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제목 [무속과 괴담 사이 (17)] 돼지요괴의 전설: 바비응예뻿 (Babi Ngep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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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속과 괴담 사이 (17)] 돼지요괴의 전설: 바비응예뻿 (Babi Ngepet)

기사입력 2021.08.03 2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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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속 도입.png

 

 

 3일 무속 어서와.jpg
응, 어서 와.

 


 2021년 4월 자카르타 위성도시 데뽁(Depok)에서 도둑돼지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이 기묘한 사건은 현대 인도네시아 서민사회가 무속과 주술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여실히 보여줍니다.


 당시 CNN인도네시아 보도에 따르면 아담 이브라힘(Adam Ibrahim)이란 이름의 우스탓(ustad=이슬람 교사)이 데뽁 사왕안(Sawangan)구(區) 버다한(Bedahan) 마을에 나타난 도둑돼지를 잡기 위해 4월 27일 밤 용감하고 힘센 주민 여덟 명과 함께 발가벗고 내달려 돼지를 포획틀로 몰아넣었죠. 다음날 새벽 마을 사람들 수백 명이 잡힌 돼지를 보려고 그의 집에 모여드는 모습이 소셜미디어를 타고 전국으로 퍼져 나갔습니다. 인도네시아에서 종종 요괴가 잡히지만(?) 그걸 가까이에서 볼 기회가 늘 있는 건 아닙니다. 버다한 마을사람들은 코로나 팬데믹 상황에 외지인들이 돼지를 보러 몰려드는 것을 꺼려 돼지를 죽여 파묻었습니다. 흑마술로 돼지가 되살아날 것을 우려해 머리를 잘라 따로 묻는 것도 잊지 않았죠.


 이 상황을 이해하려면 자바의 독특한 무속문화를 잠깐 들여다볼 필요가 있습니다. 바비응예뻿(Babi Ngepet)이란 도둑돼지의 이야기는 대개 한 쌍의 부부가 두꾼을 찾아가 공물을 바치고 부자가 되고 싶다는 소원을 빌면서 시작됩니다. 


 그럼 두꾼은 비전의 재주를 부려 돼지요괴를 불러내는데 옥양목(Cacilo-telon)꽃잎과 향기로운 기름, 그리고 찌마니 토종흑닭의 피 한 사발을 공물로 준비합니다. 그런 다음 이 공물들을 그 지역에서 가장 큰 나무둥치 밑에 두고 주문을 읽습니다. 용한 두꾼이라면 그의 주문에 응답해 돼지요괴가 현신하는데 부부는 원하는 바를 말하고 요괴의 타액을 얻어냅니다. 이제 부부가 집에 돌아가 아직 2차 성징을 보이지 않은 자식의 몸에 바르면 아이는 시름시름 앓다가 며칠 후 죽게 됩니다. 돼지요괴에게 제물로 바쳐진 것이죠. 그럼 이제 계약이 성립되었습니다. 


 부부 중 남편에겐 도둑돼지인 바비응예뻿(babi ngepet)으로 변신하는 능력이 생깁니다. 밤이 깊어 주머니가 많이 달린 검정색 망토를 걸친 남편이 주문을 외우면 그는 순식간에 멧돼지로 변해 온 동네를 돌아다니게 됩니다. 처음엔 변신을 위해 두꾼의 도움을 받아야 할 수도 있지만 익숙해지고 나면 망토를 두르는 것만으로 멧돼지로 변할 수 있게 됩니다. 이제 멧돼지가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담벼락에 몸을 긁어 대면 그 집안의 값나가는 패물과 현금이 망토 안 주머니 속으로 저절로 빨려 들어옵니다. 


 하지만 바비응예뻿은 그런 신비로운 도둑질 능력 외에는 일반 돼지와 별반 다를 바 없습니다. 사람들이 그물이나 몽둥이를 들고 몰려와 잡으려 들면 빠져나가지 못해 처참한 최후를 맞기도 헙니다. 그래서 그의 아내는 집에서 촛불을 지켜야 합니다. 만일 초의 불꽃이 솟아오르거나 꾸불꾸불 요동치면 그것은 돼지가 위험에 처했다는 신호입니다. 그 순간 아내가 기민하게 촛불을 불어 끄면 돼지로 변한 남편이 어디에 있든 곧바로 촛불이 있는 곳으로 순간이동해 돌아오고 망토를 입은 사람 모습을 되찿습니다. 도둑질을 성공적으로 마친 겁니다. 하지만 촛불이 위태로울 때 아내가 졸기라도 해서 촛불이 스스로 꺼져버리면 그것은 멧돼지로 변한 남편이 길에서 위험을 만나 목숨을 잃었음을 뜻합니다.


 버다한 마을에서 도둑돼지를 죽였다는 건 바비응예뻿 주술의 그런 메커니즘을 알면서도 돼지로 변한 인간을 굳이 죽인 것입니다. 이 사건의 잔혹성은 바로 그 지점에 있죠. 


 돼지를 묻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예의 우스탓 이브라힘은 도둑돼지의 가족이 자기 아들의 시신을 가져가기로 약속했음을 공개했습니다. 전설에 따르면 바비응예뻿은 죽어 얼마간의 시간이 흐르면 원래의 사람 모습으로 돌아간다고 하거든요. 머리와 몸이 따로 묻힌 돼지는 이제 사람의 모습으로 돌아가 있어야 할 터였습니다. 그러나 다음날 아침 경찰들이 버다한에 먼저 들어와 발굴해 간 사체는 사람 모습으로 돌아간 도둑이 아니라 이미 썩기 시작한 작은 멧돼지였을 뿐입니다. 


 나중에 경찰 수사를 통해 이브라힘의 거짓말이 밝혀졌습니다. 그는 당시 마을에 도난사건이 빈번하자 이를 자신의 명성을 높이고 영적 능력을 돋보일 절호의 기회로 보고 온라인에서 동물애호가 그룹으로부터 새끼 멧돼지 한 마리를 사와 사냥이 벌어진 날 밤 마을에 풀어놓고서 자신도 알몸이 되어 온동네를 죽어라 달렸던 것입니다. 이브라힘은 가짜뉴스 유포혐의로 체포되어 재판에 넘겨졌습니다. 이런 류의 이야기 말로가 늘 그렇듯 이 흑마술 도둑돼지 사건도 욕망과 거짓, 그리고 덧없는 야망이 빚은 한바탕 코미디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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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s://twitter.com/bobdombear

 


 이런 유사한 이야기는 매체에서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습니다. 2015년 6월 29일자 마디운뽀스닷컴엔 ‘주민들을 불안에 떨게 한 도둑돼지 검거’라는 다음과 같은 기사가 실렸습니다. 

 

 끄락사안면 파또깐 마을에서 도둑돼지가 잡혀 마을 사람들이 구경하려 몰려들었다.  주민들은 재물주술의 결과물이라 지목된 멧돼지가 코의 모양, 눈동자 색깔이 보통 돼지와 다르다고 한다. 몸통에 줄무늬가 들어가 있었다. 돼지를 잡은 그곳 주민 헤리(50)는 매일 밤 마을을 돌아다니는 돼지가 의심스러워 이웃들과 힘을 합쳐 지난 토요일(2015년 6월 27일) 저녁 그물로 돼지를 포획했다. 

 

 마을을 방문한 방문객 수천 명도 이 돼지가 사람의 둔갑이라고 확신했다. “눈이 빨간 것이나 털 색깔이 검정과 고동색이 섞여 있는 걸 보면 재물주술 돼지가 분명해요. 보통 돼지들과는 전혀 다르다고요.”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한 주민도 그렇게 말했다. 이 도둑돼지를 보겠다고 몰려드는 군중들이 점점 더 많아지자 끄락사안 파출소는 부득이 이 돼지를 경찰서로 옮겨올 수밖에 없었다.

 

 “이게 정말 재물주술의 도둑돼지인지 아니면 먹을 것을 찾아 마을로 내려온 보통 멧돼지인지는 조사하면 알게 되겠죠.” 끄락사안 파출소장 수바다르의 말이다.


 먹을 것을 찾아 마을에 내려온 멧돼지들이 곧잘 도둑돼지 혐의를 뒤집어쓰고 잡혀 죽곤 합니다. 어떤 이들은 바비응에뻿이 일반 멧돼지들과 분명히 다른 모습과 행동을 보인다고 하는데 과연 그럴까요? 


 동부자바에서는 바비응예뻿과 유사한 쩰렝끄레섹(Celeng Kresek)이라는 주술이 있습니다. 이것은 사람이 돼지로 변하는 것이 아니라 돼지요괴의 도움을 받아 도둑돼지를 불러내 사역시키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주술이 밤에 시전되는 것과 달리 쩰렝끄레섹 주술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시전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돼지가 죽으면 그 시전자도 반드시 죽음을 맞이하므로 상대적으로 인적이 드문 밤에 움직이는 게 당연한 일입니다. 


 사브로씨(가명)은 가난했고 마을사람과도 별로 가깝게 지내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날 이 사브로씨가 소또(Soto) 스프를 파는 작은 가게를 열었는데 손님들이 줄을 잇더니 얼마 되지 않아 가게는 이상할 정도로 번창하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사브로씨는 여전히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않았다.

 

 그러던 중 사브로씨가 쩰렝끄레섹 주술을 추종하며 도둑돼지를 키운다는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다. 호기심을 품은 사람들이 점괘를 보기도 했고 그런 소문에 맞장구치는 두꾼들도 있었다.

 

 마침 당시 마을에서 주민들 눈에 자주 띄던 멧돼지 한 마리가 늘 사브로씨 집 근처에서 사라져버리곤 했다. 마을사람들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마침 마을엔 크고 작은 도난사건이 꼬리를 물던 터여서 뚜율을 의심하던 마을사람들은 그 멧돼지를 떠올리며 혹시 누군가 쩰렝끄레섹 주술을 쓰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누군가 흑마술로 이웃의 돈과 행운을 빼앗아 간다는 건 결코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결국 마을사람들이 모두 동원되어 마침내 돼지를 붙잡아 단숨에 갈기갈기 찢어 불태워버렸다. 


 바로 그날 사브로씨도 집에서 발작을 일으키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숨을 거두고 말았다. 그런데 정작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그의 시신이 감쪽같이 증발해 버린 것이다. 


 사람들은 사브로씨가 와뚜도돌(Watudodol) 지역에 자주 간 것을 알고 그곳에서 재물주술을 행한 것이라 믿었다. 동부자와 바뉴왕이(Banyuwangi)와 시뚜본도(Situbondo)사이에 있는 산림보호구역에 위치한 와뚜도돌은 원래 쩰렝끄레섹 주술로 유명한 곳이다. 이 재물주술은 철저한 금식을 전재로 하는데 생각해 보면 삐쩍 마른 체구의 사브로씨는 정말 금식을 자주 하던 사람이었다. 사람들은 그와 계약을 맺은 쪨렝끄레섹의 돼지요괴가 그의 시신을 가져간 것이라 믿었다.


 쩰렝끄레섹의 돼지요괴를 만나 제물을 바치고 계약이 이루어지면 마술처럼 어디선가 쩰렝끄레섹이 나타나 돈을 구해오기 시작하는데 35일마다 찌마니 토종흑닭의 피를 공물로 바쳐야 합니다. 피부부터 벼슬이며 다리, 내장, 심지어 달걀까지 모두 새까만 찌마니 흑닭은 주술용도로 비싸게 거래되는 특별한 제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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찌마니 흑닭

 


 바빙응예뻿이나 쩰렝끄레섹 같은 도둑돼지 주술은 뚜율을 키우는 것과 마찬가지로 마법을 통해 이웃들의 돈을 훔쳐 빨리 부자가 되겠다는 의도에서 시작됩니다. 이 경우에도 우선 두꾼을 통해 돼지요괴와 계약을 맺습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돼지요괴의 타액을 받아 자식에게 바르기도 하고 제물이 될 사람의 이름을 말하면 요괴가 그 사람을 찾아갑니다. 제물로 이름이 불린 사람은 며칠 사이에 이상한 일들을 겪다가 직장이나 주방, 또는 침실에서 예기치 못한 기괴한 죽음을 맞게 되죠. 주로 자식이나 부모형제가 제물이 되는 이유는 소중한 사람의 생명을 내어줘야 주술이 더욱 강력한 힘을 낸다는 믿음 때문입니다. 그러니 돈을 위해서라면 가족조차 제물로 던져줄 정도의 냉혈한쯤 되어야 이런 재물주술에 빠지는 법입니다.

 

 가족도 친구도 없다면 스스로의 생명이나 얼마 남지 않은 자신의 인간성이라도 제물로 바쳐야 합니다. 귀신과의 거래엔 예외나 면제가 없습니다. 시전자는 이후 그 주술로 부자가 되겠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는 점점 인간성을 상실하며 짐승처럼 가혹하고 잔인한 성정을 보이게 됩니다. 대부분 귀신과 계약한 주술들이 그렇듯 그 주술을 시전하는 사람들은 계약 상대방인 귀신의 성격을 닮아가게 된다고 합니다. 그리고 일정 시간이 지나 마침내 생명이 다하면 그의 영혼은 돼지요괴의 속박 속에 영원히 붙잡히게 됩니다. 귀신을 통해 얻는 재물의 대가는 결코 싸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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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비응예뻿 아트 모음

 


 이런 괴담은 도대체 어떻게 유래된 것일까요? 역사학자 꾼토위조요(Kuntowijoyo)는 그의 저서 <사원 없는 이슬람(Muslim Tanpa Masjid)>에서 바비응예뻿이나 뚜율 같은 재물주술은 농경사회에서 발생한 문화라고 말합니다. 농부가 부자가 되는 길은 농토를 넓혀 수확량을 늘리는 것이고 그가 부유해지는 만큼 다른 농부가 가난해지는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이 세상의 재물은 한정되어 있다는 한정자산의 개념도 여기서 출발합니다. 세상의 재물이란 유한한 것이라 누군가 부자가 되면 그만큼 누군가는 필연적으로 더 가난해진다는 세계관이죠.


 더 부지런한 사람이 더 많이 가져가는 것이 당연하지만 다른 사람이 나보다 열심히 일해 더 큰 부자가 되었다는 것을 농부의 자존심은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그러니 바로 그 지점에서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게으름뱅이가 도둑돼지를 부려 부자가 되려 한다는 농경사회의 적, 내 불행과 열등감이 응축된 원한과 저주의 대상으로서 바비응예뻿이란 악마가 구체적으로 창조된 것입니다. 


 그럼 ‘왜 하필이면 돼지인가?’ 하는 점도 농경사회의 특성을 생각하면 어느 정도 설명됩니다. 당시 사람들이 밤에 산에서 내려와 정성 들여 가꾼 논밭을 마구 파해치는 멧돼지를 얼마나 혐오했는가 미루어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내 재물을 훔쳐가는 저 악마 같은 도둑은 소도 닭도 아닌 멧돼지여야 했던 것이죠.


 어떤 이들은 19세기 인도네시아 전역에서 네덜란드 총독부가 밀어붙였던 강제경작제도에서도 그 원인을 찾습니다. 총독부가 농부들에게 쌀이나 곡물 대신 커피나 육두구 향료 같은 환금작물을 재배하게 하면서 부자들은 더욱 부유해지고 가난한 소작농들은 더욱 가난 속에 피폐해지는 폐해가 벌어졌습니다. 자신들을 부리며 억압하는 부자들이 더욱 부유해지는 것을 사람들은 그의 재능이나 배경보다는 그들이 바비응예뻿을 부리기 때문이라 생각하고 싶어하지 않았을까요?


 1929년 G.W.J 드레베스(G.W.J Drewes)는 <금지된 부: 자바, 마두라의 민중신앙과 지식에 대한 공헌>라는 저서에서 동물로 변하는 능력을 가진 리칸트로피(likantropi)란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썼습니다. 이들은 쓰레기나 오물을 먹고 살지만 각각 비밀스러운 주술을 통해 녜긱(Nyegik)은 돼지, 응에텍(Ngetek)은 원숭이, 응이프리(Ngipri)는 뱀으로 변할 수 있고 이 주술을 통해 부자가 될 수 있다고 믿었다고요.


 드레베스는 중부 바자 꾸토아르죠 지방 깔리와투(Kaliwatu) 부근에 돼지요괴의 딸이 사는 동굴이 있어 돼지요괴 딸의 종이 되면 큰 부자가 된다는 이야기를 근간으로 두 가지 전설을 기록했습니다. 


 옛날 옛적 삶에 지친 수타르카르자(Soetarkarja)가 한 두꾼을 만났는데 그의 운을 따져본 두꾼은 깔리와투 산에 가서 끼아이 자멩갈라(Kiai Djamenggala)라는 사람을 만나보라고 했습니다. 수타르카르쟈는 자멩갈라에게 환대를 받아 그의 딸과 혼인하게 됩니다. 사람들에게 둘러 쌓여 즐겁고 뻑쩍지근한 혼인식을 올리면서 수타르까르자는 고향의 처와 아이들을 떠올렸습니다. 그는 원래 가족을 가진 사람이었던 겁니다.


 그가 고귀한 옷과 장식품으로 치장하고 고향집에 갔을 때 스스로는 깨닫지 못했지만 사람들 눈엔 멧돼지 한 마리가 집안에 들어오는 것으로 보여 의아한 눈초리로 바라볼 뿐이었습니다. 그가 하는 말도 알아듣지 못했습니다. 새 아내에게 돌아온 수타르카르자가 그 일을 말하자 새 아내는 웃으며 옛날에 입던 옷을 찾아 입고 가보라고 했습니다. 그 말대로 옛날 옷을 입고 고향에 가자 아내와 아이들이 그제서야 그를 알아보고 기뻐했습니다. 


 어느날 밤 수타르까르자는 새 아내가 동굴에서 자신을 부르는 소리를 듣고 그 소리를 따라 집을 나갔는데 다음날 사람들은 동굴 앞에서 그의 시신을 발견했습니다. 그의 곁엔 돈이 가득 든 돈주머니가 놓여 있었습니다. 돼지요괴의 딸이 마침내 수타르까르자의 영혼을 자신의 종으로 삼아 동굴 깊은 곳으로 데려간 것입니다.

 

 두 번째 전설은 수마레자(Soemaredja)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돼지요괴의 딸을 만나러 동굴에 왔지만 돼지요괴 딸과의 혼인식을 동굴에서 올리지 않고 자기 집에서 은밀히 치렀습니다. 그리고 아내와 아이들에게는 매주 끌리원(Kliwon)[1]의 화요일에 여자 손님이 자신을 찾아와도 놀라지 말라고 언질을 주었습니다. 그렇게 한 달에 한 번 찾아오는 손님은 오래 머물지 않고 도착한 당일 수마레자와 잠시 시간을 보낸 후 바로 돌아갔는데 그때마다 수라마자의 주머니는 돈으로 가득 찼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마을 사람들은 멧돼지 한 마리가 한 달에 한 번씩 수라마자의 집에 드나드는 것을 보고 어느날 길목애서 기다려 돼지를 잡아 죽였습니다. 수라마자가 동굴에 돌아가 돼지요괴에게 딸의 죽음을 알리며 슬퍼하자 돼지요괴는 또 다른 딸을 그에게 내어주었습니다.


 하지만 같은 일이 또 다시 반복되었습니다. 마을 사람들이 그 돼지도 잡아 죽인 것입니다. 수라마자는 이번에도 동굴에 돌아가 돼지요괴에게 그 사실을 알렸습니다. 그러자 그를 지긋이 바라보던 돼지요괴는 이번엔 좋은 옷 한 벌을 수라마자에게 내어 주었습니다. 그 옷을 입고 동굴을 나선 수라마자는 이제 자신이 사람들 눈에 한 마리의 멧돼지로 보이게 되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고 마을 어귀에 다다르자 그를 본 마을 사람들이 칼과 쇠스랑을 들고 달려들었습니다.


 이런 전설과 괴담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바비응예뻿의 전설로 응축되어 간 것 아닐까요? 아니면 거꾸로 돼지요괴의 괴담이 이런 전설에 영향을 주었는지도 모릅니다. 예전엔 실제로 바비응예뻿을 불러내는 일무 응로고 수쿠모(ilmu ngrogo sukmo)라는 주술이 있었다고 하며 돼지를 주술의 매개체로 사용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슬람이 들어오고 돼지가 불결한 동물로 인식되면서 돼지를 사용하는 주술은 수면 밑으로 깊숙이 들어가 이젠 은밀하게 행해질 뿐입니다.


 이런 재물주술은 다양한 형태와 방식으로 인도네시아 서민사회에서 여전히 맹위를 떨치고 있습니다. 다음 편에서는 재물주술의 마지막 챕터로, 앞서 다룬 뚜율이나 바비응예뻿과는 비교도 안되는 강력한 악마 ‘부토이조(Buto Ijo)’를 소개하겠습니다. (끝)


 [1]자바의 5요일 시스템은 마니스(Manis), 빠힝(Pahing), (Pon), 와게(Wage), 끌리원(Kliwon)으로 이루어진다 5요일은 서양 칼렌더의 7요일(스닌(Senin), 슬라사(Selasa), 라부Rabu), 까미스(Kamis), 줌앗(Jum’at), 삽뚜(Sabtu), 밍구(Minggu))와 연결해 5x7=35개의 조합을 만든다. 그래서 자바의 한달은 35일마다 돌아온다예를 들어 줌앗끌리원(Jumat Kliwon)이라 하면 금요일이 자바의 끌리원 요일과 겹치는 날을 뜻한다.

 

3일 무속 돼지.jpg

 

 

♣배동선 작가는 인도네시아의 동포 향토작가. 현지 역사, 문화에 주목하며 저서  <수카르노와 인도네시아 현대사>와 공동번역서 <막스 하벨라르>를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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