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제목 [무속과 괴담 사이 (22)] 흉가와 도시괴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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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속과 괴담 사이 (22)] 흉가와 도시괴담

기사입력 2021.10.14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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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어디나 마찬가지로 인도네시아도 귀신이 출몰하는 건물이나 장소가 곳곳에 있는데 자카르타에도 그런 쪽으로 유명한 곳들이 여럿 있습니다. 


오래전 살해당한 일가족 유령이 출몰한다는 남부 자카르타 뽄독인다(Pondok Indah)의 어느 저택, 엘리베이터가 서서히 움직인 이유가 엄청난 숫자의 귀신들이 위에서 짓눌렀기 때문이라던. 가똣 수브로토 거리의 머나라 사이다 건물(Wisma Menara Saidah), 롯데쇼핑애비뉴와 꼬따 카사블랑카 몰(Mall Kota Casablanca) 사이에 위치한, 빨간 옷의 꾼띨아낙이 출몰하는 카사블랑카 터널, 목 잘린 신부 유령이 목격된 저룩 뿌룻 공동묘지(TPU Jeruk Purut) 등은 나름 호러 애호가들의 성지로 유명합니다. 


아직도 의사와 환자들로 분주하게 돌아가는 중부 자카르타의 유서 깊은 찝또 망운꾸수모 병원(RS Cipto Mangunkusumo)에도 밤마다 하체가 망가져 피투성이 된 간호사 귀신이 바닥을 기어 다닌다는 도시 괴담이 깃들어 있고 1730년 자카르타 구도심에 지어진 또꼬 메라(Toko Merah)라는 빨간벽돌 건물에서 죽어 나간 소녀들의 망령이 지나는 사람들을 홀린다고도 합니다. 세간에 떠도는 자카르타 도시 괴담은 책을 몇 권 쓸 정도로 넘쳐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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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위부터 <저룩뿌룻 공동묘지의 유령>, 또꼬메라, <뽄독인다 저택>, <카사블랑카의 빨간 유령>, 머나라 사이다 건물, <배로 기는 간호사>

 


한때는 끌라빠가딩 소재 빨라디안 아파트에서도 귀신소동이 있었습니다. 당시 머나라 뚜쥬(Menara 7)라는 이름이었는데 완공을 얼마 남기지 않았던 1998년 동남아 외환위기로 환율이 역변하면서 많은 회사들이 도산했고 이 아파트를 건축하던 시행사도 공사를 멈출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프로젝트를 인수한 다른 회사가 아파트 이름을 ‘빨라디안 파크’로 바꾸고 공사를 다시 시작한 것이 그로부터 6년쯤 지난 2004년이었고 귀신이 목격된 것은 관련 허가를 모두 마치고 입주가 시작된 2006년경이었습니다.


원래 이런 얘기가 있습니다. 집의 형태를 한 곳에 사람이 오래동안 살지 않으면 사람 아닌 다른 것이 들어가 살게 된다고요. 1998년 당시 일곱 개 타워들 중 두 개는 외장공사까지 거의 마치고 내장공사를 시작하던 단계였는데 그로부터 8년 후에야 입주가 시작되었으니 그 사이 다른 것들이 들어와 살았던 모양입니다. 하지만 벌써 15년도 더 된 옛날 이야기이고 빨라디안 아파트의 귀신 이야기가 더 이상 들리지 않은 지도 이미 오래 되었습니다. 그동안 임대료도 내지 않고 들어와 살던 사람 아닌 것들의 퇴거가 완료된 것입니다.


반둥의 흉가들

자카르타에서 차량으로 세 시간이면 주파할 수 있는 반둥에도 루마 앰뷸런스(Rumah Ambulance), 루마 끈땅(Rumah Kentang), 루마 구리타(Rumah Gurita) 등으로 이름 붙은, 괴담으로 유명한 곳들이 있습니다.


아무도 살지 않고 방치된 듯한 집에 오래 동안 쓰지 않은 듯 커버로 덮어놓은 앰뷸란스가 매일 그 위치를 조금씩 바꾼다는 것을 알게 된 사람들의 수군거림에서 시작된 반둥 바후렉사(Bahureksa) 지역 루마 앰뷸런스(구급자가 있는 집)의 도시 괴담은 급기야 운전사도 없이 반둥시내의 밤길를 달리는 신들린 구급차, 또는 미친 듯 간드러진 웃음을 웃는 꾼띨아낙을 태운 구급차 같은 식의 이야기를 양산했습니다. 하지만 그 집에 오랫동안 주차되어 있던 그 구급차는 널리 알려져 버린 이 도시전설을 뒤로 한 채 이제 보고르의 다른 집으로 옮겨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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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유령 앰뷸런스>(왼쪽)과 영화 <감자의 집> 포스터

 


‘감자의 집’이란 뜻의 루마 끈땅은 영화로도 만들어졌는데 감자가 계단을 따라 쏟아져 내리는 포스터만 봐서는 도대체 어떤 포인트에서 무서워해야 할지 알 길이 없습니다. 괴담의 진원지로 알려진 반둥의 고택은 식민지 시대 네덜란드인이 살던 곳으로 자주 파티가 벌어졌다고 합니다. 현지인 하인들은 덩달아 늘 바쁘고 고단한 매일을 보내야 했죠. 어느 날 더 많은 사람들이 초대된 저녁 만찬을 준비하면서 하인들이 총동원되었는데 정원사와 유모까지 부엌일을 도왔습니다. 열댓 살부터 젖먹이까지 주인집 아이들 여러 명에게 하루 종일 시달린 유모는 부엌일을 하면서 꾸벅꾸벅 졸다가 화들짝 깨곤 했습니다. 그때마다, 자바인들의 전통대로 가방을 매듯 가슴을 가로질러 매단 천 안에 넣고 품에 안은 주인집 젖먹이 아기가 아무것도 모르고 잠들어 있는 걸 보고 가슴을 쓸어내리곤 했습니다. 그러다가 또 한 번 깜빡 졸다가 정신을 차렸을 때 아기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유모는 마침 커다란 솥에 감자를 삶고 있었는데 펄펄 끓는 솥 안에 새빨갛게 익은 아기의 손이 삐죽이 나와 있었습니다.


죽은 아기가 유모 자신의 아들이었다는 버전도 있습니다. 그후 그 집 앞에 서너 살쯤 되어 보이는 예쁘장한 유럽 아이가 혼자 나와 있다가 집안으로 달려들어가는 모습이 보이곤 했는데 그 집은 이미 주인이 바뀌고 다른 용도로 쓰이고 있어 유럽 아이가 살고 있을 리 없었습니다. 사람들은 그게 당시 감자 솥에 빠진 아기의 유령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저녁 무렵 그 근처를 지날 때면 어디선가 감자를 삶는 구수한 냄새가 은은히 흘러 퇴근길 사람들이 시장기를 느끼곤 했는데 루마 끈땅 괴담을 아는 사람들은 그 냄새와 함께 숨 넘어갈 듯한 아기의 울음소리가 함께 들리는 듯해 섬뜩했을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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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카페로 개조된 후 완전 유명해진 루마끈땅

 


하지만 뭐니뭐니 해도 반둥에서 가장 유명한 흉가는 ‘루마 구리타’(Rumah Gurita)라는 곳입니다. ‘문어의 집’이란 뜻이죠. 


평범해 보이지만 범상치 않은 전설과 괴담이 숨어 있는 집들과 달리 루마 구리타는 그 모습부터 기괴하기 짝이 없습니다. 눈을 씻고 둘러봐도 바다나 해변이 전혀 보이지 내륙 깊숙한 반둥이라는 대도시 한 가운데에서 거대한 검은 문어가 옥상을 타고 오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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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 검은 문어는 조형물입니다. 하지만 집을 지을 당시 집주인은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문어 조형물을 옥상에 올려놓았을까요?


이 집은 1980년대에 지어졌습니다. 자카르타에서 주로 생활하는 집주인은 휴일이나 명절이면 규칙적으로 반둥집에 돌아온다고 하는데 그런 설명만 들으면 그가 이 집을 별장처럼 사용하는 것 같습니다. 옥상에 문어 조형물을 올려놓은 것도 원래 집주인이 해양 테마를 좋아하기 때문이랍니다. 살아있는 듯 역동적인 꿈틀거림이 느껴질 정도로 실감나는 이 검정색 문어는 충격적인 섬세한 디테일과 거대한 사이즈를 가지고 있어 건축업자가 어차피 집 지으면서 덤으로 대충 만들어 놓은 게 아니라 문어의 특징과 움직임을 연구해 충분히 이해한 예술가의 정교한 작품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그리 특별할 것도 없는 2층집 옥상에 출현해 마치 인간세계를 공격하려는 듯 생동감 넘치는 퀄리티의 검은 문어는 어딘가 묘한 위화감을 자아냅니다. 보통 종교와 민족에 따라 복을 가져오고 재앙을 막아주는 신상이나 십이지 같은 것이 아니라 왜 문어여야 했을까요? 해양 테마를 좋아한다면 얼마든지 더 아름다운 해양동물들도 있고 선박이나 잠수함을 본뜬 조형물, 또는 포세이돈이나 니롤로키둘 같은 해양신의 형상을 차용할 수도 있었을 텐데 말이죠. 


그래서 온갖 추측이 난무하기 시작합니다.

한동안 이 집이 사탄의 교회라는 소문이 돌았습니다. 그 소문의 이유는 이 집에 666이란 숫자가 있기 때문입니다. 도저히 그 생각을 추측할 수 없는 집주인은 세 개의 6을 각각 다른 글씨체로 만들어 설치해 놓았습니다. 세간에 악마의 숫자로 알려진 666을 품은 이 집을 사람들이 사탄숭배의 장소로 의심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입니다.


심지어 예전에 이 사탄의 교회를 다녔다는 사람이 나타나 이 집에 사탄숭배자들이 모여들어 섹스를 동반한 모종의 의식을 치른다고 폭로하기도 했습니다. 그 광란의 섹스의식에 참여하려면 손가락을 바늘로 찔러 짜낸 피를 제출해야 하고 사탄 숭배에 앞서 낙태 클리닉에서 가져온 아기의 살과 태반을 먹고 그 피를 마셔야 한다는 소문까지 퍼졌습니다. 


하지만 이런 류의 사건이 늘 그렇게 흘러가듯, 그런 혐의나 주장은 어느 것 하나 입증되지 않았습니다. 사탄의 교회라는 혐의에는 코웃음을 치던 경찰이 광란의 섹스파티가 이교도의 이단의식으로 진행된다는 소문에 결국 현장조사를 나섰지만 관련 증거 역시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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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는 디테일

 

이곳이 사탄의 교회라고 소문이 나면서 TV에도 나오자 급기야 그동안 침묵하던 프란스 할리마완이란 이름의 집주인이 TV 인터뷰에 나와 모든 의혹들에 대해 설명하면서 불쾌감을 감추지 않았습니다. 자신은 예술 애호가일 뿐이고 집이란 지은 사람의 가치관과 인생을 반영하는 것이니 집이 좀 독특하다고 해서 뭐가 문제가 되느냐는 입장을 피력했죠. 하나도 틀린 말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기자들이 취재하던 과정에서 이 집이 몇 채의 이웃 건물들에 에워싸여져 있는 형태라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이 집에 들어가려면 도로에서 곧장 들어가지 못하고 바로 이웃인 6번지 건물을 통해서만 접근할 수 있는 구조라는 것도요. 이웃집을 통해 자기 집으로 들어가는 구조는 도대체 집주인의 어떤 가치관을 반영한 것일까요? 당시 취재진은 주택 관리인에게 막혀 건물 내부를 취재하지 못했고 지금까지도 이 ‘문어의 집’ 내부에 들어가거나 촬영에 성공한 사람은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인근 주민들은 저 문어가 단지 단순한 장식품이라고도 하고 물을 모아두는 저수조라고도 합니다. 또 어떤 이들은 이웃이나 지나는 사람들을 겁주려는 집주인의 못된 취미를 반영할 뿐이라고 혀를 차기도 하죠. 실제로 바로 옆집 지붕에 저런 문어가 매달려 있다면 분명 위협적일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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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둥 루마 구리타 실물(왼쪽)과 <루마구리타> 영화 속에 구현된 문어 조형물

 

루마 구리타가 널리 알려지자 2014년 동명의 영화 <루마 구리타>가 개봉되기도 했습니다. 영안을 가진 셀리나(Selina)라는 젊은 여인이 실연을 겪은 후 반둥으로 이사해 루마 구리타에서 겪게 되는 사건들을 그렸지만 흥행에는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원본을 흉내낸 영화 속 문어 조형물이 원본에 비해 너무 조악하다는 점입니다. 그만큼 반둥의 검은 문어가 예술적 경지에 올라 있다는 반증이었죠. 그래서 저 문어가 정말 저수조로 사용되는 구조물이라면 그것은 고려청자를 요강으로 쓰는 것에 비견될 만한 낭비일 것입니다.


사탄의 교회나 666, 또는 광란의 난교파티 같은 것은 분명 인도네시아 고유의 무속과는 거리가 멀어 보입니다. 물론 중부자바 스라겐(Sragen) 지역 꺼무꾸스 산(Geudng Kemukus)에 부자가 되려는 사람들이 몰려와 행하는 재물주술은 배우자가 아닌 상대방과 일곱 번 육체관계를 맺어야 한다는 조건이 붙어 있어 한때 밤이 내리면 꺼무꾸스 산속 여기저기에 남녀들이 뒤엉켜 있곤 했다고 하나 ‘광란의 난교파티’라고 하긴 어려운 것이죠. 


자카르타를 조금만 벗어나면 반둥 루마 끈땅처럼 네덜란드인들의 유령들도 나타나고 루마 구리타처럼 사탄의 교회가 등장하는 등 괴담에서조차 유럽과 식민지시대의 정취가 물씬 느껴집니다. 예전에 다루었던 스마랑 기차박물관 라왕 세우(Lawang Sewu)에도 유럽 여인의 유령이 등장하죠.


태평양전쟁 당시 일본군들이 주둔했던 병영 주변에선 목이 잘린 일본군들의 유령, 일본도를 휘두르는 일본군 장교 유령의 목격담들이 아직도 나오고 있습니다. 인도네시아가 겪어온 근대사가 도시 괴담 속에 고스란히 녹아든 것입니다.


그래서 어쩌면 인도네시아 도시 괴담에 한국인 유령이 등장하는 것도 다만 시간문제일지 모릅니다. (끝)


♣배동선 작가는 인도네시아의 동포 향토작가. 현지 역사, 문화에 주목하며 저서  <수카르노와 인도네시아 현대사>와 공동번역서 <막스 하벨라르>를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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