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제목 김상균의 식물원 카페 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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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균의 식물원 카페 134

기사입력 2022.05.18 1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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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요한 세계

           ― 김경철을 기리며


                                                                              유국환



           들을 수 없어도 나는 보았지요

           꺼칠한 손으로 애교머리를 쓸어내리는 여동생의 꿈을


           말할 수 없어도 나에게도 꿈이 있었지요

           기와를 굽더라도 어무이 배곯지 않게 하겠다고


           갸가 어릴 때 경기가 왔는디

           나가 뭘 모릉께 마이싱을 많이 맞아부렀제

           그 이후로 귀가 먹어버렸어


           사람들이 유행가에 어깨를 들썩이는 날이었지요

           강물은 흘러갑니다 제3한강교 밑을

           당신과 나의 꿈을 안고서 흘러만 갑니다


           너 데모했지, 연락병이지?

           어디서 벙어리 흉내 내?

           손사래질 위로 햇살보다 몽둥이가 먼저 쏟아졌습니다

           까마득한 곳에서 어무이 말소리가 들렸지요

           내일하고 모레면 부처님 오신 날인디


           갸가 기와를 굽다가 가운데 손가락이 짤려부렸어

           다들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데 요래조래 찾아봉께

           가운데 손가락 없는 애가 눈에 딱 들어오던걸


           올해로 마흔 번 아들을 죽였다고 말하지만

           울 어머니가 아들을 쓰다듬을 때마다

           시커먼 땅속에서는

           파란 잔디와 뜨거운 햇살이 살아난다니께요.



푸른사상 시선 156 『고요한 세계』 푸른사상, 2022




식물원카페.jpg
하삼두 화백의 ‘귀가’

 



 “사람들이 유행가에 어깨를 들썩이는 날이었지요/강물은 흘러갑니다 제3한강교 밑을/당신과 나의 꿈을 안고서 흘러만 갑니다//……//올해로 마흔 번 아들을 죽였다고 말하지만/울 어머니가 아들을 쓰다듬을 때마다/시커먼 땅속에서는/파란 잔디와 뜨거운 햇살이 살아난다니께요.”

 그때 나는 대학 4학년 학생으로, 중학교에서 교생실습 중이었습니다. 출산휴가 들어간 담당 선생님을 대신하여 세계사를 가르치고 교생 대기실에 들어섰는데, 광주에서 큰일이 벌어졌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순간 어찔한 느낌과 함께, 며칠 뒤 실습이 끝나는 대로 피신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교지편집실 동료와 써클 후배가 모여 지하 신문을 만들어 뿌렸었는데, 이 일로 기관에서 분명히 추적해올 거라고 예감했던 것입니다. 실습을 끝낸 다음 날, 자갈치에서 어선 선창 아래 숨어서 가덕도로 떠났고,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바닷가 기도원 외딴집에서 두 달을 숨죽여 지냈습니다. 그 이후, 나와 친구, 후배들의 행로는 바뀌게 되었습니다.

 하늘에는 휘영하니 달이 떴습니다. 이제 5.18 민주화 운동 기념일입니다. 벌써 42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하지만 유가족분들의 상처는 결코 아물지 못하고 있습니다. 어찌 시간이 지난다고 부모나 자녀를 처참하게 잃은 유가족들의 아픔이 덜어지겠습니까. 희생하신 분들의 명복을 빌며, 유가족분들께 진심 어린 위로와 고마움을 전합니다.


 모든 생명에게 평화와 행복이 가득하기를 기원합니다.



 Sheila Ryan의 ‘Annie Laurie’입니다.

 





 김상균 시인.jpg

 

 김상균 약력


 김상균 시인은 서울 출생으로 부산대학교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1985년 <가락>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으며, 시집으로 <자작나무, 눈, 프로스트>와 <깊은 기억> 등이 있다. 대학 강사와 고등학교 교사를 거쳐 KAIST 부설 한국과학영재학교에서 교감으로 퇴임하였다. 다수의 사진전을 개최한 바 있는 사진작가이며, 일찍부터 영화와 음악에 대한 시와 글을 써온 예술 애호가이자, 70년대 후반부터 배낭여행을 해온 여행 전문가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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