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제목 [신성철] ’인도네시아 민족’을 외치다
보내는분 이메일
받는분 이메일

[신성철] ’인도네시아 민족’을 외치다

기사입력 2022.05.27 17:01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기사내용 프린트
  • 기사내용 메일로 보내기
  • 기사 스크랩
  • 기사 내용 글자 크게
  • 기사 내용 글자 작게

’인도네시아 민족’을 외치다 

신성철 데일리인도네시아 대표 / 한인뉴스 논설위원


‘대~한민국 짝짝짝 짝짝’ ‘오 필승 코리아’. 2002년 한·일월드컵이 진행될 때 대한민국 방방곡곡에서 울려퍼진 거대한 함성소리가 아직도 생생하다. 언제부터인가 인도네시아에서도 축구와 배드민턴 경기장에서 붉은악마의 응원을 응용한 듯한 '인~도네샤 짝짝짝 짝짝'으로 응원을 하고, 'Garuda di dadaku'(가루다는 내 가슴에)라는 응원가를 목청 높여 부른다. ‘민족’이라는 단어는 가슴을 뜨겁게 하고, 축구경기를 비롯한 스포츠는 가장 열광적으로 민족주의를 드러낸다.


이웃국가 간 영유권 다툼은 민족을 결집시킨다. 독도를 둘러싼 한일 간의 영토 분쟁과 보르네오(깔리만딴) 섬 북동부 해역에 위치한 리기딴(Ligitan) 섬과 시빠단(Sipadan) 섬을 놓고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 간 영유권 분쟁도 대표적인 예가 될 수 있다. 또한 양국 간 바틱과 민요 등 문화유산 소유권 다툼은 이웃국가 간에 감정의 골을 더욱 깊게 만든다.


일본을 통해서 들어온 ‘민족’(nation)이라는 개념이 우리나라에 건너오면서 다소 왜곡된다. 단일민족을 중심으로 형성된 한국과 일본의 민족 개념과 다양한 종족과 문화로 혼합된 인도네시아와 중국의 민족 개념은 차이가 커서 혼돈을 일으킨다. 영어에서 온 용어인 네이션(nation)은 통상, 민족 또는 국민으로 번역한다. 하지만 오늘날엔 민족에 대한 개념은 국민을 구성하는 하위단위의 집단 즉, 소수민족(ethnic group)이라는 의미로 정립되고 있다. 


베네딕트 앤더슨.jpg
베네딕트 앤더슨

 

민족주의를 논할 때 ‘상상된 공동체’(Imagined Communities)의 저자 베네딕트 앤더슨을 빼놓을 수 없다. 인도네시아 사람보다 인도네시아를 더 사랑한 앤더슨은 1936년 중국 쿤밍에서 영국계 아일랜드인 아버지와 영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다. 1967년 미국 코넬대학에서 인도네시아 역사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고 이 대학에서 교수로 재직했다. 1965년 9월 30일 인도네시아에서 발발한 일명 930사태를 계기로 확산돼 50만명 이상이 희생된 것으로 추정되는 인도네시아 반공 대학살의 실상을 드러내는 논문을 쓴 앤더슨은 수하르토 독재정권에 의해 1972년부터 27년간 인도네시아 입국을 금지당했다. 모국어 수준으로 인도네시아어를 구사한 앤더슨은 2015년 12월 동부자바주 말랑 인근 바뚜 지역에서 79세로 숨을 거둔다. 언론들은 앤더슨의 인도네시아에 대한 사랑을 ‘앤더슨의 진정한 고향은 인도네시아였다’라고 묘사했다.


1983년 앤더슨에 의해 탄생된 책 '상상된 공동체’는 민족주의 연구에 전환점을 마련한 저서라는 평가를 받는다. 최근 코로나 사태를 겪으면서 민족주의와 보호주의가 회귀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 만큼 '상상된 공동체’는 현재성을 잃지 않는 현대판 고전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 책은 다민족 국가인 인도네시아를 비롯한 동남아시아에서 민족이라는 개념이 어떻게 정치적으로 활용되고 적용되어 왔는지를 보여준다. 국민은 혈통 등 자연발생적인 것을 기반으로 하지 않고 만들어지고 구성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이를 인도네시아를 통해 입증하고 있다. 


Imagined Communities.jpg
'Imagined Communities' 책 표지

 

앤더슨은 민족이 영속적인 것 아니라 근대에 들어서 종교 공동체와 왕권이 약화되고 인쇄술과 자본주의가 발달하면서 상상되고 구성되어졌다고 주장한다. 신문과 소설 등 인쇄물이 민족공동체를 만들고 구성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는 것. 앤더슨은 민족국가 형성 과정에서 인도네시아어(Bahasa Indonesia) 채택을 ‘신의 한수’로 보았다. 인도네시아에서 민족주의가 태동할 즈음인 1928년에 나온, ‘청년의 맹세’(Sumpah Pemuda) 즉 ‘하나의 국가’. ‘하나의 민족’ 그리고 ‘하나의 언어’는 이후 인도네시아 건국의 근간이 된다.


근대 이전에 인도네시아 군도에는 지금과 같은 통일국가가 존재하지 않았다고 볼 수 있고, 인도네시아라는 근대 국가의 탄생은 근대 이후 제국주의 침략과 저항을 하면서 태동되었다. 민족주의가 태동할 즈음에 수카르노를 비롯한 다양한 배경의 엘리트 집단들은 제국주의 세력과 타협하고 국제적 환경의 변화에 대응하면서 독립을 쟁취했다. 이후 초대 대통령 수카르노와 이어 바통을 이어받은 수하르토가 인도네시아의 민족주의를 강화시켰다. 1998년 5월사태를 맞으며 32년간 철권 통치한 수하르토가 실각하면서 인도네시아가 동유럽국가와 같이 여러 나라로 분리될 수도 있다는 우려도 난무했다. 동티모르가 2002년 인도네시아로부터 독립했으나 아체와 파푸아 등 다른 지역의 분리주의 세력은 약화돼 정국은 안정됐다. 


개혁시대 이후 특히, 수실로 밤방 유도요노 정부와 조코 위도도 정부에서 인도네시아 경제가 크게 성장하면서 민족주의는 더욱 강화되는 모양새다. 제2차 세계 대전의 종식과 함께 탄생한 신생독립국 인도네시아는 독립 100주년이 되는 2045년에 세계 5위 경제 대국을 꿈꾸고 이를 향해 달리고 있다. 이미 인도네시아는 앤더슨이 말하는 ‘상상된 공동체’의 가장 성공적인 사례로 보인다. (끝)   


<저작권자ⓒ데일리인도네시아 & www.dailyindonesia.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
 
 
 
 
 
회사소개 | 광고안내 | 제휴·광고문의 | 기사제보 | 다이렉트결제 | 고객센터 | 저작권정책 | 회원약관 | 개인정보취급방침 | 이메일주소무단수집거부 | RSS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