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풍해장국
오성일
사무실 앞 미풍해장국이 문을 닫았습니다
그제 밤부터 불이 꺼져 있더니
오늘 낮까지 문이 잠겨 있습니다
문 닫힌 한낮의 식당 안을 들여다보는 건
왠지 섭섭하고 걱정이 드는 일입니다
해장국의 뜨뜻하고 뿌연 김이 가라앉은 식당에선
유리문 사이로 서러운 비린내 같은 게 새 나옵니다
옆 건물 콜센터의 상담원 처녀들이
늦은 밤 소주 댓 병과 함께 뱉어낸
고객님들의 악다구니와 욕지거리들도
식당 바닥 찬물 위에 굳은 기름으로 떠 있습니다
의자와 정수기와 도마와 탁자와 계산대는 다들
앞길이 막막하다는 표정으로
그늘 속에 반쯤 얼굴을 묻고 있습니다
나는 젊은 주인 내외가 무슨 상이라도 당했으려니
노할머니께서 돌아가셨는데
너무 슬픈 나머지
쪽지 하나 붙이고 가는 일 깜빡했으려니 짐작하면서
하루 이틀 더 기다려보자고 생각합니다
그나저나 이제 초여름인데 벌써 공기가 후줄근합니다
미풍이 좀 불었으면 좋겠습니다
콜센터 아가씨들에게도 해장국집 착한 부부에게도
그리고, 나에게도 바람이 좀…….
솔 시선 33 『미풍해장국』 솔출판사, 2021
“……/그나저나 이제 초여름인데 벌써 공기가 후줄근합니다/미풍이 좀 불었으면 좋겠습니다/콜센터 아가씨들에게도 해장국집 착한 부부에게도/그리고, 나에게도 바람이 좀…….”
태풍이 온 듯 비바람이 거센 밤입니다. 장마철이라 비가 오지 않아도 눅눅하다 못해 ‘후줄근’한 상태인데, 비바람까지 치니 지금은 날씨 앱 기준으로 습도가 무려 99%입니다. 이 정도 수치면 물속에 있는 건 아닌가요. 세계적인 경제 불황에 고유가와 물가 상승까지 이번 여름은 심리적 불쾌지수도 무척이나 높아질 듯합니다. 이럴수록 잠겨있는 ‘한낮의 식당 안을 들여다보’는 시인의 마음처럼 힘겨운 삶을 이어가는 이웃의 간난艱難에 대해 눈감지 않는 ‘우리’가 되었으면 합니다.
모든 생명에게 평화와 행복이 가득하기를 기원합니다.
최백호의 ‘길 위에서’입니다.
김상균 약력
김상균 시인은 서울 출생으로 부산대학교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1985년 <가락>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으며, 시집으로 <자작나무, 눈, 프로스트>와 <깊은 기억> 등이 있다. 대학 강사와 고등학교 교사를 거쳐 KAIST 부설 한국과학영재학교에서 교감으로 퇴임하였다. 다수의 사진전을 개최한 바 있는 사진작가이며, 일찍부터 영화와 음악에 대한 시와 글을 써온 예술 애호가이자, 70년대 후반부터 배낭여행을 해온 여행 전문가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