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제목 [무속과 괴담 사이(32)] 동화편: 말린 꾼당(Malin Kundang)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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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속과 괴담 사이(32)] 동화편: 말린 꾼당(Malin Kundang) 이야기

기사입력 2022.03.02 1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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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_아이르 마니스 해변.jpg
빠당(Padang) 아이르 마니스 해변

 


 옛날 옛적 수마트라 빠당 지역 아이르 마니스 해변(Pantai Air Manis) 어촌 마을에 만데 루바야(Mande Rubayah)라는 과부가 말린 꾼당(Malin Kundang)이란 아들과 함께 살고 있었습니다. 만데 루바야는 아들을 지극한 사랑으로 키웠습니다. 말린 꾼당은 어머니의 말을 잘 듣는 부지런하고 착한 아이였습니다.


 늙은 만데 루바야는 자신과 외동아들의 생계를 위해 과자를 구워 팔았습니다. 결코 풍족하지 못한 생활이었지만 두 사람은 끼니를 거르지 않는 것을 감사히 여겼습니다. 한번은 말린이 중한 병에 걸려 몸져누워 목숨마저 위태로웠지만 어머니가 지극정성으로 간병한 끝에 간신히 살아날 수 있었습니다. 만데 루바야는 병석에서 일어난 아들을 더욱 더 사랑했고 아들 역시 그런 어머니를 더욱 공경했죠. 


 그러다가 말린이 성인이 된 어느 날 아이르 마니스 해변의 선창에 큰 배가 들어왔는데 말린은 그 배를 타고 도시로 가고 싶어 어머니의 허락을 구했습니다. 


 “가지 말거라, 말린, 타지에서 너에게 나쁜 일이라도 생길까 두렵구나. 그러지 말고 그냥 여기 어미와 함께 지내자꾸나.” 

 어머니는 슬픈 마음을 감추지 않았지만 말린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걱정 마세요. 아무 일 없을 거에요” 말린은 어머니의 손을 잡고 그렇게 달랬습니다. “어머니, 이런 기회가 또 언제 올 지 몰라요. 이곳은 일년 내내 큰 배가 한 번도 들어오지 않기도 하잖아요. 난 우리 운명이 어떻게 바뀔 수 있는지 알고 싶어요. 어머니, 허락해 주세요.” 


 말린이 뜻을 굽히지 않자 어머니는 어쩔 수 없이 허락하면서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래, 허락하마. 하지만 빨리 돌아오거라. 어미가 널 항상 기다리마.” 

 만데 루바야는 자꾸만 무거워지는 마음을 가까스로 가누며 아들을 보내주기로 했습니다. 어머니는 먹을 음식을 바나나잎으로 정성스럽게 일곱 뭉치를 싸서 여행을 떠나는 말린에게 주었습니다. 

 “반드시 크게 성공해서 어머니를 모시러 올게요. 그때까지 건강히 지내세요.”

 배에 오르기 전 말린은 어머니에게 이렇게 약속했습니다. 말린 꾼당은 그렇게 배를 타고 멀리 타지로 떠났고 어머니는 홀로 고향에 남았습니다.



전설_말린 꾼당 아트 모음.jpg
말린 꾼당 아트 모음

 

 

 아들이 떠난 후 만데 루바야의 하루는 지루하게 느릿느릿 지나갔습니다. 그녀는 아침 저녁으로 바다를 바라보며 ‘아들이 지금은 어디에서 뭘 하고 있을까’ 하며 중얼거리곤 했습니다. 그녀는 아들이 안전하게 여행을 마치고 빨리 돌아오기를 늘 기원했습니다. 그리고 항구에 타지로부터 배가 들어올 때마다 그녀는 선창에 나가 타지에서 온 사람들에게 아들 소식을 물었습니다. 


 “혹시 우리 아들 말린을 보았나요? 그 애가 잘 지내고 있던가요? 언제 돌아온답디까?” 


 하지만 선장이나 선원들 중 대답해 주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말린은 아무 소식도 어머니에게 보내지 않았습니다. 여러 해가 지나도록 아들의 소식을 듣지 못하는 사이 만데 루바야는 더 나이를 먹고 허리도 굽어 버렸습니다. 이젠 더 이상 과자를 구울 수도 없을 만큼 늙어버린 그녀는 생활이 궁핍해졌고 이미 오래전 닳아 누더기가 된 옷을 입고 마을 사람들이 간간이 가져다 주는 남은 음식을 먹으며 살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예전에 말린을 태워갔던 배의 선장이 선창에서 만데 루바야를 보고 반가워하며 좋은 소식을 전해주었습니다. 

 “만데, 소식 들었어요? 당시 아들이 엄청난 부자 귀족의 딸과 결혼을 했어요.” 

 만데 루바야는 그 소식을 듣고 기뻤지만 그날 밤이 깊은 후 다시 잠자리에 들며 긴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말린, 어서 돌아오거라, 아가. 어미는 이미 너무 늙어버렸어. 말린 언제 돌아오느냐…?” 

 그녀는 이제 크게 성공한 아들이 약속한대로 반드시 자신을 데리러 돌아오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습니다. 그녀는 아들의 안전을 기원하면서 언젠가 자신을 찾아봐 줄 것을 기다렸습니다.


 그로부터 1년이 채 지나지 않았을 때 수평선 저 편으로부터 거대하고 아름다운 배 한 척이 다가오는 것이 보였습니다. 선창에 모여든 마을 사람들은 그 화려한 배가 어느 부유한 술탄이나 왕자의 것이라고 생각하며 수군거렸습니다. 사람들은 마치 축제를 하듯 즐거워하며 그 배의 입항을 환영했습니다. 


 만데 루바야도 그 소식을 듣고 기뻐했습니다. 어쩌면 아들이 타고 오는 배일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품었던 것입니다. 


 배가 선창에 닿자 젊은이 한 쌍이 배의 난간에 나타났습니다. 그들이 입은 옷이 햇살을 받아 광채를 띄었습니다. 마을 사람들의 환대에 그들의 얼굴이 환한 미소로 빛났습니다. 만데 루바야도 사람들 사이를 뚫고 배에 가까이 갔다가 배의 난간에 선 젊은 남자를 보고 심장이 멎을 듯 놀랐습니다. 그 젊은이가 자기 아들 말린 꾼당이란 걸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젊은이들이 화려한 사다리를 타고 선창으로 내려오자 주변에 모여든 마을사람들 사이에서 만데 루바야가 누구보다도 빨리 말린에게 다가갔습니다. 그녀는 아들이 어디론가 금방 사라지기라도 할 듯 곧장 말린을 꼭 껴안았습니다.


 “말린, 내 아들아. 내 아들, 맞지?” 기쁨에 겨운 만데가 흐느낌을 참으며 그렇게 말했습니다. “왜 그리 오랫동안 소식을 전해주지 않았니?”


 말린은 누더기를 걸친 노파가 자신을 끌어안자 깜짝 놀랐습니다. 그 노파가 자신의 어머니란 것을 그는 믿을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뭔가 말하기도 전 그의 아름다운 부인이 노파에게 침을 뱉으며 말했습니다. 


 “이 흉측한 노파가 당신 어머니라고? 왜 처음부터 나한테 거짓말을 한 거야? 당신 집안이 우리와 같은 높은 귀족이라고 하지 않았어?” 부인은 혐오스럽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습니다. 


 아내의 말을 듣고 놀란 말린은 매몰차게 어머니를 밀쳤고 만데 루바야는 해변 모래사장에 뒹굴었습니다. “이 여자는 미쳤어! 이 사람은 내 어머니가 아니야!” 말린은 거칠게 자기 어머니를 부인했습니다. 만데 루바야는 아들의 행동을 믿을 수 없어 주저앉은 채 중얼거리듯 말했습니다. 

“말린, 말린아, 내 아들아, 난 내 어미야. 아들아. 왜 나한테 이러느냐? 응?” 


 하지만 말린 꾼당은 그렇게 말하는 어머니에게 눈길 한번 주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행색이 더욱 초라해졌다 해도 그가 아직도 자기 어머니를 알아보지 못할 리 없었습니다. 오랜 타지 생활 속에서 말린 꾼당은 크게 돈을 벌어 지금의 부인을 만났지만 지체 높은 가문 출신인 부인에게 자신의 출신을 차마 사실대로 이야기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는 어머니를 혼자 조용히 고향으로 가서 어머니를 모시고 오려 했지만 도시에 혼자 남기 싫었던 부인이 끝내 여행에 따라왔습니다. 말린 꾼당이 시골 출신이란 걸 아주 몰랐던 건 아니지만 최소한 지방영주의 집안 출신이라 생각했던 부인은 남편 앞에 자신이 어머니라며 나타난 노파의 모습에 실망과 경멸의 표정을 감추지 않았습니다. 


 말린 꾼당 역시 늙고 초라해진 어머니가 허리 굽은 노파가 되어 누더기를 걸치고 나타날 줄은 미처 몰랐습니다. 그는 어머니가 너무나 부끄러웠습니다. 진실을 말할 타이밍도 놓치고 만 말린 꾼당은 차라리 어머니를 인정하지 않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어머니를 모시러 왔던 그가 오히려 고향사람들 앞에서 어머니를 버리기로 선택하고 만 것입니다.


 말린은 자신의 다리를 부여잡는 어머니를 쳐내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미친 여자야! 내 어머니는 당신같이 생기지 않았어. 비천하고 더러운 여자가!” 그 말에 마음이 무너져 내린 만데 루바야는 모랫바닥에 엎드려 울며 가슴 아파했습니다. 


 마을사람들도 그 모습에 경악을 금치 못했습니다. 그들도 그 젊은이가 예전 같은 마을에 살았던 말린 꾼당이란 것을 이미 떠올렸던 것입니다. 말린 꾼당이 부인에게 쩔쩔매며 허겁지겁 서둘러 배에 오르자 배는 급히 닻을 올리고 선착장을 떠났습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마을 사람들은 혀를 끌끌 차며 모두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슬픔에 가득 찬 만데 루바야를 그 누구도 감히 위로할 엄두조차 내지 못했습니다. 만데 루바야는 그렇게 홀로 모래사장에 남겨졌습니다. 


 그녀가 잠시 혼절했다가 정신을 차렸을 때 말린의 배는 이미 해변에서 멀어져 항해해 가고 있었습니다. 아직 수평선 저편에 그 배의 하얀 돛이 보였습니다. 그토록 사랑한 아들이 자신을 어머니라고 인정하지 않은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하늘을 향해 두 팔을 들어올리며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만약 저 젊은이가 내 아들이 아니라면 아까 제가 한 행동을 용서해 주세요. 하지만 저 젊은이가 내 아들 말린 꾼당이 맞다면, 신이시여, 당신의 정의가 무엇인지 알게 해 주세요!” 


 그녀는 이렇게 외치며 통곡했습니다. 그러자 화창한 햇살이 가득 찼던 바다 한 가운데에 순식간에 먹구름이 몰려들어 하늘이 캄캄해지더니 돌풍이 일며 엄청난 폭우가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 갑자기 찾아온 폭풍우에 말린의 배는 가랑잎처럼 갈팡질팡 흔들리다가 번개가 내리 꽂히자 단번에 두 동강이 났고 그 선체와 파편들이 파도를 타고 아이르 마니스 해변으로 밀려왔습니다.


 밤새 포효하던 폭풍우는 다음 날 아침이 되어서야 잠잠해졌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해변에 가까이 밀려온 배의 잔해들이 밤사이 돌로 변해버린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것은 바로 말린이 타고 있던 배였습니다. 그 돌과 바위들 중엔 사람의 모습을 닮은 것도 있었습니다. 그것은 어머니에게 불경한 행동을 한 말린이 저주를 받아 돌로 변한 것이었습니다. 물 속에 반쯤 잠긴 그 바위 사이로 물고기들이 헤엄치고 있었습니다. 그 물고기들은 말린 꾼당의 부인이 저주를 받아 변한 것으로 물고기가 되어서도 남편의 곁을 떠나지 못하게 된 것입니다. 


 지금도 아이르 마니스 해변가의 배와 인간을 닮은 바위 사이로 큰 파도가 칠 때면 어디선가 사람들의 울부짖는 비명소리가 들려오는데 그것은 마치 어머니에게 용서를 빌며 부르짖는 말린 꾼당의 목소리처럼 들리기도 합니다.

 


전설_말린 꾼당 돌.jpg
돌이 된 말린 꾼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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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수마트라 빠당 지역의 전설은 아이르 마니스 해변의 기이한 암석들에 기인합니다. 이 사진은 맨 위 사진 하단부의 모습인데 마치 난파선의 갑판 위에 한 사람이 엎어져 있는 듯한 모습이죠. 이 곳은 밀물 때엔 물 속에 거의 다 잠겼다가 썰물이 되면 모습을 드러냅니다. 


 이 동화를 읽으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빠당 어촌마을의 가난한 말린 꾼당이 큰 도시로 나가 성공해 귀족가문의 영애와 결혼했다는 전개는 그 당시에도 미낭까바우 사람들이 이미 계산과 사업에 능했음을 시사하는 것일까? 모계상속의 전통이 아직까지 전해져 내려오는 미낭까바우 사회에서 어머니에게 불경스럽게 군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친엄마가 자신에게 불효한 친아들을 저주해 죽음에 이르게 하는 것이 당시 사회통념 상 어떻게 받아들여졌을까?" 말린 꾼당은 그냥 물 속으로 가라앉지 않고 왜 굳이 해변으로 밀려와 석상이 되어버린 것일까? 스토리를 너무 무리하게 전개한 것은 아닐까? 사실 어느 나라 동화나 전설 중 무리하지 않은 전개가 없지만.


 빠당을 배경으로 하는 <판데르베익호의 침몰>(함카 1939)에는 외지에 나간 아들을 기다리는 노파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전략)두 아들을 가진 한 여인의 이야기를 들어본 적 있나요? 두 아들 중 하나는 자카르타에 갔고 다른 하나는 메단으로 갔어요.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큰아들이 병원에서 죽었고 둘째 아들도 죽었는데 없어진 머리통은 찾지 못했고 배 속이 텅 빈 시체로 발견되었다는 소식을 듣게 돼요. 그렇지만 그 여인은 외지에 나갔다 돌아오는 사람마다 자기 아들을 만나보았느냐고 물어요. 당신 아들들이 이미 죽었다고 말하면 그녀는 깊은 시름에 잠기지만 눈물을 흘리지는 않아요. 더 이상 흘릴 눈물조차 남지 않았거든요. (‘판데르베익호의 침몰’ P206)


 마치 이 말린 꾼당 전설의 데자뷰처럼 느껴집니다.


 우리가 아는 한국 전래동화들과 서양의 유명 동화들이 사실은 우리에게 일반적으로 알려진 것들보다 훨씬 잔혹한 전개를 가졌다는 것은 이제 공공연한 비밀이지만 어쨌든 대부분 권선징악, 사필귀정의 사상을 따라갑니다. 그중 불효자에 대한 어머니의 저주, 신이 내린 천벌을 테마로 한 동화가 수마트라의 한 어촌 마을 해안 바위들 사이에 숨어 있을 줄은 미처 몰랐습니다. (끝)

    


전설_말린 꾼당 우표.jpg
1998년 발행된 인도네시아 민화 우표 중 말린 꾼당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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