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제목 김상균의 식물원 카페 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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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균의 식물원 카페 148

기사입력 2022.08.31 1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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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시 채석강에서


                                                                       진란



          그를 다시는 펼쳐보지 않으리라고

          두텁게 쌓인 먼지를 털어내지 않았다


          밀려왔다 푸르릉 피어나는 물거품도

          서로 꼬리를 물고 사라지는 이무기의 꿈만 같아

          수십 리 밖으로 펼쳐진 모래톱에서는

          해무가 시나브로 일어나나니


          칠천만 년 동안 아무도 펼치지 않았다는

          이백의 서재를 엿보기나 하였다

          선캄브리아대를 지켜온 할배도 눈웃음으로

          천 탑을 쌓는 중이라고 했다


          고서를 펼쳐보는 이 하나 없어도

          갯벌을 뚫고 나온 달랑게들이 눈 봉 곧추세우고

          따개비들도 푸른 바다를 꿈꾸는 밤


          그해 가을의 그 해국은

          지금도 책갈피에 보랏빛 곱게 꽂혀 있는지

          희끗해진 꽃이파리 날아가 버렸는지

          차마, 아래 눌린 책을 꺼내 보지 못하고

          바다를 꿈꾸는 생이 무거워지는 밤이다



시인동네 시인선 178 『슬픈 거짓말을 만난 적이 있다』 문학의전당, 2022




31일 식물원카페.jpg



 “그를 다시는 펼쳐보지 않으리라고/두텁게 쌓인 먼지를 털어내지 않았다//……//그해 가을의 그 해국은/지금도 책갈피에 보랏빛 곱게 꽂혀 있는지/희끗해진 꽃이파리 날아가 버렸는지/차마, 아래 눌린 책을 꺼내 보지 못하고/바다를 꿈꾸는 생이 무거워지는 밤이다”

 8월의 마지막 날입니다. 열정과 이글거림으로 그득했던 바다에는 옅어진 발자국 사이로 바람이 잦아들고 있네요. 지나간 것은 아쉬움으로 남는가 봅니다. 그토록 무덥던 날들도 잃어버린 젊은 날의 순간처럼 여겨지니 말입니다. 이제 9월이고, 열흘 뒤면 한가위 명절입니다. 차분한 마음으로 한걸음 가을로 발걸음을 옮겨야 할 때입니다.


 모든 생명에게 평화와 행복이 가득하기를 기원합니다.



 Eleni Karaindrou의 ‘El valse’입니다.

 



김상균 시인.jpg

 

김상균 약력


 김상균 시인은 서울 출생으로 부산대학교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1985년 <가락>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으며, 시집으로 <자작나무, 눈, 프로스트>와 <깊은 기억> 등이 있다. 대학 강사와 고등학교 교사를 거쳐 KAIST 부설 한국과학영재학교에서 교감으로 퇴임하였다. 다수의 사진전을 개최한 바 있는 사진작가이며, 일찍부터 영화와 음악에 대한 시와 글을 써온 예술 애호가이자, 70년대 후반부터 배낭여행을 해온 여행 전문가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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