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 일기 2
김상균
산자락 안개구름 드리워
마음 푸근한 날
아카시아 숲속으로 들었습니다
그 가벼운 향내는 어디로 가고
둥근 잎들만 두런두런
다가옵니다
바위에 걸터앉으면 엉덩이에 돋아나는
파릇한 습기도 새롭고
발바닥에 전해오는
풀잎의 부드러운 생명도 새롭습니다
어깨 위에 뭉쳐진 빗방울 뚝뚝
안경에도 뚝
유리알에 번져나는 수풀, 그 색감
편안합니다
눈 하나가 가져오는 변화
알 수 있습니다
‘물방울 뚝뚝’이 가져온
수채화 같은 세상
날카로운 경계가 없어 좋습니다
사랑하려면 눈을 바꾸세요
“어깨 위에 뭉쳐진 빗방울 뚝뚝/안경에도 뚝/유리알에 번져나는 수풀, 그 색감/편안합니다/눈 하나가 가져오는 변화/알 수 있습니다//‘물방울 뚝뚝’이 가져온/수채화 같은 세상/날카로운 경계가 없어 좋습니다/사랑하려면 눈을 바꾸세요”
올해 장마는 다음 주 초면 끝나고, 불볕더위와 열대야가 찾아들 것이라고 합니다. 어릴 적엔 지루한 장마가 끝날 무렵이면 여름방학이 있었고, 무더위를 식히는 등목과 얼음을 깨서 미숫가루를 타 먹던 일이며, 밤이면 모깃불 피워놓고 부채질하며 평상에 누워 귀신 얘기에 한기를 느끼곤 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올려다보는 밤하늘엔 참으로 많은 별이 있었지요.
여러모로 열악하고 궁핍했던 그 시절을 그리워하는 건 단지 나이를 먹은 탓일까요, 아니면 그런 삶의 모습이 지금의 우리보다 더 온전해서일까요? 샤워하고, 에어컨 바람을 쐬고 앉아서도 그리 흡족하진 않은 밤입니다.
모두가 코로나19 팬데믹을 조속히 극복할 수 있게 되기를 간절히 바라며, 모든 생명에게 평화와 행복이 가득하기를 기원합니다.
정민성의 ‘여름의 끝자락’입니다.
김상균 약력
김상균 시인은 서울 출생으로 부산대학교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1985년 무크지 <가락>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으며, 시집으로 <자작나무, 눈, 프로스트>와 <깊은 기억> 등이 있다. 대학 강사와 고등학교 교사를 거쳐 KAIST 부설 한국과학영재학교에서 교감으로 퇴임하였다. 다수의 사진전을 개최한 바 있는 사진작가이며, 일찍부터 영화와 음악에 대한 시와 글을 써온 예술 애호가이자, 70년대 후반부터 배낭여행을 해온 여행 전문가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