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자일루一字一淚
이동순
모든 눈들은 산맥 저편으로도 내리고 싶었다
언제였던가 가본 적이 있는 듯한
그러나 지금은 마음대로 오갈 수 없는
그곳은 이목구비가 같은 사람이 살고 있었다
산설고 물설은 타관이 아니었다
송이송이 뜨거운 눈물을 주먹으로 씻어대며
눈은 간신히 기슭에 올라 지척의 앞을 보았다
그리로 더욱 가까이 갈 수 없을 만큼
몸은 지치고 마음만 급하였다
행여 바람에 실려 산을 넘을 듯하였으나
그의 온몸은 중턱에 쓰러지고 말았다
쓰러진 눈 위로 또 다른 눈이 퍼부었다
죽어서도 눈은 산맥 저편으로 내리고 싶었다
묵묵히 긴 밤을 지새운 아침
사람들은 차디찬 길바닥에 깔린 눈을 보았다
아무도 눈이 왜 거기 와 있는가를 말하지 않았다
창비시선 24 『개밥풀』 창작과비평사, 1980
“모든 눈들은 산맥 저편으로도 내리고 싶었다/언제였던가 가본 적이 있는 듯한/그러나 지금은 마음대로 오갈 수 없는/그곳은 이목구비가 같은 사람이 살고 있었다/산설고 물설은 타관이 아니었다”
몇 차례의 강추위가 지나고 나니, 한낮이면 봄이 다가오고 있음을 예감하게 되는 날이 이어지고, 어느덧 설 명절이 다가왔습니다. 하지만 이번 설에는 가족을 포함한 ‘5인 이상 집합금지’ 때문에 귀향을 망설이거나 포기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합니다. 한시적이지만 가족 간의 만남을 강제적으로 제한 받게 되는 이러한 경험은, 70여 년 동안 이산가족들이 겪고 있는 아픔을 조금이나마 공감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도 있겠지요. 팬데믹은 백신 접종이 이뤄지면 차츰 사그라지겠지만, 남북 간의 대결 상황은 끝 간 데 없이 이어지면서 ‘송이송이 뜨거운 눈물을 주먹으로 씻어대며’ 또 한 번의 명절을 맞이하는 삶이 여전히 우리 곁에 있습니다.
모두가 코로나19 팬데믹을 조속히 극복할 수 있게 되기를 간절히 바라며, 모든 생명에게 평화와 행복이 가득하기를 기원합니다.
김영동의 ‘방황’입니다.
김상균 약력
김상균 시인은 서울 출생으로 부산대학교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1985년 무크지 <가락>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으며, 시집으로 <자작나무, 눈, 프로스트>와 <깊은 기억> 등이 있다. 대학 강사와 고등학교 교사를 거쳐 KAIST 부설 한국과학영재학교에서 교감으로 퇴임하였다. 다수의 사진전을 개최한 바 있는 사진작가이며, 일찍부터 영화와 음악에 대한 시와 글을 써온 예술 애호가이자, 70년대 후반부터 배낭여행을 해온 여행 전문가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