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제목 김상균의 식물원 카페 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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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균의 식물원 카페 85

기사입력 2021.03.09 2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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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혜화

 

                                                                                            이소호

 

  나는 나 같은 너에 대해 말한다 당신이 파 놓은 구멍마다 들어가 보는 고양이처럼 너라는 나에 대해 말한다 모자란 2월의 날들을 걸어 놓은 옷걸이 푹 삶은 하얀 양말을 신고 건너간 수화기 너머에는 내가 버려 놓은 말들이 떨고 있다 먼지 위에 쌓아 올린 일기처럼 문턱을 넘지 못한 발가락처럼 나는 나보다 멀리 가 떨고 있다

 

  나는 당신으로부터 있다

 

  나는 네 침대에 놓인 긴 머리카락보다 말이 없다 말을 뒤집어 우리는 뒷면을 응시한다 하루의 뒷면, 칫솔의 뒷면, 크랜베리 빵의 뒷면, 미키마우스 티셔츠의 뒷면, 그리고 섬의 뒷면 당신은 잘린 손톱처럼 외롭다 섬, 섬 나는 스위치를 내리고 불 꺼진 등대를 생각한다

 

                                     민음의 시 253 『캣콜링』 민음사, 2018

 


식물원카페.jpg
사진 김상균

 


  “나는 나 같은 너에 대해 말한다 당신이 파 놓은 구멍마다 들어가 보는 고양이처럼 너라는 나에 대해 말한다……//나는 당신으로부터 있다//…… 섬, 섬 나는 스위치를 내리고 불 꺼진 등대를 생각한다”

  이윽고 봄은 왔네요. 매화, 개나리, 서향(瑞香, 천리향), 목련에 수선화까지 활짝 피었습니다. 여전히 아쉬움마냥 벽에는 ‘모자란 2월의 날들을 걸어 놓은’ 달력이 걸려있을지라도 말입니다.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즉 '봄은 왔지만 봄 같지가 않구나'라는 말을 많이들 쓰고 있지만, 다시 폭설이 내리고 또 한 번 한파가 닥치더라도 단연코 분명히 봄은 왔습니다. 우리를 사로잡는 근심이나 걱정거리에 자신을 가둬두지 말고, 아직은 서툰 봄일지라도 움트는 모습과 그 숨결을 몸으로 마음으로 느껴보시기 바랍니다. 봄은 왔습니다.

 

  모두가 코로나19 팬데믹을 조속히 극복할 수 있게 되기를 간절히 바라며, 모든 생명에게 평화와 행복이 가득하기를 기원합니다.

 

  영화 피아노(The Piano, 1993)의 주제곡 ‘The Heart Asks Pleasure First’입니다.

 

   

 

   김상균 시인.jpg

   김상균 약력

     김상균 시인은 서울 출생으로 부산대학교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1985년 무크지 <가락>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으며, 시집으로 <자작나무, 눈, 프로스트>와 <깊은 기억> 등이 있다. 대학 강사와 고등학교 교사를 거쳐 KAIST 부설 한국과학영재학교에서 교감으로 퇴임하였다. 다수의 사진전을 개최한 바 있는 사진작가이며, 일찍부터 영화와 음악에 대한 시와 글을 써온 예술 애호가이자, 70년대 후반부터 배낭여행을 해온 여행 전문가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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