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제목 [무속과 괴담 사이 (15)] 웨웨곰벨의 빗나간 모성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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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속과 괴담 사이 (15)] 웨웨곰벨의 빗나간 모성애

기사입력 2021.07.05 2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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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속 도입.png

 

 

 인도네시아에 유독 아기나 태아, 어린 아이, 산모와 관련한 괴담이 많은 것은 어쩌면 사람 목숨이 하늘에 달려 있던 시절 임신과 출산과정에서 산모나 아기가 변을 당하는 경우가 많았고 아이들이 성인이 되기 전에 사망하거나 실종되는 일이 적지 않았음을 반증하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그 일을 누군가의 탓으로 돌려야만 남은 이들의 안타깝고 억울한 마음을 그나마 추스를 수 있었을 테니 그런 염원과 한이 응축되어 수많은 귀신과 괴담을 낳은 것일지도요.


 출산 전후 사망한 아기들 유령으로 가장 유명한 것은 역시 이웃의 재물을 훔치기 위해 키우는 뚜율(tuyul)입니다. 그 성격이 꼭 철없는 어린아이 같지만 중부 자바엔 뚜율들이 많이 잡힌다는 숲이 있고 입이 세로로 된 놈, 긴 송곳니를 가진 놈 등 나름대로 종족 특징을 가지고 있어 죽은 아기의 혼이 아니라 고대로부터 정글 속에 살던 정령 같은 존재라고 보는 시각도 있습니다.


 좀 더 본격적인 아기귀신들로는 바이뜨렉(Bayi Trek)이 있습니다. 낙태 또는 유산한 아기의 혼령으로 아기 머리를 가진 커다란 메뚜기 형태를 하고서 나무가 부러지는 듯한 ‘뜨렉!’ 소리를 내면서 나타납니다. 천진난만하게도 같이 놀아 달라는 것이지만 사람들은 그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소금을 뿌려 바이뜨렉을 쫓아내죠. 사람들은 그게 귀신이라면 아기의 영혼이라 해서 결코 관대하게 대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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웰톡

 


 좀 더 독특한 아기귀신으로는 수라바야 지역에서 목격된다는 웰톡(Welthok)이 있습니다. 어린 아이 체구에 해질 무렵부터 밤 늦게까지 얕은 강이나 개울가에서 새우를 잡으면 논다고 합니다. 그런 웰톡이 인간과 다른 점은 머리에 불이 타오르고 있기 때문이죠. 열린 두개골이 빈 컵처럼 되어 있고 뇌가 있어야 할 자리에 불꽃이 솟아오르는 겁니다. 숲 속을 도깨비불처럼 떠돌거나 밤하늘을 가로지르는 불덩이 바나스빠티(banaspati), 끄마망(kemamang), 뿔룽간뚱(pulung gantung) 같은 자바의 불길한 불귀신들과 달리 웰톡의 불꽃은 처연하기만 합니다. 웰톡은 내내 혼자 놀면서 잡은 새우를 그 불에 익혀 먹다가 숲 속으로 사라집니다. 어딘가 사람 마음을 먹먹하게 하죠.


 좀 더 무시무시한 아기도 있습니다. 깔리만탄의 아낙시마(anak sima)는 엄마가 정글 속에 버리고 간 아기를 숲의 주인인 마물 타까우(Takau)가 키운 경우입니다. 타까우가 왜 사람의 아기에게 측은지심을 갖는지는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사람들 눈에 잘 띄지 않고 교류도 하지 않는 타까우는 모습을 자유자재로 바꿀 수 있고 그 도력도 뛰어납니다. 타까우의 아이가 된 아기도 점차 마물의 특성을 띄게 됩니다. 정글 속에서 아기 울음소리를 듣고 찾아간 여인이 버려진 아기를 발견하고 불쌍한 마음에 젖을 물리면 아기는 여인의 가슴을 야금야금 파먹다가 급기야 심장까지 파먹고 마는데 여인은 자신이 죽어가는 것조차 깨닫지 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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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라메디아 출간 ‘Komik Horer Nusantara’에 묘사된 아낙시마와 타까우

 


이번엔 엄마 쪽을 살펴볼까요?

 

 모성을 지닌 엄마의 귀신이라면 단연 꾼띨아낙입니다. 임신 중 또는 출산 중 사망해 결국 아기를 안아보지 못한 것이 한이 되어 귀신이 된 것이니까요. 그래서 꾼띨아낙은 다른 여인의 아기나 태아를 뺏으려 하면서 막무가내로 강한 집착을 보입니다. 인도네시아 호러영화 <아시(Asih)>엔 숲속에서 발견한 아이를 입양한 부부에게 나타나 아이를 도로 데려가려는 여성 원귀가 등장하고 헐리우드 영화 <마마(Mama)>(2013)에도 빗나간 모성을 불태우는 그로테스크한 원귀가 나옵니다. 동서양의 원귀들이 모성애로 대동단결하는 모습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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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마마>(2013)

 


 모성애란 측면에서 웨웨곰벨(Wewe Gombel)도 어쩌면 꾼띨아낙의 한 종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웨웨곰벨은 대개 젊고 섬뜩하도록 아름다운 여인으로 현신하곤 하는 꾼띨아낙과는 우선 인상착의부터 많이 다릅니다.


 자바 전승에 따르면 웨웨곰벨은 사람과 닮았지만 무시무시한 어금니와 긴 손톱을 가졌고 엉망으로 헝클어진 머리칼에 누더기를 걸친 할머니의 모습으로 묘사됩니다.  웨웨(wewe)란 ‘할머니’란 뜻이고 곰벨(gombel)이라는 단어는 누더기를 걸쳤다는 뜻이란 점에 착안해 찢어지게 가난하다는 의미의 ’갬벨(gembel)’에서 유래했다는 의견이 지배적입니다. 물론 중부자바 주도인 스마랑(Semarang)에 실제로 있는 곰벨언덕에서 유래했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아무래도 개연성은 많이 떨어집니다. 그곳에서 네덜란드 식민지 시대에 벌어진 대량학살 희생자 원혼들이 웨웨곰벨이 되었다는 것이죠. 

 

 한편 순다 전승에서는 거대한 젖가슴을 늘어뜨린 할머니 모습의 웨웨곰벨이 아이들을 납치헤 아렝가삐나타 야자나무 꼭대기에서 키운다고 합니다. 꾼띨아낙의 속성이 아기에 대한 ‘집착’에 있다면 웨웨곰벨은 좀 더 구체적인 ‘양육’에 초점이 맞춰집니다. 웨웨가 아이들에게 위해를 가하긴커녕 가정에서 학대받거나 관심 밖에 내팽개쳐진 아이들을 납치해 할머니가 손주를 대하듯 아이들을 사랑하고 보호해 주다가 아이들의 부모가 그간의 잘못을 후회하는 시점에 부모에게 돌려보낸다는 훈훈한 이야기도 있습니다.


 하지만 모든 괴담이 그렇듯 웨웨곰벨이 인간에게 특별히 호의적이거나 유익한 존재일 리 없습니다. 내가 직접 인터뷰한 할머니가 오래 전 까라왕에서 겪었던 일은 이랬습니다.


 그 할머니가 아직도 6-7살 때의 일이니 1950년대 말이나 1960대 초쯤의 일입니다. 모를 심으려고 물을 대어 놓은 논에서 아이들은 개구리며 가재를 잡으며 즐거운 오후를 보내고 있었습니다. 낮에는 잘 보이지도 않던 미꾸라지들이 저녁이 가까워지자 아이들이 있는 곳으로 점점 모여들어 가져온 소쿠리들이 가득 찰 지경이었습니다. 


  “어…, 저기 누구야?”

  그 중 한 아이가 그렇게 말하자 다른 아이들도 잠깐 아이가 가리키는 쪽을 바라보았습니다. 지는 해가 남긴 강렬한 진홍색 노을을 등진 어떤 할머니가 논의 저쪽 끝에서 허리를 숙인 채 아이들 쪽으로 천천히 걸어오면서 미꾸라지들을 몰아주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습니다. 허리를 굽히고 있었지만 할머니의 키가 성인남자들보다 훨씬 커 보였거든요. 그것만이 아니었습니다. 논의 진흙바닥을 헤집고 있는 그 여자의 팔은 두 개가 아니라 네 개처럼 보였습니다.


 “저기, 할머니, 누구세요?” 까라왕 촌구석 작은 마을에 모르는 어른이 있을 리 없었습니다. 그러자 여자는 얼굴만 들어 아이들에게 웃어 보일 뿐이었습니다. 윤곽이 잘 보이진 않았지만 자글자글 주름진 할머니인 것만은 틀림없었습니다. “저, 누구시냐구요?”

 

 그러자 할머니는 힐끗 등 뒤의 노을이 점점 어두워져 가는 것을 돌아보더니 더욱 큰 미소를 지은 채 아이들을 바라보며 몸을 세웠습니다.  “그게…, 그렇게 궁금하니?”


 그 모습에 아이들은 비명을 지르며 논바닥에 엉덩방아를 찧었고 어떤 아이들은 어느 새 논둑길을 전속력으로 내달리기 시작했습니다. 몸을 곧추 세운 할머니는 3미터는 될 듯한 키를 하고 있었는데 두 개의 커다란 젖가슴이 논바닥에 닿을 듯 늘어져 있었던 것입니다. 전형적인 웨웨곰벨의 특징이었죠. 논바닥에 넘어졌던 아이들도 허겁지겁 일어나 마을로 달려가며 웨웨곰벨이 나타났다고 소리를 질러 댄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날 밤 모든 마을 사람들이 나와 인근 숲을 뒤진 것은 논에서 놀던 아이들 중 한 남자아이가 돌아오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웨웨곰벨에게 잡혀간 것이 틀림없었습니다. 그들은 예의 땀빠(tampah)라 부르는 소쿠리를 각각 들고 북북 긁어대며 밀림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땀빠를 긁는 소리는 사람들 귀엔 하찮게 들리지만 웨웨곰벨의 세계에서는 귀가 울릴 듯한 무시무시한 굉음으로 들린다고 합니다.


 밤이 깊어 자정쯤 되어서야 그들은 잃어버렸던 남자아이를 나무 위에서 찾아냈습니다. 그러나 그 아이는 그 후 몇 주, 몇 해가 지나도록 늘 멍하니 먼 하늘만 바라보고 있기 일쑤였습니다. 사람들은 그의 몸을 되찾아 왔지만 웨웨곰벨에게 홀린 그 아이의 넋이 돌아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웨웨곰벨이 주는 음식을 처음 받아먹던 순간 그 아이의 혼은 이미 마물들의 세계에 발을 들였고 그날 달아난 웨웨곰벨은 아이의 혼을 빼내 안고서 달아났던 것입니다.


 웨웨곰벨은 높은 나무 위로 잡아온 아이에게 도저히 먹을 수 없는 오물을 내놓는데 처음엔 거부하는 아이 입 속에 억지로 처넣지만 나중엔 그 구더기 끓는 쓰레기가 아이 눈에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으로 보여 허겁지겁 먹어 치우게 됩니다. 그렇게 웨웨곰벨이 주는 음식을 먹은 아이는 어느새 차분해지고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할 생각조차도 없어지게 됩니다. 그렇게 단 한 번이라도 웨웨곰벨이 주는 음식을 받아먹은 아이는 다시는 인간세상에 돌아갈 수 없게 된다고 합니다. 


 납치된 아이를 찾으려면 동네사람들을 동원해 마을 인근과 귀신이 살 만한 아름드리 나무들을 뒤지며 수색해야 하는데 코코넛 과육을 가는 강판이나 땀빠(Tampah), 전통 주방용품들을 동원해 리듬에 맞춰 벅벅 긁어대거나 땡땡 두들기며 숲 속을 헤쳐 나갑니다. 그 소리를 들은 웨웨곰벨은 나무 위에서 리듬에 맞춰 춤을 추게 되는데(무서워하지 않고? 아이를 찾는 과정은 버전마다 조금씩 디테일이 다릅니다) 젖가슴 밑에 감춰둔 아이의 모습이 그 와중에 살짝 보이게 된다는 것입니다. 


 사람들 눈에 띈 것을 안 웨웨곰벨은 곧바로 자취를 감춥니다. 왜 그런지 모르나 웨웨곰벨이 대적하려 하지도 않고 누구에게도 물리적 위해를 끼치려 하지 않는 점은 매우 흥미롭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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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웨곰벨 아트 모음

 


 웨웨곰벨은 해가 지도록 밖에서 노는 아이들에게 나타나곤 하는데 마그립 기도가 끝난 후 주로 친구나 형제, 부모의 모습으로 나타나 산책을 청하는 식으로 접근하기 때문에 희생자는 자신이 납치당한다는 사실조차 자각하지 못합니다. 그런 식으로 데려간 웨웨곰벨의 집은 수로나 낡은 제방일 수도 있고 무덤이나 수목이 빽빽하게 들어찬 한적한 곳일 수도 있습니다. 나중에 숲에서 돌아온 아이들은 시장통을 지나고 마을을 빠져나간 시점 이후를 기억해내지 못합니다. 


 그래서 땅거미가 드리우기 시작하면 자바의 부모들은 웨웨곰벨한테 잡혀 가기 전에 빨리 집에 들어가라고 아이들에게 소리쳤던 거죠. 웨웨곰벨은 아직도 산짐승들이나 도적들이 활개를 치던 시절,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놀이에 정신 팔린 아이들 등을 떠밀어 안전한 집으로 빨리 돌아가도록 하는 좋은 핑계였고 아이들을 학대하는 부모들에겐 경고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넘쳐흐르는 상상력을 가진 어린아이들은 이런 웨웨곰벨 이야기에 무서워 진저리를 쳤겠죠.


 웨웨곰벨이 유익하거나 호의적이라 할 수는 없어도 최소한 아이를 잡어 먹거나 하진 않는 것이 분명합니다. 그런데 웨웨곰벨과 비슷한 인상착의를 하고서도 전혀 다른 특징을 보이는 놈들도 있습니다. 


 말레이 민속에 등장하는 꼬뻭귀신(Hantu Kopek)은 외관상 웨웨곰벨과 유사하지만 성격은 전혀 다릅니다. 꼬빽귀신은 크고 길다란 젖가슴을 가진 할머니로 현신하며 수유하는 엄마의 젖을 완전히 말려버린 후 배를 곯는 아기를 잡아먹는데 거대한 젖으로 휘감아 질식시켜 죽인다고 합니다. 꼬뻭귀신을 쫓으려면 아기 가까이에 날카로운 물건을 두어야 합니다. 이는 꾼띨아낙으로부터 태아를 지키기 위해 산모가 날카로운 바늘이나 은장도를 지니는 것과 비슷한 맥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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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뻭귀신 아트 모음

 

 

 순다 민속에 등장하는 깔롱웨웨(wewe kalong)도 웨웨곰벨과 비슷한 인상착의를 하고 있지만 저녁무렵 나타나 아이를 납치해 자기 자식처럼 키우려는 웨웨곰벨과 달리 밤낮을 가리지 않고 출몰해 10세 전후의 아이들을 데려가 애완용 노리개로 삼습니다. 깔롱(Kalong)이란 큰 박쥐를 뜻하므로 깔롱웨웨는 기본적으로 오래 묵은 박쥐요괴입니다.


 깔롱웨웨의 특이한 점은 그렇게 잡혀간 아이들이 시구루룽(Sigururung)이라는 앞잡이 요괴가 된다는 부분입니다. 이건 한국민화에서 호랑이에게 잡아 먹힌 희생자들 혼령이 곧장 성불하지 못하고 창귀(倀鬼)가 되어 호랑이에게 붙잡혀 있게 된다는 이야기와 어딘가 통하는 점이 있습니다. 창귀는 호랑이의 겨드랑이나 광대뼈, 턱에 붙어 사냥을 돕거나 호랑이가 덫에 걸리지 않도록 경고하는데 특히 턱에 붙은 창귀는 자기가 아는 사람들 이름을 호랑이에게 속삭여 준다고 하죠. 다음 먹이감으로요. 그건 대개 자기 가족들 이름입니다. 그렇게 알려준 사람을 호랑이가 잡아먹으면 창귀는 비로소 호랑이에게서 자유로워지는데 방금 전 잡아 먹힌 가족이 대신 창귀가 되어 자기 자리를 대신하기 때문입니다.


 깔롱웨웨의 시구루룽도 다음 희생자를 직접 찾아 나섭니다. 저녁 무렵 집 밖에서 놀고 있던 아이에게 나타나 함께 놀자면서 숲 속으로 이끌어 깔롱웨웨에게 데려가는 것이죠.


 이런 괴담들을 살펴보면 지난 세기까지만 해도 인도네시아의 촌에서 태어나 유년기를 보낸다는 게 얼마나 파란만장한 것인가를 새삼 미루어 짐작하게 합니다. 그들은 저런 귀신과 마물들을 정말로 상대해야 했거나 저런 괴담이 태어날 수밖에 없었던 위험하고 비위생적인 환경 속에 살아야 했을 테니까요. 


 그리고 이런 생각도 하게 됩니다. 

 빨라식, 꾸양, 뽀뽀, 레약 같이 내장을 주렁주렁 달고 날아다니며 태아와 아기를 잡아먹는 머리통 귀신들이 자바섬에 들어오지 못한 이유는 모성 충만한 자바의 꾼띨아낙과 웨웨곰벨들이 대동단결해 해안선을 지키며 아기들에게 패악질 하려는 저들의 침범을 물리쳤기 때문이고 그 과정에서 내장을 다 잡아 뜯겨 더 이상 날아다니지 못하게 된 머리통 귀신들이 지상에 추락해 자바의 밤거리를 굴러다니는 주릭 굴루뚝 승이르나 군둘 쁘링이스가 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 말입니다. (끝)

 

 ♣배동선 작가는 인도네시아의 동포 향토작가. 현지 역사, 문화에 주목하며 저서  <수카르노와 인도네시아 현대사>와 공동번역서 <막스 하벨라르>를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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