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제목 [무속과 괴담 사이 (19)] 밤하늘을 떠도는 도깨비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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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속과 괴담 사이 (19)] 밤하늘을 떠도는 도깨비불

기사입력 2021.09.02 1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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끄마망

끄마망(Kemamang)이란 존재가 있습니다.

끄마망은 도깨비불처럼 허공을 떠도는데 대개는 저 멀리 보인 일렁이는 작은 불꽃이 어느새 숲과 마을의 경계선까지 다가와 이 나무가지에서 저 나무가지로 슬며시 옮겨가는 식으로 이동하지만 눈이 마주치면(끄마망에게 눈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저 멀리 있던 불덩어리가 눈 깜빡할 사이에 코 앞까지 쇄도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인도네시아 사회가 발전하면서 현지인들 귀에도 사뭇 생소하게 된 끄마망은 지금 70-80대가 된 노인들의 어린 시절엔 논이나 늪지대에 자주 출몰했다고 합니다. 당시 사람들은 끄마망의 출현을 자연재해 같은 재앙의 전조로 받아들였습니다. 넓은 논 건너편 산 중턱에 수많은 불덩어리들이 나타나 마을을 향해 내려오는 걸 본 사람들이 두려움에 떤 것은 당연합니다. 그게 끄마망 귀신들의 무리이든, 마을을 약탈하러 내려오는 산도둑들의 횃불이든 말입니다. 사실 끄마망은 사람들 마음 속 그런 두려움에서 싹 튼 마물인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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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 불귀신 아트 모음

 

끄마망으로 인해 집에 불이 나거나 화상을 입었다는 소식은 접한 적은 없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끄마망을 두려워했던 건 그 일렁이는 불꽃보다 바라볼수록 점점 더 커져 마침내 걷잡을 수 없이 거대해져 짓누르는 특성 때문입니다. 이건 아이러니컬하게도 불꽃을 내뿜는 끄마망이 어둠 속의 한국 귀신 어둑시니와 공유하고 있는 속성입니다. 어둑시니가 어두운 방구석이나 길모퉁이에 어렴풋이 드러낸 모습을 사람이 바라보면 바라볼수록 점점 더 커져 그 모습을 올려다보는 사람을 압도하고 짓눌러 질식시킵니다. 인도네시아 순다 지역의 끼치위스(Kiciwis)라는 마물도 평소 고양이 모습을 하고 있다가 늦은 밤 한적한 거리에서 자신을 바라보는 사람을 당장이라도 잡아먹을 듯 집채 만한 크기로 커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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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둑시니

 

어둑시니는 보는 이가 용기를 내서 내려다보면 점점 작아지다가 결국은 소멸해버립니다. 하지만 끄마망과 조우했다는 사람들의 에피소드는 대개 마주친 순간 정신없이 달아난다는 결말로 끝나기 때문에 과연 작아지게도 할 수 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동부자바의 보조네고로(Bojonegoro)에는 아예 마을이름이 ‘끄마망’이라는 곳이 있습니다. 전엔 시티 레조 마을(Desa Siti Rejo)이었는데 그곳에 끄마망이 자주 출몰해 결국 마을 이름도 그렇게 불리게 되었습니다. 


그 마을 남쪽 논과 개울에 게나 개구리를 잡으러 나온 아이들 같은 귀신들이 밤마다 출몰했다고 합니다. 보통 아이들과 다른 점은 그 아이들 머리에서 불길이 솟아나와 마치 횃불처럼 타올랐다는 것입니다.

 

이런 소문을 듣고서 인근 파출소 경찰관들과 면사무소 공무원들도 찾아오곤 했는데 얘기 듣던 대로 저녁 마그립 시간이 지나자 아이들 몇몇이 추수를 끝낸 빈 논으로 놀러 나왔습니다. 보통 아이들과 다를 바 없는 모습에 끄마망은 헛소문이었다고 생각하던 경찰관들 눈 앞에서 아이들 머리가 불타오르기 시작했습니다. 공포에 질린 경찰이 권총을 꺼내 허공에 발사하자 그 총성에 당연히 움찔하며 동작을 멈추거나 달아날 거라 생각했던 아이들은 오히려 갑자기 자가증식하듯 순식간에 그 숫자가 늘어나더니 이내 논을 가득 채웠고 그들 머리에서 일렁이는 불꽃에 일대가 환하게 밝아졌습니다. 금방이라도 논두렁을 넘어 덮쳐들 것 같은 횃불머리 아이들에 위협을 느낀 경찰과 구경꾼들이 제각기 쏜살같이 달아나기 시작했고 그 사건 이후 시티 레조 마을은 끄마망 마을로 불리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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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mik Horer Nusantara>(그라메디아, 2020)

 


끄마망을 보았다는 또 다른 증언도 있습니다. 

 

내가 초등 6학년 때 귀뚜라미를 잡으러 갔을 때였어. 친구들 넷이서 같이 돌아다녔지. 밤 9시경이었던 것 같아. 귀뚜라미가 많이 잡히는 곳은 묘지 가까이에 있는 빈 논이었어. 마침 건기였고 아직 파종하지 않아 땅을 놀리고 있었거든. 그래서 거긴 덤불과 잡초들만 무성하게 자라고 있었지.

 

보통 자정이면 집에 돌아갔는데 그날은 밤 열 시 반이 넘도록 한 마리도 잡지 못했어.  달도 뜨지 않아 특별히 어두운 밤이었지. 친구들이 들고 온 랜턴과 호롱불을 다 켜도 충분히 밝지 않았던 거야. 그때 산에서 점처럼 보이는 불들이 켜지기 시작한 거야. 그런데 그 점들이 점점 커지더니 우리 쪽으로 다가오기 시작했어. 친구들은 그게 끄마망이라고 소리쳤어. 끄마망은 불빛을 보면 끝까지 쫓아와 달려든데. 그래서 우린 호롱불을 집어 던지고 각각 걸음아 날 살려라 달려서 집으로 도망쳐 들어갔지.

 


바나스빠티 (Banaspati)

 

2일 불귀신 바나스빠띠.jpg

 

끄마망과 유사한 바나스빠티(Banaspati)라는 불귀신도 있습니다. 불붙은 공이나 소용돌이 모습으로 출현하는 바나스빠티는 땅밑 동굴이나 사람이 닿지 않은 늪지, 묘지에 살며 오솔길을 따라 낮게 날아다니는 불덩어리로 알려져 있습니다. 어떤 이는 자신이 만난 바나스빠티가 불붙은 사람 머리 모양을 했고 툭 튀어나온 눈에 길게 내민 혀, 날카로운 송곳니 등을 보았다고 묘사하기도 합니다. 표피에서 일렁이는 화염이 마른 나무나 잎파리를 태워버린다고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바나스빠티의 기원에 대해서도 여러가지 설이 있습니다. 어떤 이들은 바나스빠티가 빠디그니 흑마술(Sihir Pati Geni)을 익힌 사람의 변신으로 뜨거운 화염을 견딜 뿐 아니라 불을 다루는 다양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또 다른 이들은 한을 품고 죽은 사람의 원귀라고도 하고 죽은 사람의 손톱에서 생성되는 저주라고도 합니다. 바나스빠티를 만난 사람은 몸져누워 앓게 되고 심하면 죽기도 하지만 불같이 화를 내는 사람을 좋아해 눈이 뒤집힐 정도로 분통을 터뜨리는 사람에게 붙어 그 기운을 포식하면 포만감을 느끼고 자기 있던 곳으로 돌아간다고 묘사됩니다. 


바나스빠티는 불붙은 원구나 해골 모습으로 등장하고 사람을 공격해 사람을 불태우거나 건물에 화재를 일으킵니다. 끄마망보다 분명한 물리적인 위력을 발휘하는 거죠. 

 

바나스빠티는 여러 종류가 있는데 그중 바나스바띠 그니(Banaspati Geni-불꽃 바나스빠티)는 공기 중에 섞여 움직이며 대기 속에 흩뿌려진 사람들의 두려움을 먹고 삽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자신을 두려워할수록 끄마망처럼 덩치가 더욱 커지고 불꽃도 강해집니다.


한편 바나스빠티 따나리앗(Banaspati Tanah Liat-진흙 바나스빠티)으로 분류되는 놈들은 주로 숲 속에 살면서 피를 빨아먹는 흡협귀에 속합니다. 그런데 특이한 점은 땅에 발을 딛지 않은 사람을 먹이로 삼기 때문에 숲 속에서 바나스빠티 따니리앗을 만나면 급히 양말을 벗고 맨발로 죽은 듯 가만히 서 있어야 합니다.

 

일설에는 바나스빠티가 원래 정글 속에 살던 마물로 인간과의 계약을 통해 매우 치명적인 산뗏저주에 동원된다고 합니다. 바나스빠티 산뗏저주를 맞은 사람은 결코 죽음을 피할 수 없는데 오직 저주를 시전한 사람만이 그 저주를 무효화시킬 수 있습니다. 


이 산뗏저주에는 암탉이 처음 낳은 달걀을 매개체로 사용합니다. 이 달걀에 대고 죽이고 싶은 대상을 저주하는 주문을 외운 다음 불꽃 위에서 그 달걀을 터뜨리면 그 속에서 불덩어리 모습을 한 바나스빠티가 튀어나와 곧장 저주의 대상에게 날아간다는 것입니다.

 


뿔룽간뚱(Pulung gantung)

자바의 하늘을 떠도는 불길한 불덩어리 중엔 중부자바 구눙 끼둘(Gunung Kidul) 지역에 주로 출몰하는 뿔룽간뚱(Pulung Gantung)이란 놈도 있습니다. 이 도깨비불은 어느 집 위에서 어른거린 것 자체만으로 그 집안 누군가가 목을 매달아 죽게 될 것임을 예언합니다. 이 뿔룽간뚱의 정체가 무엇인지 알려진 바 없지만 그 지역 사람들 사이에선 목매달아 자살한 사람이 살던 집 지붕 위에 전날 밤새도록 뿔룽간뚱의 불덩어리가 어른거렸다는 얘기가 나오곤 합니다.

 

 
끄망망(Kemangmang)

마지막으로 끄마망과 이름이 비스한 끄망망(Kemangmang)이란 놈이 있습니다. 발리에도 같은 이름의 귀신이 살고 있지만 그건 전혀 다른 종류이고 서부자바 북부 해안지역에 출몰하는 끄망망은 뒷덜미에 불이 붙어 타오르는 거대한 두꺼비의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웬만한 염소 정도 크기인데 인간의 뇌를 양식으로 삼는다고 전해집니다. 

 

초대형 두꺼비 모습의 끄망망 목 뒷덜미에서 일렁이는 불꽃은 무엇이든 불살라버리는 강력한 지옥의 업화(業火)입니다. 그 불꽃은 물 속에서도 꺼지지 않아 끄망망이 물속을 헤엄치다 나와도 여전히 일렁거립니다. 다른 마물들과 마찬가지로 낮에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다가 논이나 마을에서 멀리 떨어진 습지에 나타난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인간의 뇌가 주식일 리 없겠습니다. 마을에서 먼 습지에선 구하기 어려운 품목이니까요. 아무튼 주로 물가에서 맴돌지만 가까이 다가오는 인간들에게 재앙을 내린다고 하며 1997년 이후 서부 자바 북부해안에서 자주 일어난 맹그로브 숲 화재가 끄망망의 소행이라 주장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지옥의 업화가 두꺼비 등을 타고 이승의 밤을 밝히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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끄망망 아트 모음

 

물귀신이 있다면 불귀신이 있는 것도 사실 놀랄 일은 아닙니다. 

불 속성을 가진 마물들이 왜 공포의 대상인지 잠시 생각해 보면 근대 이전 왕국 간의 전쟁과 도적들 출몰이 빈번하던 시절, 어둠 저 편에서 불현듯 나타나 일렁이던 정체불명의 불꽃들이 그걸 본 마을 사람들에게 얼마나 큰 두려움을 던졌을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 두려움에서 기인해 자바인들 마음 속에 태동한 끄마망과 바나스빠티, 뿔룽간뚱, 끄망망 같은 마물들이 다시 전설과 설화 속에 확대 재생산되어 시나브로 자바문화 속에 당당히 자리잡게 된 것이 아닌가 합니다. (끝)


♣배동선 작가는 인도네시아의 동포 향토작가. 현지 역사, 문화에 주목하며 저서  <수카르노와 인도네시아 현대사>와 공동번역서 <막스 하벨라르>를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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