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제목 [무속과 괴담 사이(47)] 말하는 바위, 바뚜 바땅꿉(Batu Batangku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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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속과 괴담 사이(47)] 말하는 바위, 바뚜 바땅꿉(Batu Batangkup)

기사입력 2022.09.29 1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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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무속.png

 

바뚜 바땅꿉 1 아트모음.jpg
바뚜 바땅꿉 아트 모음

 

 

지금의 리아우주 힐리르의 인드라기리 지역에 있는 한 마을에 막미나(Mak Minah-미나 아줌마)라는 과부가 살았습니다. 그녀에겐 두 아들과 딸 하나가 있었는데 첫째와 둘째 아들은 우뚜(Utuh)와 우찐(Ucin)이란 이름이었고 막내딸은 디앙(Diang)이었습니다.


남편이 세상을 떠난 후 막미나 혼자 세 아이를 키웠는데 나이가 많이 든 후에도 꾸준히 일하며 아이들을 돌보았습니다. 그녀는 아침 일찍 일어나 청소와 빨래를 마치면 밥을 지은 후 숲속에서 땔감용 나무를 주어와 시장에 팔았습니다. 막미나와 아이들은 나무 판 돈으로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녀의 세 아이들은 말을 잘 듣지 않는 게으름쟁이들이었습니다. 막미나는 나이 들어 몸도 아프기 시작했지만 아이들은 어머니를 도울 생각이 전혀 없었습니다. 오히려 그들은 어머니 말을 무시하거나 거역하여 막미나의 마음을 아프게 했어요.


어느 날 저녁 세 아이가 집에서 좀 떨어진 곳에서 놀고 있었는데 그들을 찾는 어머니 막미나의 소리가 들렸습니다. “우뚜, 우찐, 디앙~, 날이 저물었어. 어서 집에 돌아오거라!” 그러나 아이들은 못 들은 척, 계속 놀기에 바빴습니다. 그 옛날 숲속에서는 해가 지고 나면 온갖 이상한 일들이 벌어지곤 했습니다. 사람들을 물어가는 배고픈 호랑이 같은 맹수들은 물론 아이들을 홀려 어디론가 데려가는 귀신 산데깔라(Sandekala)나 무시무시한 박쥐할멈 웨웨깔롱(Wewe Kalong)이 황혼 내리는 마그립이면 그림자 속에서 슬며시 나타나 늦게까지 숲에서 노는 아이들에게 마수를 뻗치곤 했던 것입니다.


막미나가 그들을 찾는 목소리가 또다시 들려왔습니다. “얘들아, 어서 돌아오거라. 오늘 엄마 몸이 별로 좋지 않으니 너희들이 저녁밥을 지어야 해.” 그러게 목청을 높였지만, 아이들이 돌아오지 않자 막미나는 기침을 하면서 집으로 돌아가 몸을 눕혔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아이들이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결국 막미나는 아픈 몸을 일으켜 자신이 직접 저녁밥을 지어야 했습니다. 


어렵사리 저녁밥을 준비한 막미나는 다시 아이들을 부르러 나갔습니다. “얘들아, 저녁밥이 다 준비되었다. 어서 돌아오거라!” 


석양이 나무들 사이로 사라지기 직전, 아이들은 그 소리를 듣고서야 노는 걸 멈추고 집으로 돌아와 곧바로 부엌으로 들어가 어머니가 준비해 놓은 밥을 먹기 시작했습니다. 아이들은 엄마 먹을 것을 남기지도 않고 차려 놓은 것을 모두 다 먹어 치웠습니다. 식사를 마친 아이들은 어머니를 도와 설거지를 하거나 상을 치우지도 않고 곧바로 다시 앞마당으로 나가 놀기 시작했습니다.


밤이 깊어지자 막미나는 하루 종일 몸을 혹사한 피로가 몰려오는 것을 느꼈습니다. 온몸이 아파와 아이들에게 좀 주물러 달라고 했지만, 아이들은 여전히 못 들은 척하며 밤늦도록 자기들끼리 노는 것에만 정신이 팔려 있었습니다. 막미나는 탄식을 할 뿐이었습니다. 

“하나님, 저를 좀 도와주세요. 아이들이 정신을 차리고 힘없는 어미를 돌볼 마음을 갖게 해주세요.” 

그는 그렇게 간절히 기도하다가 잠에 빠져들었습니다.


 

바뚜 바땅꿉 2.jpg


 

다음 날 아침 일찍 막미나는 일어나자마자 아이들을 위해 밥과 반찬을 충분히 준비해 놓고 아이들 모르게 그들이 사는 오두막 뒤편 강변으로 갔습니다. 그곳에는 사람처럼 말을 할 수 있다고 알려진 바위가 있었습니다. 그 바위는 조개처럼 입을 벌렸다 다물었다 할 수 있었는데 사람들은 그 바위를 바뚜 바땅꿉(Batu Batangkup)이라 불렀습니다. 뭐, 사실 어느 마을이나 이런 바위 하나쯤은 다 있잖아요?


막미나는 바뚜 바땅꿉 앞에 앉아 머리를 조아리고 부탁했습니다. 

“바뚜 바땅꿉아, 내 말을 듣고 날 삼켜 주렴. 난 더 이상 저 아이들과 함께 살 힘이 없단다.”

“정말 그래도 후회가 없겠소? 막미나? 그럼 아이들은 어떻게 되는 거죠?” 

바뚜 바땅꿉이 그렇게 물었습니다. 막미나는 생각지도 않았던 바위의 질문에 깜짝 놀랐지만 아이들에 대해서라면 이미 오랫동안 해오던 생각이 있었습니다.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자신이 차려주는 밥상뿐이지 정작 어머니가 필요한 건 아니라는 걸 이미 오래 전부터 실감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아이들은 엄마 없이도 잘 살 거야. 그 아이들은 더 이상 엄마가 아프든 죽든 상관하지 않아.”

“그렇다면 원하는 바대로 해드리죠.” 

바뚜 바땅꿉은 그렇게 대답하고서는 아무 망설임 없이 막미나를 단번에 삼켜버리고 입을 다물었습니다. 그 입 밖으로 막미나의 긴 머리칼만이 삐져나와 있을 뿐이었습니다.


한편 아이들은 엄마가 어디 갔는지도 모르고 그날도 하루 종일 놀다가 저녁이 되어 집에 돌아왔습니다. 아침에 엄마가 준비해 놓은 음식이 아직 남아 그것을 먹은 후 그제야 엄마가 어디 갔는지 조금 궁금해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아이들은 깊이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에게 엄마란 공기 같은 존재. 절대 자신들의 곁을 떠나 어디론가 가버릴 리 없다고 생각했던 것이죠.


둘째 날이 되자 막미나가 준비해 놓은 음식도 동이 났습니다. 그러나 당연히 돌아와 밥을 해줄 거라 생각했던 막미나가 보이지 않자 아이들은 배가 고파왔고 그제서야 어머니를 찾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막미나의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아이들은 그제서야 뭔가 잘못되었다는 걸 깨닫고 초조해하기 시작했습니다. 어머니가 왜 보이지 않을까 생각하다가 자신들이 그간 어머니에게 잘못했던 일들이 비로소 떠올랐던 것입니다. 그들은 잘못을 뉘우치며 어디 있는지도 모를 어머니에게 용서를 구했습니다. 결국 밤이 깊도록 온 동네와 산속을 돌아다니고서도 엄마를 찾지 못한 아이들은 지치고 허기진 채 울다가 잠이 들었습니다.


다음날도 아이들은 어머니를 찾아 돌아다니다가 바뚜 바땅꿉의 입이 닫혀 있고 그사이에 어머니의 머리칼이 삐져나와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바뚜 바땅꿉아! 네가 우리 엄마를 삼켰구나. 엄마를 돌려줘. 우린 엄마가 필요해!” 

아이들을 바뚱 바땅꿉을 손으로 때리면서 이렇게 졸랐지만, 바뚜 바땅꿉은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세 아이는 계속 울면서 어머니를 돌려달라고 빌었습니다.

“안돼! 너희들은 배고플 때만 어머니가 필요하구나! 너희들은 어머니가 그토록 도와달라고 해도 듣지 않고 어머니 말씀을 거역했잖아!” 

바뚜 바땅꿉이 마침내 입을 열어 아이들을 꾸짖자 아이들은 더욱더 거세게 울며 매달렸습니다.  

“바뚜 바땅꿉아, 엄마 말씀 잘 듣고 엄마 일을 도울 거라고 약속할게.” 

우뚜, 우찐, 디앙은 차례로 이렇게 맹세했습니다.

“좋아, 그렇게 맹세했으니 너희 어머니를 돌려주지. 하지만 만약 약속을 어기면 너희 어머니를 내가 다시 삼켜버릴 거야.” 

바뚜 바땅꿉은 아이들에게 한 번 더 맹세하도록 한 후 막미나를 뱉어냈습니다. 아이들은 바위 속에서 돌아온 어머니를 다 함께 껴안았습니다.

“미안해요 엄마, 우릴 용서해 주세요.” 

아이들이 용서를 빌며 매달리자 막미나는 마음이 뭉클했습니다. 

“그래, 얘들아. 모두 용서하마.” 

그들은 기쁜 마음으로 집에 돌아갔고 아이들은 당장 그날부터 약속한 대로 열심히 막미나의 일을 도왔습니다. 우뚜와 우찐은 땔감나무를 숲에서 가져와 시장에 파는 일을 도왔고 디앙은 어머니와 오빠들을 위해 음식을 준비했습니다. 막미나는 완전히 변한 아이들의 행동을 보고 마음이 뿌듯했습니다. 


하지만 그게 딱 며칠 계속되었을 뿐입니다. 아이들은 다시 게을러져 말을 듣지 않기 시작했고 어머니 일을 돕던 것도 그만두고 말았습니다. 막미나는 아이들이 예전 버릇으로 돌아간 것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사람의 성정은 쉽게 변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이들의 성정이 원래 저랬던 것을 새삼 기억하며 그녀는 눈시울을 적셨습니다.


어느 날 밤 더 이상 그 상황을 견딜 수 없게 된 막미나는 다시 많은 음식을 준비해 놓은 후 아이들이 아직 잠든 사이 바뚜 바땅꿉에게 찾아갔습니다. 집을 떠나기 직전 막미나는 침상 머리맡에서 아이들 하나하나에게 입을 맞추었습니다. 그런 후 바뚜 바땅꿉 앞에 선 막미나는 다시 자신을 삼켜 달라고 부탁했고 그녀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바뚜 바땅굽은 순식간에 그녀를 삼켜버렸습니다. 


다음 날 아침 일어난 아이들은 또다시 온종일 놀고 준비된 음식을 먹으며 막미나가 사라진 지 이틀이 지나는 동안 어머니를 찾지 않다가 먹을 것이 떨어지자 다시 어머니를 찾아 나섰습니다. 그들은 이번엔 어디로 가서 어머니를 찾아야 할지 잘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맹세를 어기면 어머니를 다시 삼켜버리겠다던 바뚜 바땅꿉의 말을 까맣게 잊고 있었죠. 


“바뚜 바땅꿉아, 우리 엄마를 돌려줘.” 

아이들은 바뚜 바땅꿉 앞에서 울면서 그렇게 요청했습니다.

“못된 녀석들! 이번엔 절대 너희들을 용서해 줄 수 없어!” 

바뚜 바땅꿉은 크게 화를 내며 이렇게 소리쳤습니다. 세 아이는 더욱 아우성을 쳤습니다. 계속 우기면 바뚜 바땅꿉이 지난 번처럼 엄마를 돌려줄 지도 모를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바뚜 바땅꿉은 갑자기 생각지도 못한 무서운 소리를 내며 아이들에게 소리쳤습니다.

“엄마를 돌려줄 수는 없어! 하지만 너희들이 그렇게 매달리니 너희를 데려갈 수밖에!”

그 말이 무슨 뜻인지 몰라 어쩔 줄 모르는 사이 세 아이를 바뚜 바땅꿉이 순식간에 몽땅 삼켜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런 후 바뚜 바땅꿉은 연못 밑 땅속으로 꺼져버렸고 이후 다시는 지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그 후 마을 사람들은 막미나와 세 아이들의 이야기를 더 이상 듣지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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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딘가 신비로우면서도 잔혹했던 뿌뜨리 두융 전설이 떠오르는 민화입니다. 불효를 당한 어머니는 아이들을 버리거나 저주하고 불효자 당사자들은 대개 죽음으로 잘못을 씻는 인도네시아 전설과 민화는 확실히 좀 더 원초적이고 매운맛이 분명한 남아 있습니다.


바뚜 바땅꿉3 아트 모음.jpg
삼키는 바위 아트 모음

 

  이 전설이 있는 리아우 주에서 그리 멀지 않은 중부 아쩨의 따껭온(Takengon) 지역에도 비슷한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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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가난한 가정이 긴 기근으로 먹을 것이 없어 아버지는 매일 사냥을 나갔지만, 짐승을 잡아오는 경우가 적었고 겨우 메뚜기들을 잡아, 그것으로 굽고 튀겨 끼니를 때우곤 했습니다. 어머니도 두 아이를 먹이기 위해 애를 썼지만 둘째는 아직 젖먹이였고 큰아이도 아직 어린 나이였습니다. 

  어느 날 남편이 사냥을 나간 사이 둘째가 너무 보채 큰 애에게 아버지가 창고에 잡아 둔 메뚜기들을 먹을 만큼 가져오라고 했는데 문단속을 잘못하는 바람에 창고 안 메뚜기들이 모두 도망가는 사고가 벌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날 저녁 아무 소득도 없이 사냥에서 돌아온 아버지가 그 사실을 알고 불같이 화를 내며 아내에게 폭력을 휘두르려 했습니다.

  어머니가 남은 메뚜기로 아이들에게 마지막 식사를 차려 준 후였습니다. 그는 성난 남편의 폭력을 피해 숲속으로 도망쳤는데 그곳엔 사람을 삼킨다는 기적의 바위가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거기서 주문을 외워 바위에게 자신을 삼켜달라고 부탁했고 뒤따라온 아이들은 어머니가 바위 속으로 점차 사라지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들은 어머니를 뒤따르려 했지만 차마 용기가 나지 않았습니다. 결국 사라진 어머니가 남긴 긴 머리카락 일곱 가닥만 바위 위에 남고 말았습니다.

  아이들은 그 머리카락을 주워 보관하며 평생 부적처럼 잘 간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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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그 당시에는 어머니가 자식들을 포기하거나 생활고에 떠밀려 자신의 생을 포기하는 경우가 종종 벌어졌던 걸까요?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아무도 모르게 이 세상에서 사라지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경우가 있는데, 예전 사람들에겐 바뚜 바땅꿉 같은 기적의 바위가 그런 순간을 위한 완벽한 솔루션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끝)

 

♣배동선 작가는 인도네시아의 동포 향토작가. 현지 역사, 문화에 주목하며 저서  <수카르노와 인도네시아 현대사>와 번역서 <판데르베익호의 침몰>, 공동번역서 <막스 하벨라르>를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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