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시아 한류 2013 vs 2023… 과열 조짐
한-인니 수교 50주년 즈음 지속가능한 문화교류를 생각하며
글: 신성철 데일리인도네시아 대표 /한인뉴스 논설위원
인도네시아에서 한류의 열기가 뜨겁다. 지난 2012년 자카르타주지사 선거에서 당시 조코 위도도(조코위) 주지사 후보와 러닝메이트인 바수끼 짜하야 뿌르나마(아혹)가 선거 마케팅의 일환으로 싸이의 ‘강남스타일’을 패러디하면서 한류가 인도네시아 정치에 활용하기 시작했다. 2019년
인도네시아 대선 레이스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2018년 아시안게임 폐막식에서 조코위 대통령은 공연을 마친
슈퍼주니어와 깜짝 만남을 한 후, 소셜미디어를 통해 홍보함으로써 정치 마케팅을 펼쳤다.
당시 라이벌 진영의 부통령 후보인 산디아가 우노 역시 젊은 유권자들과의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한 키워드로 한류(Korean Wave)를 활용했다. 지난해 차기 유력 대선 후보인
간자르 쁘라노워 중부자바주지사는 자신의 트위터에 한 대학생이 ‘PAK GANJAR 사랑해’라는 팻말을 든 사진을 게시하면서 ‘나도 사랑해’라고 한글로 답글을 달아, 한류가 케이팝(K-pop)과 드라마를 넘어 다양한 장르로 확산됐을 확인할 수 있다. 현지에서
한류의 활용에 대해, 정치전문가들은 인구의 50%가 넘는
MZ세대를 겨냥한 전략으로 해석한다. 최근 에릭 토히르 국영기업부
장관이 인도네시아축구협회장으로 선출되면서 인도네시아 대표팀 신태용 감독의 K-축구도 정치에 활용될지
관심이 쏠린다.
한류는 1990년대 태동기를 거쳐
2000년대 초반에 한국 문화 산업의 본격적인 일본 진출을 통해 시작되었다. 2000년대
후반에 케이팝의 영향력 증가, 2010년 초반 케이팝과 신한류의 붐과 국산 온라인 게임 대유행의 시대를
거쳐, 2010년대 중반에 신한류의 붐과 세계적인 흥행이 이어졌다. 코로나19 팬데믹이 시작된 2020년 이후에는 한류의 본격적인 세계화가 진행되고
정착하는 시대에 접어들었다.
인도네시아에서 한류의 열기는 5년 정도 늦은 2010년 전후에 시작돼 최근 코로나 한파 속에서 위험수위(?)를 넘나들
만큼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한국국제문화진흥원(KOFICE)이
발표한 '2020년 해외 한류 지수'에 따르면 인도네시아와
인도를 대표적인 '한류 고성장 국가'로 분류됐다.
인도네시아에서 한류의 열풍이 불기 시작할 즈음인 2013년 ‘한국·인도네시아 수교 40주년’을 맞아 문화, 경제∙통상, 국방협력 등 다양한 행사를 진행했다. 당시에는 한류가 뜨거워지기 시작하는 단계인 만큼 주인도네시아 한국대사관과 한인회는 다양한 장르와 양적으로 많은 행사를 시행했다. 주요 행사를 살펴보면, 그해 3월에 개막 리셉션 및 전통문화공연을 시작으로 정무, 문화, 경제, 국방협력 등 다양한 분야의 행사가 12월까지 이어졌다. 특히, 그해 3월 9일 열린 ‘뮤직뱅크 인 자카르타’ 공연에 관중 2만여명이 운집한 가운데, 케이팝을 대표하는 아이돌 그룹인 슈퍼주니어, 샤이니, 비스트, 2PM 등이 참여해 케이팝 가수들의 높은 인기를 실감케 했다. 이외에도 △K-Pop 콘테스트 △영화 페스티벌 △한국에 관한 퀴즈 대회 △태권도 시범 △한국어 글쓰기∙말하기 대회 △한식 페스티벌 등이 있다. 경제통상 행사로는 △투자포럼 △한국상품전 △한∙인니 투자세미나 외에도 △한복∙바틱 패션쇼 △현대무용 공연 △한∙인니 미술교류전 △교향악단 공연 △폐막 리셉션 및 국립발레단 공연 등 다양한 장르가 포함된 복합문화행사가 열렸다.
강한 한류 열풍… K-쓰나미
가자마다대학교(UGM) 한국어과 수라이 아궁 누그로호 교수는 지난 1월 26일 한국과 인도네시아 수교
50주년을 기념해 인도네시아 외교부에서 열린 '모닝톡' 세미나에서
코로나 팬데믹을 거치면서 인도네시아에서 한류 열풍이 강하게 불고 있다며 K-웨이브 대신 K-쓰나미라고 표현했다. 그는 이어 "오늘날 한류 열풍은 과거에는 상상하지 못할 규모로 성장했다"라며 "K-웨이브를 넘어 K-쓰나미 수준으로 커졌다"라고 평가했다. 여기서 쓰나미라는 표현은 한류의 긍정과 부정의
양면성을 동시에 뜻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코로나 팬데믹을 거치면서 유튜브나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를
통해 한국 드라마와 영화, 노래 등이 더욱 확산하면서 인도네시아에서 한류 열기는 말그대로 뜨겁다. 그 중 하나가 떡볶이이다. 떡볶이를 정식 메뉴로 채택한 한식당도
눈에 띈다. 떡볶이와 어묵, 김밥을 파는 분식점은 물론 길거리음식으로
자리잡아 한인은 물론 인도네시아인까지 떡볶이 시장에 뛰어든 모양새다. 한인마트는 물론 현지 슈퍼마켓에서도
인스턴트 떡볶이 제품을 쉽게 구입할 수 있다. 한식당과 한인이 운영하는 마트에 현지인 손님 비율이 크게
증가했다. 포차라는 이름을 붙인 현지인이 운영하는 분식점도 하나둘씩 늘어나고
있다.
무알콜 할랄소주 등장
인도네시아인 가정에서 엄마와 자녀가
한국 드라마와 영화를 함께 보고 출연자와 내용에 대해 대화함으로써 한류가 세대 간 소통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 상호와
제품명, 제품 설명에 한글을 넣어 상품의 이미지를 고급화하는 데 한글을 활용한다. 인도네시아 사람들의 한류 사랑은 유별나다. K드라마에서 본 음식들을
시도하는 열성을 보이자, 무슬림을 겨냥한 무(無)알콜 '할랄(Halal) 소주'까지 탄생시켰다. 소주처럼 녹색 병에 ‘할랄 소주’라고 한글로 쓴 상품 라벨을 디자인하고 내용물로 녹차와
과일 맛 등 다양한 맛의 할랄 소주를 판매하고 있다. 이제 한류는 인도네시아 사람들의 생활의 일부가
된 듯하며, 현지에서 한류의 경제 유발 효과가 상승하고 있다.
‘한국·인도네시아
수교 40주년’이었던 2013년과
50주년이 되는 올해 인도네시아에서 한류의 양상은 크게 변화했다. 따라서
수교 50주년이 되는 올해 행사 내용도 양적인 면보다는 질적인 면이 강조될 것으로 기대된다. 지난 1월 30일 주인도네시아
한국대사관에서는 수교 50주년을 맞아 40여건의 주요 행사를
추진할 ‘민관실행위원회’가 출범했다. 이날 출범식 겸 제1차 회의에는 이상덕 주인도네시아 대사, 박재한 재인도네시아 한인회장, 이강현 한인상공회의소(코참) 회장 등 3명의
공동위원장 및 학술·정무, 경제, 문화·관광·예술, 홍보 분과위원 등 민관 40여명이 참석해 행사 준비의 밑그림을 그렸다. 주요 행사는 △3월, 홍보대사
위촉식 및 영상 촬영 △4월, 한-인니 1.5 트랙 관계 발전 포럼
△5월, 매경인도네시아 포럼 △6월, 코리아헤럴드 경제 문화 포럼 △9월, 수교기념일(9월18일) 리셉션 등이 계획되어 있다. 또
2023년 상반기에 △한-인니 미담사례 발굴 △문화행사 △코리아 트래블 위크 △아리랑TV K-Pop 콘투어/ 한-인니
국제세미나 등. 하반기에는 △K-Pop 콘서트 △영화제 △한인 50년사
인니어본 출간 △한-인니 우정의 레이스 △태권도 시범단 △K-Food 홍보대전 △폐막 행사 등이 마련될 예정이다.
이날 민간위원들은 행사 준비와 관련해 △다큐멘터리 제작 △한-인니 교향악단 협연 △수교훈장
수여 △한인기록소 설립 △로고, 배너, 차량스티커 등 홍보물 제작 배포 △마라톤·걷기대회 등 다양한 의견을 제시했다. 이외에도 필자는 콜라보 공연을 제안하고 싶다. 지난해 9월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관람한 안은미 컴퍼니의 신작 '디어 누산타라: 잘란잘란'(Dear Nusantara: Jalan Jalan)은
양국이 현대무용을 매개로 함께 공감할 수 있는 공연이었다. 또 인도네시아 근대미술의 거장 라덴 살레와
어깨를 나란히 할 만한 한국 화가와의 디지털 미술교류전을 개최한다면 다양한 한류의 장르를 선보이고, 양적
문화교류를 넘어서 질적인 문화교류에 초점을 맞출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한류 대중문화에 깊이가 더해지고 인도네시아인이 함께 즐길 수 있을 만큼 확산하면서 그 영향력도 커졌다. 이제는 지속가능한 쌍방향 문화교류를 활성화하기 위한 방안을 찾자는 데 초점이 맞춰지고 있다. 양국 모두에게 자국의 문화는 소중한 자산일 뿐만 아니라 자국민의 정체성 고양, 외교 및 경제 유발 효과 등과 직간접적으로 연결된다. 한국이 한류문화를 통해 인도네시아와 다양한 온·오프라인 교류를 통해 선한 영향력을 펼쳐서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데 기여하고, 인도네시아 문화와 제품을 소비하는 데에도 관심을 기울이기를 희망한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