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 깊숙이 노을을 받는 그대, 훌쩍 바람이나 쐬러 올라오시죠. 때 없이 가물거나 가물가물 사람이 죽어가도 세상은 땅에서 자기들 눈높이까지, 한걸음 윗세상은 빈터 천집니다. 여기서는 누구나 무정부주의잡니다. 여기서 미리 집 없이 사는 자가 되어보고, 저 아래 이글거리는 땅 사람 그대를 둘러보고 여름이 다 끝날 때 내려가시죠.
풀벌레가 울기 시작합니다. 다시 길을 낼까요? 초저녁 한적한 물가나 무덤가로 나오시면 푸른 반딧불 하나 내려보내겠습니다.
문학과지성 시인선 249 『개마고원에서 온 친구에게』 문학과지성사, 2000
▲ 사진 김상균
언제 끝날지 모르는 팬데믹은 여전히 우릴 옥죄고, 장마와 무더위, 끊임없는 진영 간 대립에, 성 추문 의혹을 둘러싼 갈등에, 부동산 문제까지…… 정말 피곤한 여름입니다. 그래서 정말 휴가(休暇)가 필요한 요즘입니다.
“상처 깊숙이 노을을 받는 그대, 훌쩍 바람이나 쐬러 올라오시죠. …… 한걸음 윗세상은 빈터 천집니다. …… 여기서 미리 집 없이 사는 자가 되어보고, …… 여름이 다 끝날 때 내려가시죠./풀벌레가 울기 시작합니다. 다시 길을 낼까요? 초저녁 한적한 물가나 무덤가로 나오시면 푸른 반딧불 하나 내려보내겠습니다.”
마음을 어지럽히는 바깥의 소식과 연결을 끊고, 눈과 마음을 자연으로 돌려, 그 속에서 위안을 얻고자 합니다.
김상균 시인은 서울 출생으로 부산대학교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1985년 무크지 <가락>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으며, 시집으로 <자작나무, 눈, 프로스트>와 <깊은 기억> 등이 있다. 대학 강사와 고등학교 교사를 거쳐 KAIST 부설 한국과학영재학교에서 교감으로 퇴임하였다. 다수의 사진전을 개최한 바 있는 사진작가이며, 일찍부터 영화와 음악에 대한 시와 글을 써온 예술 애호가이자, 90년대 초반부터 배낭여행을 해온 여행 전문가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