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카르타 한식당, 경험 공간으로 진화
조연숙 데일리인도네시아 편집장
자카르타 한식당이 진화하고 있다. 2010년대 무렵 한국과 인도네시아 간 교류가 증가하고 인도네시아인이 적극적으로 한식당 사업에 참여하면서 한식당의 음식과 경영 등에서 다양한 시도가 이루어졌다. 이어 코로나19 팬데믹 기간에 인도네시아와 한국을 포함한 전 세계에서 외식문화 자체가 큰 변화를 겪었다. 무엇보다 음식 자체의 질적 향상과 더불어 새롭고 다양한 경험을 갈망하는 인도네시아 소비자들의 눈높이에 맞춰 한식당이 매우 빠른 속도로 무한히 진화하고 있다.
먼저 눈에 띄는 점은 한식당의 경험 공간으로의 변모이다. 인도네시아인이 한국에 있는 것처럼 느끼고 한국음식을 먹고 사진으로 찍어서 공유할 수 있는 곳이 한식당이다. 이는 한국과 한국문화를 좋아하고 소비하는데 적극적인 인도네시아 소비자들의 니즈에 발맞춘 결과로 보인다. 『2023 대한민국을 이끄는 외식 트렌드』의 저자 이윤화 푸드칼럼니스트는 2023년 대한민국을 이끄는 외식트렌드의 시그니처로 ‘골목에서 놀다, 골목상권’을 꼽으며, 식당이 끼니를 경험재로 바꾸는 공간이라고 묘사했다. 또한 그는 소비자들은 식당에서 식사를 하는 것 이상의 것을 요구하고, 밥을 먹는 행위 자체가 경험재가 되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런 경험을 소셜미디어(SNS)와 온라인 공간에 남겨서 정보로 활용하는 형태에 대해, 데이터 전문가 송길영은 “족적을 남기는 사회”라고 표현했다.
자카르타 롯데 쇼핑 에비뉴 ‘골목길상회’는 1970~80년대 한국의 골목길을 재현한 레트로(retro)풍 상가이다. 현재 떡볶이와 김밥 등을 파는 포장마차와 한국 교복을 대여해주는 상점이 운영 중이고, 주말에는 인도네시아 젊은이들이 모여서 k-pop 노래를 부르고 춤을 따라하면서 즐긴다. 자카르타 근교 서르뽕 지역에 위치한 사우스78(South78) 건물 내 마켓이룸푸드코트(Market Iruum Foodcourt)는 한국 백화점의 푸드코트 컨셉으로, 떡볶이와 김밥, 한국식 닭튀김, 자장면 등 가벼운 음식을 먹을 수 있고, 옆에 자리잡은 슈퍼마켓에서는 다양한 음료수를 포함한 한국식품을 구입할 수 있다.
두 번째 눈에 띄는 특징은 한국인 청년 셰프들과 경영자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해서 현지화하고 업그레이드된 외식 상품과 공간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 초기 한식당이 한국인 관점에서 한국을 연상시키는 인테리어와 한국음식을 재현하는 컨셉이었다면, 최근 한식당은 현지인이 생각하는 한국적인 모티브를 활용한 인테리어와 떡볶이와 김치볶음밥, 자장면, 양념치킨, 냉삼(냉동삼겹살) 등 한류 드라마에서 많이 나오거나 한국 여행 때 쉽게 접할 수 있었던 음식을 판매한다. 무엇보다 한국인 셰프가 마케팅 전면에 나서면서 현지 소셜미디어에서 인플루언서로 등극한 것. 이는 식당들 입장에서 가정에서 먹는 음식과 차별화하기 위해 필요한 요소 중 하나이다.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면서 배달음식의 영역이 확장됐고, 한인 슈퍼만이 아니라 현지 슈퍼에서도 다양한 간편식을 구입할 수 있게 돼, 가정에서 얼마든지 한식을 먹을 수 있게 됐지만, 한식 전문 셰프가 만들어 주는 음식과, 한국문화를 느낄 수 있는 인테리어와 다른 고객들과 어우러지면 만들어내는 분위기는 식당에서만 즐길 수 있다.
세 번째 눈에 띄는 특징은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방역 영향으로 한식당을 포함해 인도네시아 식당과 카페들이 전체적으로 위생관리가 개선된 점. 깨끗하게 씻어서 잘 건조한 수저를 종이에 포장해서 제공하기도 하고, 끓는 물에 담근 수저를 제공하기도 한다. 손소독제와 물수건 외에도 화장실과 별개로 손을 씻을 수 있는 세면대를 식당 입구나 매장 안에 갖춘 곳도 늘었다. 일부 식당은 테이블 간격이 넓어졌다. 또 연기와 열기 그리고 소음을 피하기 위해 고기를 식탁 옆에 마련한 별도의 탁자에서 구워서 제공하기도 한다.
네 번째 특징은 한국식 주점 포차로, 기존 정찬에 비해 캐주얼해진 음식과 다양한 술을 판매한다. 현지 젊은이 취향에 맞춰, 한식을 좀더 젊고 자유롭고 개성 있게 표현하며, 한옥을 연상시키는 인테리어 대신 웹툰 캐틱터와 서울 도심을 상징하는 요소들로 매장을 구성했다. 또한 스파게티 소스를 이용한 까르보나라 떡볶이와 트러플과 치즈를 더한 감자전 등 식재료와 조리법에 제한을 두지 않는 음식을 제공한다. 술은 기존에 판매하던 소주, 맥주, 막걸리, 전통주 외에도 와인과 다양한 맛이 가미된 소주를 판매한다.
마지막으로 한류의 적극적 활용도 눈에 띈다. 최근 개업한 우다움+62은 한식에 익숙하지 않은 현지인들을 위해 영화나 드라마에서 나온 음식들로 구성한 스토리를 넣은 메뉴를 제공한다. 이룸푸드코트는 영화 포스터 등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
한국과 인도네시아 외식 문화가 주변 환경과 더불어 빠른 속도로 변화를 거듭하는 가운데, 한식당도 인도네시아 소비자들의 선택을 받기 위해 수많은 탈바꿈을 하며 진화하고 있다. 인도네시아 소비자가 경험 속에서 규정짓는 한국음식과 한국인이 주도하는 한국음식이 상품으로 치열하게 경합하고 있다. 여기에 2010년대 중반부터 본격화된 스마트폰과 소셜미디어는 간단한 식사를 하더라도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고 디지털 기록으로 남겨서 다음 소비자들에게 영향을 미친다. 온라인 플랫폼에 인도네시아인이 올린 한식당 이용 후기에는 떡볶이 국물이 싱겁고, 김치가 덜 익었고, 김밥의 밥이 딱딱하다고 지적하는 댓글도 있다. 여전히 어설프고 지저분한 곳이 있고, 음식과 서비스의 질이 만족스럽지 못한 곳도 있다. 전체적으로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한식당 콘셉트가 100% 완성됐다고 볼 수 없다. 여기에 더해 자카르타 한식당은 더 이상 한인들을 위한 공간이 아니라 현지인을 주요 고객으로 하게 되어 더 많은 고민이 필요해 보인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