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제목 인도네시아 한인들은 어떻게 살아왔나(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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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 한인들은 어떻게 살아왔나(5)

기사입력 2020.03.06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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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하라 2009

글: 조연숙 데일리인도네시아 편집국장, 한인사편찬위원 

[편집자 주] <인도네시아 한인들은 어떻게 살아왔나 5>는 한인뉴스 2009년 1월호부터 12월호까지 12권에 실린 내용을 중심으로 기술합니다. 2009년을 기준으로 하기 때문에 당시 활발했지만 지금은 없어진 단체와 활동을 기록했고, 2020년에 많은 활동을 하고 있지만 당시에는 아직 설립되지 않았던 단체와 활동은 앞으로 2019년 기준으로 쓰는 글에 기록하겠습니다. 이번 글에 언급된 단체나 활동과 관련해 추가하고 싶은 사진이나 자료를 가지고 계신 독자 여러분은 한인뉴스(haninnewsinni@gmail.com) 또는 글쓴이(dailyindo@gmail.com)에게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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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인사회는 2009년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 가수 '비' 공연, 신종플루와 타미플루, 자카르타 호텔 폭탄테러, 김수환 추기경 선종, 노무현 대통령과 김대중 대통령 서거, 서만수 목사 소천, 광복절 체육대회, 포스코 진출, 이명박 대통령 인도네시아 방문, 유도요노 대통령 제주도 방문 등이 2009년을 채운 사건들이다. 
 
2009년에 인도네시아에서 교민들의 활동을 위축시킨 사건은 신종플루와 자카르타 호텔 폭탄테러이다. 인도네시아 보건부에 따르면, 인도네시아 내 첫 번째 신종플루 사망자는 2009년 6월에 발생했고, 9월 3일 기준으로 25개주에서 확진자 1,097명 사망자 10명이 발생했다. 당시 한국 외교통상부는 재외국민을 위해 신종플루 치료제 타미플루를 해외 대사관에 지원했다. 주인도네시아 한국대사관도 한인뉴스를 통해 타미플루 20인분 200정을 비치하고 있다며, 다만 의사 처방이 필요한 만큼 우선 현지 병원에서 진료를 받고 현지 병원에 약이 없을 경우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또 신종플루 검사가 가능하고 치료제를 보유한 병원 이름과 연락처를 제시했다. 

한편 자카르타 중심가 꾸닝안 지역에 위치한 메리어트 호텔과 리츠칼튼 호텔에서 폭탄테러가 7월17일 발생해 도신우 한국모델협회 회장이 경상을 입었다. 도 회장은 8월에 예정됐던 문화행사를 준비하기 위해 자카르타를 방문 중이었다. 2004년 수실로 밤방 유도요노 대통령 취임 후 치안이 안정되는 모습이었지만 다시 폭탄테러가 발생하면서 대사관에서는 외국계 호텔, 레스토랑, 유흥업소, 쇼핑몰 등 외국인 출입이 많은 장소에 가는 것을 자제하라고 권고했다. 
  
앞서 2009년 신년호에 인사말에서, 김호영 주 인도네시아 한국대사는 "(2008년은) 에너지 및 자원 분야를 중심으로 우리 기업들의 진출은 물론, 투자가 증대되었고, 이천 도예전 · 숙명가야금 공연 · 태권도 시범행사 등을 통해 우리 문화의 우수성과 역동성을 인도네시아 국민들에게 알림으로써 한인사회의 위상을 한껏 높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작년 하반기에 일어난 세계적인 금융 위기로 인하여 적지 않은 교민 기업인들이 고초를 겪었고 지금도 어려움에 놓여 계십니다”라고 2009년 초 상황을 묘사했다.

이 시기에는 2008년 경제위기에도 불구하고 한국과 인도네시아 간 경제협력뿐 아니라 문화교류가 활발했고 교민들도 그만큼 바쁘게 보냈다. 2009년 1월호 첫 번째 소식은 전년도 12월16일 열린 '2008년 한인회 송년의 밤' 보도로, 예년과 달리 마리 엘까 빵에스뚜 무역부 장관과 소피안 와난디 경총 회장이 축하영상 메시지를 보냈고, 인도네시아 외교부 밴드 공연, 매직쇼, 반둥한사모 공연 등 인도네시아인 공연이 추가됐다. 한인 합창단 ‘해피 자카르타’, ‘색소폰 동호회’. ‘전국노래자랑-자카르타 편’ 등 예년처럼 한인단체 공연과 행운권 추첨을 위한 찬조상품도 풍성했다. 

2009년 3월에는 이명박 전 대통령 내외가 인도네시아를 국빈방문해 전략적 동반자 관계가 재도약하게 되었고, 같은 해 6월에는 수실로 밤방 유도요노 대통령 내외가 제주도를 방문했다. 포스코가 인도네시아 국영 크라카타우스틸사와 합의서를 체결하고 PT 크라카타우-포스코 일관제철소 건설을 시작했다. 또 대우조선해양이 1400톤급 인도네시아 잠수함 창정비사업을 수주해 12월에 개량된 잠수함을 인도했다. 

2009년은 별들이 진 시기이다. 인도네시아 한인성당인 자카르타성요셉성당에서는 2월 16일 김수환 추기경 선종 추모미사가 천주교, 기독교, 불교 등 종파 구분 없이 300여 명의 교민이 참석한 가운데 개최됐다. 5월 23일에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했고, 한국대사관은 관내 접견실에 분향소를 설치하고 한국인과 인도네시아인 조문객을 맞이했다. 이어 8월 18일 김대중 대통령이 서거했고 대사관 1층에 조문소를 설치하고 조문객을 맞았다. 9월 18일에는 인도네시아 첫 한인 선교사이자 한인사회 원로 지도자였던 서만수 한인연합교회 목사가 소천했다. 서 목사는 1971년 인도네시아에서 첫 선교를 시작해 첫 한인교회와 한인학교를 설립했다. 

2009년은 본격적인 한류 상업공연이 시작된 해로 인도네시아를 찾은 한국 공연자들이 늘면서 교민들이 즐길 수 있는 프로그램이 생기기 시작했다. 가수 ‘비’가 12월 3일 자카르타 망가두아 JITEC에서 '레전드 오브 레이니즘' 아시아 투어의 일환으로 단독 콘서트를 열었고 교민과 인도네시아인 3,500명 이상이 즐겼다. 이처럼 양국간 교류가 증가함에 따라 가루다항공이 인천-자카르타 노선을 그해 8월 2일 신규 취항했다. 

2009년 한인뉴스에는 지방한인회 활동이 두드러졌다. 2008년 보고르한인회 송년골프대회, 반둥한인회 체육대회 및 송년의 밤 행사, 중부자바 한인회 송년 골프대회 및 한인의 밤 등이 여러 장의 사진과 함께 한인뉴스 2009년 신년호에 실렸다. 이후에도 반둥과 중부자바 한인회 골프대회 소식과 수라바야 한글학교 어린이날 행사 등이 열렸다. 또 연말에는 재인도네시아한인회가 12월 2일에 지방한인회장들을 초청해 골프대회를 열고 친목을 다졌다. 

한인회 주최로 한인이 모두 참여하는 연중 행사는 광복절 기념행사와 송년회인데, 2009년에도 광복절 기념 골프대회, 광복절 기념식, 교민 체육대회 등이 열렸다. 자카르타한국국제학교(JIKS) 체육관과 운동장에서는 가족단위 또는 개인단위로 다채로운 경기가 열렸고, JIKS어린이합창단과 한바패 공연도 이어졌다. 

한국부인회는 3월에 제15대 홍미숙 회장 취임 후 한인기업 홍보책자 It’s Korea 2호 발간, 외국인 대상 한국음식 요리경연대회, 취미활동반, 효도한마당잔치, 친선골프대회 등을 알차게 치렀다. 또 인도네시아대학교(UI) ‘한국문화의 날’과 국제부인회 바자회 등 인도네시아 행사에 한국음식과 활동을 지원하는 역할도 꾸준히 했다. 
    
운동에 대한 관심이 생기면서 체육협회 설립이 논의됐고, 한인마라톤동호회(회장 최병우)도 생겼다. 동문회와 향후회는 매월 또는 격월로 골프모임을 갖고, 규모가 큰 모임에서는 가족까지 참여하는 체육대회를 열기도 했다. 

한국 해군 구축함 대조영함과 군수지원함 천지함이 2008년 12월 8일 자카르타 딴중쁘리옥항에 입항했을 때는 김호영 주인도네시아 한국대사, 한인회 임원, 인도네시아 해군 고위 관계자와 교민 700여 명이 참석한 환영식이 열렸다. 해군은 교민들에게 함상을 공개하고 비빔밥을 대접했다. 또 110여 명의 해군 공연단이 9일 JIKS를 방문해서 군악대 연주, 사물놀이 공연, 의장대 및 태권도 시범 등 친선공연을 펼치고 한국문화를 소개해 한인의 자긍심을 고취시켰다.  

이슬람은 담배는 허용하지만 술은 금지하므로, 소주의 수입절차를 다소 까다롭게 했고 세율도 높게 책정했다. 결국 시중에 유통되는 소주는 밀수입된 것이 많았는데, 2009년 6월에 인도네시아 세관이 딴중쁘리옥 항구에서 소주 13만병을 밀반입하려던 한국인과 인도네시아인을 적발하고 인도네시아 언론이 이를 크게 보도해 소주 밀수입 문제가 공론화됐다. 대사관 관계자들과 한식당 대표들이 모여서 여러 차례 회의를 가졌음에도 소주 통관 문제는 지금까지도 제대로 해결되지 못한 난제다. 

2009년은 한인 원로들이 한국으로 귀국하거나 세상을 떠났고, 포스코와 대우해양 조선, 엔터테인먼트산업, IT산업 등과 함께 새로운 세대가 인도네시아에 진출했다. 인도네시아 교민들이 동호회 수준으로 하던 문화활동이 성숙해지면서 한국대사관과 문화원, 한인회, 한인단체 등 행사에 교민 참여가 활발했던 시기기도 하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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