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제목 [무속과 괴담 사이 (28)] 상꾸리앙과 라라 종그랑
보내는분 이메일
받는분 이메일

[무속과 괴담 사이 (28)] 상꾸리앙과 라라 종그랑

기사입력 2022.01.07 21:37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기사내용 프린트
  • 기사내용 메일로 보내기
  • 기사 스크랩
  • 기사 내용 글자 크게
  • 기사 내용 글자 작게

 

 

무속과 괴담 사이 도입.png


 지난 번엔 인드라마유의 건설고사와 찌레본 왕국 공주의 이야기 속에 등장한 위라고라를 소개했는데 이번엔 반둥의 유래와 도사들이 부리는 사역마들 이야기를 해보려 합니다. 

 


1 땅구반빠라후 산.jpg
땅꾸반빠라후 산(Gunung Tangkuban Parahu)

 


 2019년 8월 갑작스럽게 분출했던 반둥 외곽의 땅꾸반빠라후 산(Gunung Tangkuban Parahu)을 다녀온 한국인들이라면 산 이름이 뜻이 ‘뒤집어진 배’란 걸 들었을 겁니다. 저 평범해 보이는 능선에서 인도네시아 사람들은 왜 하필이면 큰 선박이 배를 드러내고 엎어진 모습을 떠올렸을까요? 반둥과 그 일대의 지형이 만들어지던 모습을 상꾸리앙(Sangkuriang)의 전설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상꾸리앙의 전설

 신들의 세계에서 한 쌍의 남신과 여신이 죄를 지어 최고신 상향뚱갈(Sang Hyang Tunggal)의 저주를 받고 지상에 떨어져 여신은 쩰렝 와융향(Celeng Wayung Hyang-또는 와융양)이라는 이름의 멧돼지가 되었고 남신은 시뚜망(Si Tumang)이란 이름의 개가 되었습니다. 


 어느 날 숭깅 뻐르방카라 왕(Raja Sungging Perbangkara)이 사냥을 하다가 숲속에 들어가 소변을 보았는데 정글 토란 잎에 고인 오줌을 멧돼지 와융향이 와서 핥아먹고는 임신하여 얼마 후 숲속에서 예쁜 인간 여자아기를 낳았습니다. 마침 다시 숲을 찾은 왕이 아기를 보고 기이하게 여겨 궁전으로 데려가 다양숨비(Dayang Sumbi)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공주로 삼았습니다


 아름다운 여인으로 자라난 다양숨비의 소문을 들은 이웃 나라의 왕과 왕자들이 청혼을 해왔지만 다양숨비는 모두 거절했습니다. 하지만 왕국들은 전쟁을 벌여서라도 그녀를 차지하려 했으므로 자신이 이 모든 재난을 불러왔다고 생각한 다양숨비는 탄식하며 궁전을 떠나 깊은 산 속에 칩거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개 한 마리가 그녀 주변을 맴돌며 곁을 지켜 주었고 다른 맹수들을 쫓아내기도 했습니다. 벌을 받고 있는 신, 시뚜망이었죠. 


 다양숨비는 어릴 때부터 베틀로 고운 천을 짜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그녀는 산속 오두막에서도 틈나는 대로 궁에서 가져다준 베틀로 천을 짜곤 했는데 어느 날 또락(torak-북)을 실수로 떨어뜨리고 말았습니다. 또락은 비탈을 타고 산 밑 어디론가 굴러가 도저히 찾을 수 없었습니다. 다양숨비는 크게 낙담하면서 누구라도 북을 찾아 준다면, 그가 남자라면 그의 아내가 되고 여자라면 자매가 되겠다고 신에게 맹세했습니다. 그런데 그 북을 찾아 물고 다양숨비에게 달려온 것은 시뚜망이었습니다. 다양숨비는 한동안 고민했지만 곧 신에게 한 맹세대로 시뚜망을 집안에 들여 둘만의 혼례를 올린 후 시뚜망을 남편으로 섬겼습니다. 

 


1 북.jpg
북(torak)

 

 

 그 사실을 알게 된 왕궁에서는 이를 부끄럽게 여겨 더 이상 다양숨비를 찾지 않고 그대로 숲속에 유폐해 버렸습니다. 오직 시뚜망만이 충직하게 그녀의 곁을 지킬 뿐이었죠. 그러다가 보름달이 뜬 어느 날 시뚜망은 원래의 잘생긴 신의 모습으로 현신해 다양숨비와 하룻밤을 보냈습니다. 그렇게 임신한 다양숨비는 아들을 낳아 상꾸리앙(Sangkuriang)이란 이름을 지어주었습니다. 상꾸리앙은 건강하게 커갔고 보통 어른보다 몇 배나 힘이 셌습니다. 다양숨비는 커가는 아들 모습에 가슴 벅찼지만 한편으로는 아들에게서 언뜻 엿보이곤 하는 외골수 성격을 내심 걱정스러워했습니다. 


 어느 날 다양숨비는 왠지 모르게 사슴 간을 먹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습니다. 그래서 상꾸리앙에게 사슴을 사냥해 오라고 시켰죠. 언제나처럼 시뚜망이 그림자처럼 상꾸리앙을 따라붙었습니다. 하지만 그날따라 숲에서 짐승 한 마리 눈에 띄지 않았는데 갑자기 살찐 멧돼지 한 마리가 달려가는 것이 보였습니다. 그 멧돼지는 와융향이었어요. 상꾸리앙은 사슴이 없다면 맷돼지라도 잡자고 생각해 시뚜망에서 멧돼지를 몰라고 소리쳤지만 시뚜망은 와융향이 상꾸리앙의 외할머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 명령을 듣지 않았습니다. 와융향은 오래 세월 여전히 신성을 자각하지 못하고 여전히 멧돼지로서 살아가고 있었지만 시뚜망은 다양숨비를 만나며 마음의 눈을 뜬 것입니다.


 하지만 상꾸리앙은 시뚜망이 멧돼지를 놓쳤다며 크게 화를 내다가 급기야 활로 시뚜망을 쏴버렸습니다. 어릴 때부터 알게 모르게 상꾸리앙을 보호해 주었던 시뚜망은 자기 아들의 화살에 꿰뚫려 그 자리에서 죽고 말았습니다. 


1 상꾸리앙 이미지.jpg
어린이용 상꾸리앙 동화에서 시뚜망은 작은 개로 그려지지만 실제로는 송아지 만했을 것

 


 상꾸리앙은 개의 배를 갈라 간을 꺼냈습니다. 사슴 간은 아니지만 어머니를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던 것이죠. 그것이 시뚜망의 간인 줄 꿈에도 모르던 다양숨비는 상꾸리앙 가져와 손수 요리까지 한 간요리를 맛있게 먹었습니다. 하지만 시뚜망이 보이지 않는 것을 이상하게 여기고 상꾸리앙에게 캐묻다가 자신이 아까 먹은 것이 남편 시뚜망의 간이란 것을 알게 된 다양숨비는 격노해 이성을 잃었습니다. 그 순간 와융향에게서 물려받은 다양숨비의 신성이 발동했습니다. 어릴 때부터 늑대와 싸우거나 벼랑에서 떨어져도 생채기 하나 나지 않았던 상꾸리앙에게 국자를 휘둘러 정수리를 깨버린 것입니다. 


 상꾸리앙은 생전 처음 죽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피가 철철 흐르는 머리의 상처를 누르고 급히 집에서 도망쳐 나와 정처없이 숲을 가로질러 달렸습니다. 얼마 후 다양숨비는 이성을 되찾고 아들에게 상처를 낸 것을 크게 후회하며 상꾸리앙을 찾아 나섰지만 아무리 목놓아 이름을 불러도 상꾸리앙은 이미 그 소리가 들리지 않는 먼 곳에서 아직도 여전히 달리고 또 달리고 있었습니다. 다양숨비는 좌절하며 최고신 상향뚱갈에게 언젠가 아들과 재회하게 해달라고 빌었고 이 모든 것이 자신이 사슴 간을 원했기 때문이라 탓하며 풀과 채소만을 먹는 고행을 시작했습니다.


 상꾸리앙은 그때부터 세상을 떠돌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많은 선생들을 만나 지식과 도술을 배워 익혔고 몇 년 지나지 않아 스승조차 아득히 능가하는 강한 청년도사로 성장했습니다. 그렇게 끝없이 동쪽으로 향하며 악한 귀신과 무서운 괴물들을 물리쳐 도탄에 빠진 사람들을 돕던 그는 어느날 다시 서쪽으로 방향을 돌려 걷다가 얼마 후 어머니 다양숨비가 살고 있는 땅에 이르렀습니다.


 하지만 그는 어머니를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많은 해가 지났지만 다양숨비는 전혀 늙지 않고 오히려 왕국들 간에 전쟁까지 일으키게 했던 처녀 시절 절세미녀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한편 다양숨비 역시 건장한 청년도사가 자기 아들이란 걸 알아보지 못하고 서로 깊은 매력에 끌려 급기야 사랑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어느 날 자기에게 등을 기댄 상꾸리앙의 머리를 빗겨주던 다양숨비는 상꾸리앙의 정수리에서 오래전 자신이 국자를 휘둘러 냈던 상처의 흉터를 발견하고 그가 자기 아들임을 비로소 깨달았습니다. 그들은 이루어질 수 없는, 아니 이루어져서는 안 되는 사랑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다양숨비에게서 그 사실을 들은 상꾸리앙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이미 불붙어 버린 사랑의 마음이 식지 않은 것이죠. 상꾸리앙의 외골수 청혼을 다양숨비가 결사적으로 반대했지만 뜻을 꺾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다양숨비는 마지막으로 상꾸리앙이 도저히 해낼 수 없는 불가능한 일들을 혼인의 조건으로 달았습니다. 하룻밤 사이 찌타룸 강을 막아 커다란 호수를 만들고 그 위에 띄울 배를 지으라는 것이었죠. 하지만 난색을 보일 줄 알았던 상꾸리앙이 흔쾌히 그 조건에 응했습니다.


 상꾸리앙은 이미 천기를 읽으며 정령과 마물들을 부리는 술법을 자유자재로 사용하는 경지에 올라 있었던 것입니다. 그는 배를 만들기 위해 동쪽에서 거대한 나무를 잘라왔는데 그 베고 남은 그루터기가 오늘날 부낏 뚱굴(Bukit Tunggul)이라는 산이 되었고 거기서 자라난 가지가 서쪽으로 뻗어가 부랑랑산(Gunung Burangrang)이 되었습니다. 그는 땅의 정령과 숲속의 마물들을 불러내 댐을 만들어 물을 채우자 상꾸리앙이 지은 배가 서서히 떠오르기 시작했습니다. 다양숨비가 요구한 것들이 거의 충족되어 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다양숨비는 상꾸리앙이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하도록 최고신 상향뚱갈에게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리고는 자신이 짠 한 폭의 새하얀 천을 동쪽 산꼭대기에 둘러 휘날리게 해 마치 새벽이 밝아오며 햇살이 비쳐 나오는 것처럼 보이게 했고 다른 한편으로는 절구에 공이질을 해 마치 아침밥을 하려고 쌓을 찧는 것 같은 소리를 냈습니다. 그러자 상꾸리앙을 돕던 모든 구리앙(guriang)들은 날이 밝은 것으로 착각해 급히 땅 속으로 돌아갔고 그 바람에 댐을 짓는 일을 결국 마무리를 짓지 못했습니다. 


 속임수에 당한 것을 안 상꾸리앙은 좌절과 분노를 주체하지 못해 이미 다 만들어 놓은 배를 발로 걷어찼는데 북쪽으로 날아가 엎어져 버린 그 배가 오늘날 땅꾸반빠라후 산(Gunung Tangkuban Perahu)이 되었습니다. 그는 거의 다 만들어진 댐의 서쪽도 발로 차 무너뜨렸는데 그렇게 생긴 동굴과 계곡으로 쏟아진 물이 오늘날 상향 띠꼬로(Sanghyang Tikoro: 상향뚱갈의 목구멍) 계곡 동굴이 되었고 찌타룸 강을 막았던 물막을 동쪽으로 집어 던진 것이 오늘날 망라양 산(Gunung Manglayang)이 되었습니다. 그 지역에 가득 찼던 물이 모두 빠져나간 자리에 오늘날 반둥 시가 들어서 있고요.

        


1 상꾸리앙 이미지1.jpg
어린이 만화와 동화에서 수없이 등장한, 상꾸리앙이 배를 걷어차는 이미지 모음

 

 

 하지만 상꾸리앙은 아직도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다양숨비는 계속 도망쳐야 했는데 뿌뜨리 산 인근에서 상꾸리앙에게 꼼짝없이 잡히게 된 다양숨비가 다시 상향뚱갈에게 간절히 기원하자 신은 다양숨비를 한 송이 작시 꽃(bunga jaksi)으로 변하게 했습니다. 그리스-로마 신화에서 사랑에 빠진 아폴론을 피해 달아나던 강의 님프 다프네가 잡히기 직전 아버지인 강의 신 페네이오스에게 부탁해 월계수로 변한 사건이 떠오르는 장면이죠.


 그제서야 상꾸리앙은 더 이상은 어쩔 수 없게 되었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실감했습니다. 그는 우중버룽(Ujung Berung)이라는 곳에 이르러 영들의 세계 응아히양(ngahiyang)에 들어서며 이 세상에서 홀연히 그 모습을 감추고 말았습니다.


 상꾸리앙 전설의 대강은 이렇습니다. 

 그런데 마물들의 도움을 받아 하룻밤에 만들어낸 거대한 공사가 막판에 방해를 받아 결국 끝내지 못하는 구도는 굉장히 낯이 익습니다. 중부자바 족자 지역에서 전해져 내려오는 라라 종그랑(Lara Djonggran)의 전설에도 비슷한 장면이 등장하죠. 

 

 

라라 종그랑의 전설

 라라 종그랑의 전설은 고대 자바의 두 왕국, 뼁깅(Pengging)과 보꼬(Boko)에서 유래합니다. 보꼬 왕국의 공주로 등장하는 ‘라라 종그랑’은 그 ‘늘씬한 미녀’란 뜻이므로 정말 공주의 이름이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한편 보꼬 왕국의 잔혹한 험상궂은 군주 쁘라부 보꼬(Prabu Boko)는 국민들의 원성에도 불구하고 세금을 크게 올리면서 군대를 키워 뼁깅 왕국을 침략하려 합니다. 강성한 뼁깅 왕국의 군주 쁘라부 모요의 아들 반둥 왕자는(공교롭게 여기서도 ‘반둥’ 등장) 높은 스승으로부터 사사를 하고 자신도 끊임없이 수련하여 초월적이라 할 만한 강력한 도력을 손에 넣어 반둥 본도워소(Bondowoso) 왕자라 불리고 있었죠. 결국 보꼬가 뼁깅을 침공해 두 나라가 본격적으로 맞붙지만 전쟁이 길어지면서 양측 모두 지쳐가던 즈음 반둥 왕자가 쁘라부 보꼬의 목을 베고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습니다. 


 한편, 남은 군대를 거두어 퇴각한 재상 빠띠 구뽈로(Pati Gupulo)는 보꼬 왕궁에 돌아와 라라 종그랑 공주에게 부왕의 전사를 알립니다. 하지만 공주가 아버지를 잃은 슬픔을 채 추스리기도 전, 빠띠 구뿔로를 뒤쫓아온 뼁깅의 군대가 마침내 보꼬의 왕궁마저 함락시키죠. 왕궁에 입성한 반둥 왕자를 자신을 서릿발 같은 차가움으로 대하며 부왕의 죽음을 애도하는 공주에게 매혹됩니다. 그는 보꼬 왕궁에서 얼마간의 시간을 보내다가 마침내 라라 종그랑에게 청혼했습니다. 


 그러자 반둥왕자와의 혼인이 죽는 것보다도 싫었던 공주는 다양숨비가 상꾸리앙에게 그랬던 것처럼 불가능한 일을 혼인의 조건으로 내세웁니다. 첫 번째 조건은 하루밤 사이에 잘라뚠다(Jalatunda) 우물을 파는 것이었습니다. 빈둥 왕자는 초능력을 발휘해 순식간에 우물을 팠습니다. 그가 공주에게 우물을 보여줄 때 공주는 왕자를 밀어 우물 속에 빠뜨렸고 곧바로 빠디 구뽈로 재상이 나타나 우물에 바위를 채워 넣어 왕자를 생매장했죠. 반둥 왕자는 천신만고 끝에 우물에서 탈출했지만 공주를 사랑하는 마음에 이 사건을 문제삼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공주는 전혀 감동받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더욱 이를 갈며 복수심을 불태울 뿐이었죠. 


라라 종그랑 공주의 두 번째 조건은 하루 밤 만에 천 개의 신전을 세우는 것이었습니다. 이를 위해 반둥 왕자는 명상에 들어가 악마들을 지상에 소환했습니다. 신전을 짓기 위한 사역마들이었죠. 악마들은 날이 밝기 전까지 999개의 신전을 세웠고 이제 마지막 한 개 만을 남겨 놓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공주는 동쪽 산 너머로 사람들을 보내 불을 밝혀 마치 날이 밝아오는 것처럼 보이게 했고 시녀들을 시켜 쌀을 찧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사람들이 새벽마다 밥을 짓기 위해 하는 행동이었죠. 그러자 이제 곧 해가 떠오를 거라고 착각하게 된 악마들은 마지막 신전 한 개를 완성하지 못하고 땅속으로 돌아가 버리고 말았습니다. 속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왕자는 격분하여 라라 종그랑에게 저주를 걸어 석상으로 만들어 버리고 맙니다.

 


1 세우신전.jpg
반둥 왕자가 라라 종그랑을 위해 신전들을 세운 세우신전

 

 

 반둥왕자가 악마들을 부려 만들었다는 천 개의 탑, 세우신전(Candi Sewu)은 쁘람바난 힌두 사원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습니다. 세우(sewu)란 자바어로 숫자 천(1000)을 뜻합니다.


 한편 상꾸리앙이 댐과 배를 짓는데 부린 귀신들은 구리앙이라는 놈들이었는데 상꾸리앙이란 이름도 귀신이란 뜻의 구리앙(guriang)에 3인칭 존칭 상(sang)을 붙인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즉 ‘상꾸리앙’이란 본래 귀신들을 부리는 자’ 또는 무당, 두꾼의 의미였을 것 같습니다. 상꾸리앙 전설에 존속살해와 근친상간 등 19금 콘텐츠가 많이 포함된 것은 그래서일까요?

 


1 구리앙.jpg
구리앙

 


 사실 이 두 개의 전설에서 전남 화순 운주사 천불천탑의 고사를 떠올린 사람들도 있을 겁니다. 하룻밤에 천 개의 탑과 천 개의 불상을 세우면 와불이 일어나고 미륵이 내려와 새로운 세상이 열리게 되는데 일이 힘들었던 노동자가 새벽이 밝기 전 수탉 소리를 내는 바람에 미션이 실패했다는 이야기 말입니다. 어쩌면 그 노동자가 세상의 종말을 막은 것인지도 모릅니다. 다양숨비와 라라 종그랑이 귀신과 마물의 도움을 받은 상꾸리앙과 반둥 왕자의 뜻을 끝내 좌절시키고 만 것처럼요.


 이런 거대한 사역의 실패담이 한국과 인도네시아는 물론 전 세계 곳곳에서 발견되는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요? (끝)


♣배동선 작가는 인도네시아의 동포 향토작가. 현지 역사, 문화에 주목하며 저서  <수카르노와 인도네시아 현대사>와 공동번역서 <막스 하벨라르>를 출간했다.

 

 

<저작권자ⓒ데일리인도네시아 & www.dailyindonesia.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
 
 
 
 
 
회사소개 | 광고안내 | 제휴·광고문의 | 기사제보 | 다이렉트결제 | 고객센터 | 저작권정책 | 회원약관 | 개인정보취급방침 | 이메일주소무단수집거부 | RSS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