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제목 [무속과 괴담 사이 (13)] 뽀쫑(Pocong)의 외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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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속과 괴담 사이 (13)] 뽀쫑(Pocong)의 외출

기사입력 2021.06.10 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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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속 도입.png

 

뽀종분장청년.jpg
뽀쫑 분장을 한 마을 청년들

 


 코로나 팬데믹 기간에 인도네시아 사회에 뽀쫑들이 여러 번 등장했습니다. 그게 정말 뽀쫑귀신이었다면 난리가 났겠죠. 할로윈 축제에 귀신의 집 같은 곳이 아니라 주민들이 사는 동네에 뽀쫑 분장을 한 사람이 나타난다면 그건 사람들을 놀래키거나 인간은 물론 귀신에게도 겁을 주려는 의도이기 쉽습니다. 그런데 코로나 시대에 동네 어귀에 자경단이나 청년들이 뽀쫑 분장을 하고 앉아 있는 것은 방역수칙을 지키지 않으면 죽어서 뽀종이 되기 쉽다는 사람들에 대한 위협이기보다는 여기 무서운 뽀쫑 귀신이 지키고 있으니 코로나 귀신은 마을로 들어오지 못한다는 주술적인 의미를 담습니다. 옛날 우리의 장승과 같은 의미입니다. 이슬람의 기치가 휘날리는 인도네시아에서 귀신들이 나와 무슬림들의 마을을 지키는 모습은 사뭇 비현실적이기까지 합니다.


뽀쫑과 딸리뽀쫑

뽀쫑(Pocong)은 원래 무슬림들의 죽음을 가장 시각적으로 구현한 것입니다. 사람이 죽으면 무슬림 장례규범에 따라 생전에 사용하던 의복과 장식구를 모두 벗긴 후 염을 하고 까인까판(Kain Kafan)이란 천으로 망자의 몸을 감싼 후 머리 끝부터 발끝까지 6~7군데를 끈으로 단단히 묶어줍니다. 이 상태가 뽀쫑입니다. 그래서 인도네시아인들에게 뽀쫑과 죽음은 동의어인 셈입니다.

 

뽀종을 묶는 데에 사용한 끈을 딸리뽀종(Tali Pocong)이라 부르는데 묘지로 이동하면 매장하기 전에 이 딸리뽀쫑을 풀고 얼굴을 드러낸 후 시신을 무덤에 내려 매장합니다. 딸리뽀쫑을 풀지 않으면 영혼이 시신을 떠나지 못해 망자가 무덤 속에서 생전의 죄로 인해 더욱 고통받다가 한 밤중에 무덤에서 일어나 돌아다니며 끈을 풀어 달라고 산 사람들을 방문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순다에는 뽀쫑의 또 다른 이름인 까뿍 하말린똥(Kapuk Hamalintong)의 괴담이 있습니다. 딸리뽀쫑을 풀지 않고 매장한 시신이 무덤에서 일어나 민가를 돌아다니며 딸리뽀쫑을 풀어달라고 애원했다는 이야기가 1980~1990년대 까라왕 지역을 발칵 뒤집어 놓았다고 합니다.


물론 이견도 있습니다. 일각에선 사람의 영혼이 사망 후에도 40일간 지상에 머물기 때문에 뽀쫑이 무덤에서 일어서는 사건은 딸리뽀쫑이 40일 이후에도 계속 묶여 있을 경우에만 해당된다는 것입니다. 이제 육체를 완전히 떠나 천국 또는 지옥으로 가야 하는 영혼이 뽀쫑 천 안에 갇혀 발버둥친다는 것이죠.


이렇게 매장할 때 딸리뽀종을 풀지 않은 것이 가장 일반적인 뽀종귀신 발생사유입니다. 결국 뽀쫑귀신이란 이 까인까판 천 안에 갇힌 망자의 영혼인 셈입니다. 하지만 주변의 현지인들에게 좀 물어보면 딸리뽀쫑을 꼭 풀어줘야 한다는 이슬람의 규범은 없는 것 같습니다. 사실 무속행위나 귀신들까지 굳이 인간의 잣대로 규격화할 필요는 없을 터입니다.

 

한편 평생 이성을 접하지 않은 처녀나 총각이 죽으면 거기 사용된 딸리뽀쫑이 영험한 주술재료가 된다고 알려져 있어 이를 확보하려는 두꾼들이 깊은 밤 몰래 무덤을 파헤치는 일도 벌어지는 모양입니다. 하지만 주술에 사용된 딸리뽀종 주인의 영혼은 죽어서도 고통받는다고 믿어 딸리뽀종은 따로 다른 곳에 묻거나 태워 없애는 것이 보통입니다. 이런 딸리뽀쫑을 주제로 한 영화도 몇 편 있었습니다.

 

뽀종 처녀.jpg
<처녀의 딸리뽀쫑> 1, 2편

 

두 발을 모아 고정시킨 시체가 일어나 돌아다닌다는 측면에서 중국 강시처럼 양발을 모아 콩콩 뛰어다닌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흰 천을 덧입힌 긴 베개처럼 보이는 뽀쫑들은 대개 날아다니거나 순간이동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뽀쫑들은 왜 무덤에서 일어날까?

뽀쫑이 일어선다고 해서 무덤을 가르고 벌떡 일어서는 게 아닙니다. 

마그립 기도가 끝나는 저녁시간에 무덤 한 가운데에서 연기가 피어오르며 뽀쫑의 출현을 예고합니다. 연기는 작은 형체를 만들어 무덤의 다리 쪽으로 펄쩍 뛰어 갔다가 다시 머리 쪽으로 펄쩍 뛰면서 그 크기가 점점 커집니다. 그러다가 마지막으로 무덤 옆 서쪽방향으로 펄쩍 뛰면 그제서야 완전한 뽀쫑귀신의 모습을 갖추게 됩니다. 그런 후 공중에 부양한 상태로 무덤을 한 바퀴 돕니다. 이제 완전히 모습을 갖춘 뽀쫑귀신은 공중을 오르락내리락하는데, 날아다닐 때에는 몸체가 길어져 마치 흰 스카프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물론 뽀쫑의 최대 강점은 순간이동입니다. 그래서 멀리 희미하게 모습을 보인 뽀쫑이 순식간에 당신 코 앞에 들이닥칠 수도 있습니다.

 

딸리뽀쫑을 풀지 않은 것도 아닌데 뽀종이 일어나 돌아다닌다면 생전에 미처 정리하지 못한 중대한 일이 있기 때문입니다. 미처 준비하지 못한 유언, 정리되지 않은 채무관계, 결국 건네지 못한 사과 같은 것들 말입니다. 

 

뽀쫑귀신의 얼굴은 해골 같고 눈동자는 금방이라도 튀어나와 흘러내릴 것 같고 눈썹은 물론 피부도 없는데 눈동자 밑으로 구더기나 들락날락하는 게 보이지만 늘 다니던 장소에서 혼자 이런 뽀쫑과 마주친다면 당시 막 세상을 떠난 지인이나 친척을 기억해내 그 이름을 외치며 이렇게 말하라고 합니다. ‘내가 모든 걸 다 용서하니 당신의 세계로 돌아가세요!’ 그런 후 비스말라와 알파티하의 편지를 세 번 암송하면 보통의 뽀쫑이라면 사라질 것입니다. 하지만 사과를 끝내 받아주지 않는다면 뽀쫑은 밤마다 끈질기게 당신을 따라붙을 것입니다.

 

그런데 모든 뽀쫑들이 용서를 빌러 밤길을 배회하는 건 아닙니다. 그중엔 악의나 원한을 가진 뽀쫑들도 있습니다. 함부로 딸리뽀쫑을 풀어주려 해서도 안됩니다. 매장할 당시 의도적으로 딸리뽀쫑을 풀어주지 않았을 가능성도 있으니까요. 어쩌면 그 뽀쫑은 복수를 위해 무덤에서 일어난 것일 수 있습니다.


무속전통이 강한 곳에서는 친척이나 가족이 흑마술같은 비자연적 방법에 의해 살해당했는데 그 범인이 잡히지 않을 경우 그 미상의 범인에게 공개적으로 겁을 줘 자백하도록 하기 위해 딸리뽀종을 풀지 않고 매장하기도 합니다. 실제로 살해당한 자녀를 매장하는 아버지가 누군지 모를 살인범에 대한 복수심에 이를 갈며 일체의 이슬람식 장례절차나 알꾸란의 암송을 금지시키고 딸리뽀쫑도 풀지 않은 채 시신을 무덤에 내리면서 뽀쫑의 귀에 이렇게 속삭입니다. “네 원수를 찾아내 꼭 핏값을 받아 내거라!”

 

그러면 그 시신은 그날 밤부터 당장 뽀쫑귀신이 되어 자신의 죽음에 책임이 있는 이에게 복수를 완료할 때까지 밤마다 이승을 떠돌게 됩니다. 그 피의 신원과정이 실제로 어떤지는 알 수 없지만 그렇게 망자를 매장한 후 어느 날 밤 누군가 귀가길에, 또는 취침 중에 급사한다면 그 자가 바로 살인범이고 망자의 뽀쫑이 마침내 복수를 성취했다고 생각하는 것이죠. 그러나 복수를 마친 망자의 영혼은 이미 저승에 받아들여질 수 없어 영원히 구천을 헤매게 된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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뽀쫑

 

 

두꾼, 저주술사들이 시신을 이용해 일부러 뽀쫑을 만드는 경우도 있습니다. 누군가를 위협하거나 청부살인을 목적으로 하는 경우죠. 막 매장되어 상태가 양호한 시신을 사용하므로 눈, 코, 귀에 솜으로 염이 된 모습이죠. 이런 뽀쫑을 특별히 웨돈(wedon)이라 부릅니다. 이 뽀종이 뱉는 침이 피부에 닿으면 물집이 잡혀 크게 부풀어 오르거나 새카맣게 썩어 들어갑니다.


만약 이런 놈이 당신 집 주변에서 여러 번 눈에 띄었다면 누군가 당신을 노린다는 증거일 수 있습니다. 대응방법은 집 주변에 소금을 뿌리고 저녁기도, 밤기도, 자정기도가 끝날 때마다 야신의 편지를 읽는 것입니다. 가능하면 사람들이 많이 모여 야신의 편지를 7일간 읽는 게 좋습니다.



영화 속 뽀쫑

꾼띨아낙과 함께 뽀쫑은 가장 많이 영화화된 소재입니다. 하지만 꾼띨아낙이 1970년대부터 영화화된 데 비해 뽀쫑의 영화화는 보다 최근인 2006년의 일입니다.  비교적 분장이 용이한 여자귀신에 비해 몸 전체에 천을 두르고 딸리뽀쫑으로 꽁꽁 묶인 채 반쯤 썩은 무서운 얼굴을 드러내야 하는 뽀쫑이 분장과 특수효과의 어려움 때문에 영화화가 늦어졌을 것 같지만 사실 그보다는 뽀종 자체가 망자와 죽음의 적나라한 모습이어서 대형 스크린에 등장하는 뽀쫑의 모습에 무슬림 사회의 부담과 거부감도 일정 부분 작용했습니다.


실제로 루디 수자르워(Rudy Suedjarwo) 감독의 2006년 작 첫 뽀종 영화는 <뽀쫑(Pocong)>’이란 제목으로 개봉하려 했으나 당시 기준으로 너무 공포스러워 건전한 무슬림의 사회적 가치관을 해친다는 이유로 영화검열위원회를 통과하지 못했지만 처음으로 뽀쫑을 전면에 내세운 이 영화에 인도네시아 사회는 충격의 도가니에 빠졌습니다. 


지금 기준으로는 맥빠지는 스토리와 부실한 특수효과가 실망스럽기 그지없지만 첫 뽀쫑 영화가 불러일으킨 센세이션을 기반으로 같은 해 루디감독은 거의 같은 내용으로, 그러나 좀 덜 무섭게 제작해 개봉한 <뽀쫑2>를 크게 흥행시켰고 그 결과 <뽀쫑3>(2007), <진짜 뽀쫑>(2009), <40일만에 일어선 뽀쫑>(2008) 등 유사한 영화들이 봇물 터지듯 대형스크린에 밀려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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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 뽀쫑 영화들

 

 

뽀쫑의 맹세

하지만 뽀쫑과 관련해 이슬람 사원에서는 숨빠뽀쫑 (Sumpah Pocong), 즉 ‘뽀쫑의 맹세’라는 극도로 진지한 의식이 진행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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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도 참석한 숨빠뽀쫑 의식

 


(전략)

뽀쫑이란 사람의 시신이 무덤에 들어가기 직전의 모습이다. 이불 호청처럼 넓은 흰색 천으로 시신을 둘둘 감싼 후에 머리끝과 발끝 부분의 천을 사탕 모양으로 꽁꽁 동여 맨 모습이 뽀쫑인 것이다. 그러므로 뽀쫑의 맹세란 뽀종의 모습으로 행하는 맹세이다. 이슬람 사원에 가서 뽀쫑의 모습을 한 채 이슬람 종교지도자의 주관 하에 많은 증인들을 불러놓고 “신이시여, 저의 진실은 이러이러합니다, 제 말이 거짓이라면 당신의 벌을 달게 받겠습니다”라고 맹세하는 것이다. 이슬람 성전인 알꾸란까지 머리맡에 두고 한 맹세이니, 만일 그 맹세가 거짓이라면 그는 신의 노여움을 사 죽음에 이를 것인데, 마침 뽀쫑의 모습을 하고 있으니 바로 땅 속에 묻히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뽀쫑의 맹세는 정통 이슬람의 전통에는 없는 것이지만 인도네시아의 이슬람신자들 간에는 자신이 어떤 혐의를 받게 된 경우 그리고 그 혐의를 부정할 만한 어떠한 물리적 증거도 제시할 수 없는 경우, 자신의 결백을 증명하기 위해 이 맹세를 거행한다. 혹은 분쟁 당사자 쌍방이 누구의 주장이 진실인지를 입증하기 위해 행하기도 한다. 흔히 주술적 혐의, 부채관계, 그리고 배우자의 부정행위 등이 뽀쫑의 맹세를 통해 해결되는 사안들이다.  (후략)


뽀쫑의 맹세를 연구한 조윤미 덕성여대 교수의 글에서 이 의식의 성격이 잘 드러납니다. 숨빠뽀쫑 의식은 주로 마두라와 자바 지역 무슬림 사이에서 성행합니다. 현행 사법제도에서는 죄인을 정죄하기 위해 충분한 증거를 공식서류와 증인의 증언, 사건분석 등의 단계를 거치며 입증하는데 이 세 단계의 증거만으로는 재판관이 판결을 내리기 어려울 경우 이 숨빠뽀쫑이 네 번째 증거 입증방법이 되는 것입니다. 

 

그냥 시체흉내를 내며 증언하는 것이니 아무렇게나 거짓말을 해도 되겠지 생각할 수 있지만 뽀쫑의 맹세를 대하는 무슬림들의 생각은 사뭇 진지합니다. 뽀쫑의 맹세를 하면서 거짓을 발설하면 당일 또는 최장 40일 내에 급사하는 액을 맞고 자손들도 7대에 걸쳐 저주를 받는다고 믿습니다. 그래서 이 뽀쫑의 맹세는 아직까지도 진실을 파헤치는 하나의 도구로서 일정한 기능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까지 살펴본 것처럼 뽀쫑은 여러가지 면에서 인도네시아 사회에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습니다. 뽀쫑귀신의 출현이 극도의 공포심을 유발시키고 뽀쫑의 맹세가 진지하게 받아들여지는 이유는 인도네시아의 무슬림이라면 마지막 호흡이 멈춰 이 세상을 떠날 때 거쳐야 하는 ‘뽀쫑’이란 상태가 ‘육체의 죽음’을 가장 극단적으로 시각화한 것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리고 이땅의 모든 뽀쫑들은 아무쪼록 인도네시아 밤거리를 애써 배회하지 말고 그 묻힌 곳에서 영원한 안식을 누리기를 바랍니다. [데일리인도네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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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데 나와 있지 말고.

 


♣배동선 작가는 인도네시아의 동포 향토작가. 현지 역사, 문화에 주목하며 저서  <수카르노와 인도네시아 현대사>와 공동번역서 <막스 하벨라르>를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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