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미
류 근
오랜 슬픔에 겨워 눈이 떠진 아침엔
어쩐지 평화로워진 몸매로 세상에 가서
목매달 수 있을 것 같다
하느님만 발을 디디시는 환한 허공에
처음 만든 다리 하나 이쪽과 저쪽에 걸쳐두고
황홀하게
황홀하게 이쪽에서 저쪽으로
건너갈 수 있을 것 같다
문학과지성 시인선 489 『어떻게든 이별』 문학과지성사, 2016
“……/하느님만 발을 디디시는 환한 허공에/처음 만든 다리 하나 이쪽과 저쪽에 걸쳐두고/황홀하게/황홀하게 이쪽에서 저쪽으로/건너갈 수 있을 것 같다”
점점 하늘, 허공을 볼 때가 늘어나는 것 같습니다. 내가 처음 하늘을 제대로 응시했던 기억은 초등학교 4학년 때였습니다. 점심시간에 같은 반 친구들이 학교 뒤 저수지에 고기 잡으러 간다고 해서 따라갔었는데, 친구들이 물가에서 맨손으로 고기를 뜨려는 것을 보고, 주머니에 있던 흰 손수건을 내어주고는, 왁자지껄하는 소리를 들으며 나는 혼자 풀밭에 누웠습니다. 바람에 흔들리는 미루나무 사이로 파란 하늘에 흘러가는 흰 구름을 가만히 보고만 있었는데 갑자기 조용하다고 생각하고는 일어나보니 혼자만 남겨져 있었던 씁쓸한 기억입니다. 그 어린 나이에 나는 왜 하늘과 떠가는 구름을 보며 평온하게 1시간 넘겼을까요. ‘황홀하게 이쪽에서 저쪽으로/건너갈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 것도 아닌데 말입니다.
모든 생명에게 평화와 행복이 가득하기를 기원합니다.
Keduk과 Radunski가 연주하는 A. Piazzolla의 ‘Libertango for cello and piano’입니다.
김상균 약력
김상균 시인은 서울 출생으로 부산대학교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1985년 <가락>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으며, 시집으로 <자작나무, 눈, 프로스트>와 <깊은 기억> 등이 있다. 대학 강사와 고등학교 교사를 거쳐 KAIST 부설 한국과학영재학교에서 교감으로 퇴임하였다. 다수의 사진전을 개최한 바 있는 사진작가이며, 일찍부터 영화와 음악에 대한 시와 글을 써온 예술 애호가이자, 70년대 후반부터 배낭여행을 해온 여행 전문가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