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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연숙] “한국인이 본 인도네시아, 1995년 & 2022년”

기사입력 2022.08.29 1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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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연숙] “한국인이 본 인도네시아, 1995년 & 2022년”

조연숙 데일리인도네시아 편집장 

 

천년의 미소 인도네시아

김영호 지음 | 정보여행 | 1995년 1월 01일 출간



 1995년에도 2022년에도 인도네시아인의 미소는 신비하고 아름답고 편안하다. 길을 걷다 눈이 마주치면 '슬라맛 시앙'(Selamat Siang)이라 말하며 미소를 지어주는 인도네시아 사람들. 나도 미소로 답하다 보면 내 마음까지 밝아진다. 책 <천년의 미소 인도네시아>의 저자 김영호는 인도네시아 사람의 미소를 책 제목으로 정했을 만큼 인도네시아 사람의 미소를 사랑했다. 그는 인도네시아 사람의 미소를 "우리나라를 비롯해 아시아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미소"라고 묘사했다. 또한 인도네시아를 "웃음이 생활화돼있는 나라, 결코 화를 내지 않는 나라, 싸움을 하지 않는 나라, 미소의 왕국"이라고 정의했다. <미소 짓는 장군>(The Smiling General)은 인도네시아를 32년간 철권 통치했던 수하르토 전 대통령이 쓴 영문판 자서전의 책 제목이다. 실제로 사진이나 동영상 속 수하르토 대통령은 늘 부드러운 미소를 띠고 있다. 하지만 2022년을 사는 조코위 대통령은 미소를 지을 때도 있지만 굳은 표정이나 무서운 표정을 할 때도 있다. 관공서나 쇼핑몰에서 만나는 인도네시아 사람들도 예전보다 미소를 덜 짓고 굳은 표정을 더 많이 하는 것 같다. 


 저자 김영호는 한국과 인도네시아가 국교를 개설하기 전인 1966년 선발대로 인도네시아에 와서 주인도네시아 총영사관을 설치하는 과정부터 참여해 약 7년간 근무하며 인도네시아를 배우기 시작해, 그 후 한국남방개발주식회사(코데코)와 쌍용건설 인도네시아 등에 근무하며 약 20년간 인도네시아에서 살면서 배우고 깨달은 것들을 <천년의 미소 인도네시아>에 기록했다. 이 책에는 1990년대 이전에 인도네시아에 온 한국인들이 묘사했던 인도네시아가 담겨 있다. 물론 2022년에도 여전히 유효한 모습들이 많지만, 미소가 줄어든 것처럼 달라진 모습도 있다. 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 1998년 5월 사태와 수하르토 대통령의 퇴진, 2000년대 잇따라 발생한 발리와 자카르타 폭탄 테러들, 민주화와 산업화와 세계화, 디지털화 그리고 코로나19 팬데믹까지 겪은 2022년의 인도네시아 사람과 <천년의 미소 인도네시아> 속 인도네시아 사람의 모습을 비교해 보았다.  


 미소와 더불어 끼라끼라(Kira Kira. 대략 또는 약)는 저자가 꼽은 대표적인 인도네시아 사람의 특징이다. 저자는 인도네시아 사람에게 나이를 물어보면 약 90%가 '끼라끼라 서른 살'이라고 답하고, 시골사람 중에 자기 부모의 나이를 아는 사람이 거의 없다고 썼다. 또 약속할 때 끼라끼라 7시라고 하면 7시보다 빠를 수도 있고 늦을 수도 있다는 의미라고 썼다. 2022년에는 끼라끼라를 덜 쓰는 느낌이고, 특히 약속 시간을 말할 때는 끼라끼라라고 하지 않고 시간을 정확하게 말하는 경우가 더 많다. 


 고무줄 시계(Jam Karet)은 우리말로 하면 '코리안 타임' 즉 약속 시간을 정확히 지키지 않는 것이다. 저자는 현지인들이 약속 시간에 30분 늦는 것이 보통이고 기다리는 사람도 느긋하게 기다린다고 썼다. '빨리빨리'가 없고 만사가 '천천히' 그러나 '확실히'(Alon Alon Asal Kelakon. 늦더라도 제대로라는 의미의 자바어)가 지배하는 나라라며, 군대에서 구보할 때와 비 올 때 피하려고 뛰는 일밖에 없다고 했다. 내 경험으로는 사람만 늦는 게 아니라 비행기도 연착하는 경우가 흔했고, 심지어 오케스트라 공연 같은 공식행사도 일정표에 나온 시간보다 30분에서 1시간가량 늦게 시작했다. 이제는 공식행사는 대체로 일정대로 시작하고, 약속 시간도 맞추려고 노력하는 모습이다. 다만 악명 높은 자카르타 교통 체증은 시간을 지키려는 사람의 마음을 무색하게 만들기도 한다.   


 블루버드와 실버버드는 대표적인 인도네시아 택시다. 저자는 인도네시아 택시 문화가 당시 한국보다 훨씬 세련되고 합리적이라고 평가했다. 당시 한국은 승차 거부와 승객에게 동의를 구하지 않은 합승 등 택시기사의 횡포가 만연하던 시절이었다. 저자는 인도네시아에서는 택시기사가 사회적으로 꽤 대접받는 직업이었고 대졸자와 비슷한 보수를 받았기에 가능했다고 분석했다. 이후 인도네시아에서도 택시를 함부로 탈 수 없었던 시기가 도래한다. 개혁 시대로 들어오면서 블루버드의 독점이 깨지고 생겨난 중소업체의 택시들은 안전과 서비스 그리고 청결 관리가 안 된 것. 디지털 시대를 맞아 인도네시아 택시는 다시 한번 전환기를 맞는다. 고카와 그랩카 등 온라인 차량호출 서비스 앱들이 요금 시비와 안전 문제를 해결해 경쟁우위를 점했고, 코로나19 팬데믹으로 택시 이용자가 급감하면서 중소택시업체들이 파산하고, 고카나 그랩카 보다 나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택시인 블루버드와 실버버드만 남았다. 


 포장마차에서 커피 한 잔. 저자는 인도네시아는 차 문화가 매우 발달한 나라이지만 다방 같은 것은 없었고, 대신 포장마차(노점) 같은 곳에서 커피 같은 차 종류를 팔았다고 했다. 지금은 인도네시아 어디서나 스타벅스와 TWG 티하우스 등 에어컨이 나오는 시원한 카페와 찻집에서 여럿이 와서 차를 마시며 대화하는 사람들과 혼자서 휴대용 컴퓨터를 켜놓고 일하거나 공부하는 사람들을 흔하게 볼 수 있다.    


 미지근한 맥주 한 잔. 저자는 인도네시아에는 미지근한 맥주만 있다며, 인도네시아인이 찬 것을 싫어해서라고 설명한다. 또한 이슬람에서 돼지고기와 술을 금지하기 때문에 인도네시아 사람은 술을 마시지 않는다며, 회식이나 결혼 피로연에도 술이 없고 술집도 없다고 썼다. 그리고 뜨거운 것도 싫어해서 밥이 나오면 식혀서 먹는다고 했다. 2022년에 인도네시아인들은 시원한 맥주를 마시고 뜨거운 밥을 먹는다. 카페나 레스토랑에서는 에스젠돌(Es Gendol)과 팥빙수같이 얼음을 갈아서 만든 디저트를 팔고, 끓이면서 먹는 샤부샤부나 태국식 수끼(suki)도 많이 먹는다. 냉장고와 전기밥솥은 인도네시아인에게 필수품이 됐다. 예전에 인도네시아에 냉면 같은 찬음식이 없는 이유를 물었을 때, 인도네시아인 지인은 음식을 시원하게 위생적으로 보관할 수 없어서라고 답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서 냉장고와 위생적으로 처리한 얼음이 유통되면서 찬음식과 시원한 음료수를 이용할 수 있게 되니 그의 말이 맞았다는 생각이 든다.     


 맨발의 예의. 인도네시아에서는 오랜 관습에 따라 하인이나 가정부는 주인집 또는 다른 집을 방문할 때 신발과 양말을 벗고 맨발로 들어간다고 썼다. 실제로 2000년대 초에도 아파트 관리실 소속 기술자들이 집수리를 하러 들어올 때 현관문 앞에 신발과 양말을 벗어 놓고 들어왔다. 밖에서도 인도네시아 사람들은 맨발에 슬리퍼나 샌들을 많이 신었다. 여전히 이슬람사원에 들어갈 때는 맨발로 들어간다. 하지만 2022년 8월 수카르노하타공항 국내선 터미널을 오가는 인도네시아인들의 대부분이 양말과 운동화나 구두를 신고 있었고, 소수만 맨발에 슬리퍼를 신었다. 이제 전기수리공도 양말을 신고 집 안으로 들어온다. 집에서 일하는 사람을 더 이상 하인과 하녀라고 부르지 않는다. 


 대포 한 잔이면 하녀 한 명. 2000년대 초까지도 인도네시아에서 웬만한 가정은 대부분 하녀 한두 명을 거느리고 있었고, 그들 중 대부분은 동부자바와 중부자바 출신의 10~30대의 남성과 여성이었다. 저학력의 인력을 고용할 공장이나 일자리가 부족해서, 먹여주고 재워주고 약간의 용돈만 줘도 훌륭한 직장이었기 때문이다. 이들의 한 달 보수는 약 40~50달러로, 저자는 당시 한국 돈으로 3~4만 원 정도이고 한국 애주가의 하룻저녁 대포 한 잔 값 정도였다고 설명했다. 외국인들은 보통 10달러 정도 더 주었다고. 하지만 고용주가 멋대로 부리고 화를 내면 그날로 짐을 싸서 떠난다고 주의를 주었다. 2022년 인도네시아는 집에 함께 거주하는 가사도우미가 점점 줄어드는 추세이다. 고용주 입장에서는 임금 상승에 따른 비용 부담, 주거 형태가 아파트나 소형 주택으로 바뀌면서 공간이 축소된 점, 가족 구성원 감소, 가사노동을 대체하는 가전제품의 보급 등으로 입주 가사도우미를 쓸 여건이 안 되거나 쓸 필요가 없어졌고, 고용인 입장에서는 교육 수준이 올라가고 공장과 사무실, 식당과 상점 등 다양한 일자리가 생겨서 굳이 입주 가사도우미를 할 필요가 없어졌다. 현재 자카르타 가사도우미 월급은 평균 320만~350만 루피아로 지역최저임금(UMP)의 70% 선이다.   


 55세의 여비서와 20대 남자 사환. 기업과 관공서에서 고위급 비서가 50대의 가정주부이고, 20대 남자가 사무실에서 책상을 닦고 커피를 타는 풍경은 인도네시아에서는 평범하지만, 한국인에게는 낯설다. 20대의 예쁜 여비서와 40~50대의 전문직 남자 직원은 저자뿐만 아니라 지금도 한국인이라면 갖는 고정관념이다. 저자는 인도네시아에서는 관공서나 기업에 엘리트 출신 여성인력이 상당 부분 포진해 있고, 비서 업무가 전문화되어 있어서 50대 여성도 상당수 비서로 활약한다며, 가정적으로나 사회생활 면에서 여자이기 때문에 안 된다는 식의 성차별이 거의 없고, 가사도우미와 베이비시터를 고용해 집안일에서 벗어난 점도 여성들의 사회활동이 가능한 요인으로 보았다. 또한 국가기관의 행사 초청엔 반드시 동부인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며, 주로 남자들만 행사를 치르는 한국과 다르다고 했다. 가정의 대소사는 남편 혼자 결정할 수 없고 부인과 반드시 협의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2022년 8월 17일 독립기념일 행사에는 조코 위도도 대통령 부부를 비롯해 내외귀빈들이 부부 동반으로 참석했다. 스리 물야니 재무장관과 렛노 마르수디 외교장관은 전문 관료 출신으로 업무능력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는 여성들이다. 여전히 기업과 관공서에 가면 고위직과 중간관리자로 일하는 여성을 흔하게 볼 수 있다. 오히려 남자 사환은 줄고 있다. 커피는 사무실에 있는 커피메이커를 이용하거나 배달앱을 통해 배달시켜서 마시고, 웬만한 복사는 프린터와 스마트폰으로 가능하다. 외주업체 소속 청소노동자는 남녀가 섞여 있다.  


깃발이 휘날리는 나라. 저자는 8월 17일 독립선언기념일에 거리에 나가보면 장관이라며, 마치 시골 국민학교(초등학교) 운동회날에 만국기가 휘날리듯 집마다 내건 국기가 푸른 하늘을 가득 매운 채 힘차게 휘날리는 광경을 목격할 수 있다고 썼다. 인도네시아인들은 일본이 폐망한 직후인 1945년 8월 17일에 수카르노 집 앞 뜰에서 처음으로 적백기를 게양하고 독립선언을 한다. 그리고 이날을 독립선언기념일로 기리면서, 매년 대통령궁에서 당시 게양했던 그 적백기를 게양하는 의식을 성대하게 거행한다. 2000년대 중반까지도 독립선언기념일은 이슬람 최대 명절인 르바란(Lebaran=Idul Fitri)과 함께 양대 축제였다. 인도네시아인들은 7월 중순부터 직장이나 지역 단위로 준비위원회를 만들어서 적백기를 활용해 주변을 장식하고 토너먼트 경기를 치르면서 분위기를 고조시켜서 8월 17일에 성대한 축제를 연다. 독립기념일은이 현재 사는 이웃이나 직장동료들과 함께 하는 행사이고,상대적으로 르바란은 고향으로 돌아가서 가족·친지들과 함께하는 축제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독립선언기념일은 독립기념일로 명칭이 바뀌었고,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종교적인 이유로 행사가 축소되다가 2020년부터 2년간은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중단됐다. 2022년 8월 17일, 조코위 대통령은 독립기념일 행사를 화려하고 성대하게 열어 최근 경제력과 국격 상승으로 커진 인도네시아 사람의 자긍심을 한껏 드러냈다.   


<천년의 미소 인도네시아>는 인도네시아와 인도네시아인에 대한 것뿐만 아니라 한국과 인도네시아의 관계, 인도네시아에 사는 한국인에 대한 이야기도 담겨 있다. 책이 출판된 1995년과 비교해 지금은 국제사회에서 한국과 인도네시아의 위상이 크게 올랐고, 인도네시아에서도 한국과 한국인의 위상이 크게 상승했다. 인도네시아 역사와 문화도 더 많이 연구되고 알려졌다. 산업화와 도시화, 세계화와 디지털화는 인도네시아 사람들의 라이프스타일을 바꾸고 생각까지 바꾸었다. 강물이 흐르면서 물길이 바뀌듯이 세월이 흐르며 인도네시아와 인도네시아인들도 알게 모르게 변했다. 그럼에도 에어컨에서 나오는 찬바람에 몸이 언 채 매마른 얼굴로 서있는 쇼핑몰의 판매원들을 보며, 인도네시아 사람들이 종일 미소 속에서 살고 인도네시아가 '미소의 왕국'이란 별명을 계속 유지할 수 있기를 바란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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