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시
이 철
어제는 사랑이 그리워
눈길을 걷다가
눈으로 꽃을 만들고
눈으로 사람을 만들다,
눈사람이 되어
돌아왔다
오늘은 사람이 그리워 시를 쓴다
사람 사는 세상에
사람이 그리워
눈물로 시를 쓰고
눈으로 덮어주었다
푸른사상 시선 132 『단풍 콩잎 가족』 푸른사상, 2020
“사람 사는 세상에/사람이 그리워//눈물로 시를 쓰고/눈으로 덮어주었다”
귀뚜리들이 앞다투어 울음을 들려주는 가을밤입니다. 흐린 날씨라서 낮부터 갈바람의 찬 기운이 느껴집니다. 이 밤에도 벚나무들은 다소곳이 잎을 떨구고, 구름 위로는 이지러진 달이 희뿌연 윤곽을 남기고 있네요. 추석에 모처럼 가족들이 모였다가 떠나고 난 뒤, 웃음 가득하던 공간에는 벌써 그리움이 커가고 있는 밤입니다.
모두가 코로나19 팬데믹을 조속히 극복할 수 있게 되기를 간절히 바라며, 모든 생명에게 평화와 행복이 가득하기를 기원합니다.
Chet Baker의 ‘The Touch of Your Lips’입니다.
김상균 약력
김상균 시인은 서울 출생으로 부산대학교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1985년 무크지 <가락>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으며, 시집으로 <자작나무, 눈, 프로스트>와 <깊은 기억> 등이 있다. 대학 강사와 고등학교 교사를 거쳐 KAIST 부설 한국과학영재학교에서 교감으로 퇴임하였다. 다수의 사진전을 개최한 바 있는 사진작가이며, 일찍부터 영화와 음악에 대한 시와 글을 써온 예술 애호가이자, 70년대 후반부터 배낭여행을 해온 여행 전문가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