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제목 김상균의 식물원 카페 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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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균의 식물원 카페 76

기사입력 2020.12.23 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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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평역에서

 

                                       곽재구

 

  막차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

  대합실 밖에는 밤새 송이눈이 쌓이고

  흰 보라 수수꽃 눈시린 유리창마다

  톱밥 난로가 지펴지고 있었다

  그믐처럼 몇은 졸고

  몇은 감기에 쿨럭이고

  그리웠던 순간들을 생각하며 나는

  한 줌의 톱밥을 불빛 속에 던져 주었다

  내면 깊숙이 할말들은 가득해도

  청색의 손바닥을 불빛 속에 적셔 두고

  모두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산다는 것이 때론 술에 취한 듯

  한 두름의 굴비 한 광주리의 사과를

  만지작거리며 귀향하는 기분으로

  침묵해야 한다는 것을

  모두들 알고 있었다

  오래 앓은 기침 소리와

  쓴 약 같은 입술 담배 연기 속에서

  싸륵싸륵 눈꽃은 쌓이고

  그래 지금은 모두들

  눈꽃의 화음에 귀를 적신다

  자정 넘으면

  낯설음도 뼈아픔도 다 설원인데

  단풍잎 같은 몇 잎의 차창을 달고

  밤 열차는 또 어디로 흘러가는지

  그리웠던 순간을 호명하며 나는

  한 줌의 눈물을 불빛 속에 던져 주었다.

 

                                  창비시선 40 『沙平驛에서』 창작과비평사, 1991

 


식물원카페.jpg
사진 김상균

 


   “막차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대합실 밖에는 밤새 송이눈이 쌓이고/흰 보라 수수꽃 눈시린 유리창마다/톱밥 난로가 지펴지고 있었다/……/그리웠던 순간들을 생각하며 나는/한 줌의 톱밥을 불빛 속에 던져 주었다/내면 깊숙이 할말들은 가득해도/……/침묵해야 한다는 것을/모두들 알고 있었다/……”

   12월 하순, 크리스마스와 연말이 다가왔지만, 코로나19 확산으로 수도권에 '5인이상 모임 금지' 조처가 내려졌습니다. 감염 확산을 막기 위해서 가능하면 집 밖에 나가지 말라는 것입니다. 한 해를 보내며, 새해를 맞으며, 함께 하고픈 사람들, 나누고 싶은 얘기가 많을 테지만, 2020년의 마지막과 2021년의 시작을 차분하게 보내고 맞아야 하겠습니다. 비록 ‘내면 깊숙이 할말들은 가득해도/……/침묵해야 한다는 것을/모두들 알고 있’으니까요.

 

  모두가 코로나19 팬데믹을 조속히 극복할 수 있게 되기를 간절히 바라며, 모든 생명에게 평화와 행복이 가득하기를 기원합니다.

 

 

소향의 ‘You Raise Me Up’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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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상균 약력

 

    김상균 시인은 서울 출생으로 부산대학교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1985년 무크지 <가락>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으며, 시집으로 <자작나무, 눈, 프로스트>와 <깊은 기억> 등이 있다. 대학 강사와 고등학교 교사를 거쳐 KAIST 부설 한국과학영재학교에서 교감으로 퇴임하였다. 다수의 사진전을 개최한 바 있는 사진작가이며, 일찍부터 영화와 음악에 대한 시와 글을 써온 예술 애호가이자, 70년대 후반부터 배낭여행을 해온 여행 전문가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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