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제목 김상균의 식물원 카페 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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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균의 식물원 카페 56

기사입력 2020.06.30 2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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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들은 그냥 지나가지 않는다

                                           박노해

아침이면 목 마른 꽃들에게 물을 준다
저녁이면 속 타는 나무에게 물을 준다
너희는 마스크를 쓰지 않았구나
서로를 경계하지도 멀어지지도 않았구나

벌들은 꽃과 꽃을 입맞춰주고
바람은 서로 몸을 기울여 손잡아주고
무더위에도 속 깊은 만남으로
살고 살게 하고 살아가는구나

복숭아는 대지의 단물을 빨아올리고
체리 자두 블루베리는 달콤하게 익어가고
벼 포기는 자라고 감자알은 굵어지고
사과알은 당차게 가을을 향해 걷는구나

코로나 뒤의 검은 그림자를 뚫어보며
먼 곳을 바라보는 내게 나무가 그랬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쉽게 달관하거나 위로받지 말라고

좋은 날도 나쁜 날도 그냥 가지 않는다고
날들은 알게 모르게 무언가를
내게 안겨주고 내게 남겨주고
내 안을 꿰뚫고 지나간다고

무력한 인간의 날들이여
불가촉 세계의 날들이여
너는 나의 무언가를 헤쳐놓고 가는구나
너는 내게 무언가를 심어놓고 가는구나

나는 하루하루 날을 받아 사는 생
어떤 날도 피할 수 없기에
어떤 날도 내 안에 모신다
나 또한 무언가를 심어나간다

하루하루가 내게는 결정적인 날
한 사람 한 사람이 내게는 귀인이시니
푸르른 걸음으로 너를 향해 가야겠다
무더위 속에서도 강인한 저 나무들처럼

                                 『박노해 시인의 숨고르기』 www.nanum.com

식물원카페.jpg▲ 사진 김상균
 
“코로나 뒤의 검은 그림자를 뚫어보며/먼 곳을 바라보는 내게 나무가 그랬다/‘이 또한 지나가리라’/쉽게 달관하거나 위로받지 말라고//……//무력한 인간의 날들이여/불가촉 세계의 날들이여/너는 나의 무언가를 헤쳐놓고 가는구나/너는 내게 무언가를 심어놓고 가는구나”
코로나19의 ‘하 수상(殊常)’한 시절은 계속입니다만 어느덧 장마가 시작되었고, 간간이 뭉게구름 피어나는 푸른 하늘이 우리에게 삶의 희망을 전하는 시간으로 이어질 듯합니다.

조속히 코로나19가 마무리되기를 간절히 바라며, 모든 생명에게 평화와 행복이 가득하기를 기원합니다.

The Mystic Moods Orchestra의 ‘Stormy Weekend’입니다.

김상균 시인.jpg
 
김상균 약력
김상균 시인은 서울 출생으로 부산대학교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1985년 무크지 <가락>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으며, 시집으로 <자작나무, 눈, 프로스트>와 <깊은 기억> 등이 있다. 대학 강사와 고등학교 교사를 거쳐 KAIST 부설 한국과학영재학교에서 교감으로 퇴임하였다. 다수의 사진전을 개최한 바 있는 사진작가이며, 일찍부터 영화와 음악에 대한 시와 글을 써온 예술 애호가이자, 90년대 초반부터 배낭여행을 해온 여행 전문가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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