재봉틀과 의상 관련 서적과 사진 등이 전시되어 있다. “4부 이방의 불모지에서 내일을 꿈꾸다” 코너에는 1960~1970년대 독일에 파견된 광부와 간호사, 중동 사막으로 건너간 건설노동자들의 개인일기, 항공권, 비자, 여권, 양말 등 개인 물품과 사진들이 있다. “5부 할머니 손은 약손, 이젠 옛말”은 서독으로 파견된 간호사의 활동과 미국 평화봉사단이 한국에서 벌인 결핵예방 운동 등과 관련된 포스터와 의료기기 등이 전시되어 있다. 마지막 6부 “꾸준함의 힘, 당신의 취미도 역사가 됩니다” 코너에는 우표, 담배, 엽서, 영화 포스터 등 개인이 취미로 모으던 것들이 일정 시대와 분야를 설명하는 자료를 축적하는 일이 되었음을 보여준다.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상설기증관에 대해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은 우리나라 최초의 국립 근현대사 박물관으로, 과거는 물론 동시대의 유의미한 자료를 수집하는 일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특히 근현대사의 면면과 시대적 흐름을 살릴 수 있는 사료로써 개개인의 추억이 깃든 자료들을 10년 이상 기증받아 모으고, 이들을 테마에 따라 재구성해 상설기증관에 전시하고 있다. 상설기증관에 대해, 박물관 측은 “동시대를 살아낸 이들에게는 공감의 창이 되고, 경험하지 못한 이들에게는 간접 체험의 장이 된다”고 소개했다. 그리고 개인이 기증한 물품과 자료들은 박물관 곳곳에 숨결과 이야기를 불어넣고, 비어 있는 역사의 조각을 맞추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의미를 설명했다. “‘나만의 기억’이 ‘모두의 추억’으로 공유되는 공간”과 “내 일이 내일이 되다” 등의 전시 제목에서 상설기증관의 역할을 추측할 수 있다.
앞서 남희숙 대한민국역사박물관 관장은 상설기증관이 “기증 자료를 소개할 수 있는 공간이자, 기증자의 삶과 이야기를 들려주는 공간으로 자리매김하여, 기증 문화 확산의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고 바람을 전한 바 있다.
공공역사, 일반인에게 확장되는 역사
기술과 교육 수준이 상승하고 사회가 복잡해짐에 따라 요즘 ‘공공’이라는 이름으로 기존에 국가와 대학교를 포함한 연구기관에서 주로 행하던 활동이 일반인에게 확장되고 있다. 공공역사는 역사학계와 전문 역사학자 뿐만 아니라 일반인이나 그 경계의 사람들이 참여하고 소통하는 다양한 역사 실천을 의미한다. 공공역사 현상의 대표적 사례로 한국사 국정교과서 논쟁이나 역사를 소재로 한 창작물(영화·드라마 등)의 흥행 그리고 역사박물관에 대한 관심 등을 꼽는다. 실제로 드라마나 영화와 관련된 역사 논쟁에서 일반인들이 보여주는 지식과 활약은 전문가들과 비교해 뒤지지 않는다.
인도네시아 한인 기록소/기증관/역사의집
인도네시아 한인 역사는 장윤원 선생이 인도네시아에 첫 발을 디딘 1920년부터 시작하면 100년 이상이 되고, 양국이 정식으로 외교관계를 수립한 1973년부터 해도 50년이나 된다. 통상 역사는 국가(주인도네시아 한국대사관)와 주요단체(재인도네시아 한인회)를 중심으로 기록되지만, 인도네시아에서 살았던 모든 한인의 이야기가 여기에 포함되는 것은 아니다. 인도네시아에서 반세기 이상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쌓아온 개개인의 이야기를 이제는 모아서 보존할 때가 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한인 기록소, 기증관, 역사의집, 박물관… 어떤 이름으로든지.
올해 초 열린 한-인니 수교 50주년 민간실행위원회에서 한인기록소를 설립하자는 제안이 나왔다. 우선 나이가 들어서 세상을 떠나거나 여러 가지 사정으로 인도네시아를 떠나는 사람들은 개인이 보관하던 기록과 자료를 새로 이주하는 곳으로 가져가기가 어렵다. 2020년에 재인도네시아 한인100년사를 편찬할 때도 개인들이 소장하고 있던 사진과 자료들이 공식적인 기록에 빠진 부분을 채워주고 이야기를 풍성하게 만드는 역할을 했다. 이런 자료들이 훼손되거나 소실되기 전에 이를 기증받거나 구입해서 모아야 한다. 개인의 자료들이 역사적으로 의미가 있고 보존할 가치가 있는지를 판단하고, 기온과 습도가 높은 인도네시아에서 부식되거나 훼손되지 않게 보존하는 방법 등을 배우기 위해 한국의 국가기록원이나 역사박물관과 협력할 수도 있다. 앞으로 꾸준히 자료가 모아지고 예산이 마련되고 운영할 인력이 확보되면 전시장을 갖춘 박물관으로 발전시킬 수 있을 것이다.
개인 소장품 기증에 대한 기증자의 입장을 밝힌 전시해설에 따르면,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의 기증자인 전성열 씨는 “기증은 다른 사람들과 나눌 수 있기에 더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라고 말했고, 길홍묘 씨는 “추억이 담겨 있는 재봉틀을 기증이 가능한지 박물관에 한 번 의뢰해보자! 그렇게 기증이 시작되었습니다.”라고 말했다. 공재연 씨는 “제가 수집한 소장품을 관람객들과 함께 공유하며 미래세대에게 우리 삶의 흔적을 전해주고 싶습니다.”라고 말했다. 인도네시아에 진출한 한인들의 삶의 흔적을 기록해 전해주는 일이 한국-인도네시아 수교 50주년을 맞는 시점에 해야 할 일 가운데 하나라는 생각이 든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